5.18을 다룬 영화가 개봉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받아야 했었지만 이 영화에 대한 눈에 띄는 비평은 소설가 손홍규(<창비주간논평>, 너무 빨리 와버린 '화려한 휴가' )와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이사 정은교(<프레시안>, '화려한 휴가' 유감)의 글 정도였다. 이들의 요지는 5.18 기억의 원형을 과연 <화려한 휴가>가 온전히 담아냈느냐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필자도 공감한다.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만 박세길의 <다시 읽는 한국현대사>나 임철우의 소설 <봄날>, 영화 <꽃잎> 등을 통한 5.18의 총체적 기억과 <화려한 휴가>의 내러티브와는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도 있다. 사석에서 한 진보성향의 386세대 학자는 <화려한 휴가>를 보지는 못했지만 5.18에 대한 기억 복원에 있어서 기존 386세대의 역사적 프레임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자신 또한 80년대를 겪었고, 5.18 항쟁이 미국과의 구조적 요인, 군부정권과 기층민중, 계급문제가 꼬여있는 매듭을 인지하면서도 언젠가 동남아의 민주화운동가들을 국내 초대해 이러한 프레임을 담은 영상물을 함께 보면서 목격한 그들이 흘린 눈물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자신도 의아하고, 부담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 386세대가 느낀 불편함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과연 5.18에 대한 기억의 원형(prototype)을 찾는 것이 가능하고 '단정' 짓는 것이 또한 가능한가에 대해 모두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우선 몇 가지 장면을 더 떠올리고서 질문의 답변을 찾아보도록 하자.
5.18과 8.15를 혼동한다구요?
지난 9월 4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화려한 휴가>, 그 못다한 이야기" 편에서는 5.18을 8.15 광복절과 혼동하는 젊은 세대들의 발언이 나왔다. 젊은 세대들의 보수화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이는 제작진의 편집의 왜곡이 아닌 현실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5.18과 8.15를 혼동하는 역사의식 부재 또한 젊은이들의 보수화 혹은 무지(無知)와 맞물려 있다. 그런데 <화려한 휴가>를 보았던 젊은 세대들과 직접 대화를 해보면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광주에서 5.18이 발생했는지 조차도 몰랐다는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해석 문제 이전에 사건 자체의 발생부터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0대인 필자가 겪은 제도권의 부실한 교육체계를 감안할 때 젊은 세대의 보수화는 비단 젊은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젊은 세대가 전적으로 면죄부를 부여받을 수도 없겠지만 제도권 교육이 보완하지 못하는 부분을 젊은 세대의 코드와 잘 부합되는 영화를 통해서 비록 손홍규, 정은교의 시선에서는 각색된 혹은 왜곡된 마뜩치 못한 5.18 영화라 하더라도 긍정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소개할 장면은 필자가 3년 전 군복무 시절에 한 부사관으로부터 들었던 5.18 광주 '사태'의 기억이다. 필자가 복무했을 때 MBC에서 <제5공화국>을 시청했었는데 그는 5.18 당시 자신이 하사계급으로 광주시 외곽봉쇄에 투입되었다고 말하면서 30년 가까이 되도록 5.18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광주민주항쟁을 '사태'로 광주시민을 '폭도'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 시기, 그 장소에 있었던 이조차도 왜곡된 기억을 재생하고 있었다.
이렇게 몇 개의 시선을 소개한 연유는 5.18을 바라보는 386의 시선 내에서도 이질감이 존재하고,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당사자조차도 2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 5.18의 구조적 매듭을 읽기는커녕 오히려 왜곡된 기억을 원형처럼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5.18을 8.15로 아는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겠다. 이렇게 각자의 기억은 다채롭게 공존하고 있다.
대문자 H로서의 5.18 역사(History)는 없다. 손홍규, 정은교가 바라보는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판적 지적은 앞으로도 제기되어야 하겠지만 그 정도 수준의 논의의 궤도를 좇아가지는 못하더라도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 5.18을 비로소 알게 된 젊은 세대와 왜곡된 기억으로 30여년 가까이 살고 있는 평범한 군인의 기억은 <화려한 영화> 관람 이후에 또 다른 5.18 영화나 소설, 기록물을 통해서 5.18의 이해와 기억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이들의 5.18에 대한 개개인들의 기억, 역사(history)들의 겹침과 공명의 순간순간에 5.18 기억의 원형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러한 공명은 최소한 광주항쟁을 '사태'로 시민을 '폭도'로 기사화하고서는 지금까지도 한마디의 반성 없이 유력한 보수신문의 고위직을 유지하고 있는 몰역사적인 '그들'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연대를 마련 할 수 있다.
<디워>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생산적으로 탈바꿈하자
끝으로 처음의 자문(自問)에 대한 답변이다. 지난 <디워>논쟁에서 나타난 평론가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감 에너지는 <화려한 휴가>로 자리바꿈돼 쏟아져야 한다. <디워>논쟁의 소실점이었던 진중권이 <디워>에서 지적한 애국감성코드, 황우석 신드롬에서 나타난 담론봉쇄의 재현, 서사의 부실함은 <화려한 휴가>에서도 적용가능하다. 그렇다면 응당 <디워>논쟁의 네티즌들은 다시 <화려한 휴가>논쟁을 촉발시키는 게 옳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의 가열을 막는 장애물이 있는데 바로 <디워>논쟁에서 불거진 진중권에 대한 네티즌들의 단정이다. 사실 진중권은 조독마(조선일보 독자마당)에서 활동할 때부터 고상한 상아탑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처럼 장터의 시궁창에서 굴러다니기를 자처한 이다. 그에게 평론가는 다만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일 뿐 그 어떤 상아탑의 고고한 지식인들처럼 아우라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미학강의를 할 때, 발터 벤야민의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기술된 20세기 초, 신문지면에 독자의견란이 생김으로써 독자와 필자의 위계가 붕괴된다는 벤야민의 지적을 자주 언급하고 긍정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이러한 독자와 필자간 위계의 붕괴를 긍정한 것을 감안한다면 <디워>에서의 소모적 논쟁은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 생산적인 전개가 가능함을 상정하고, 인신공격이 아닌 상호간의 학습을 통해서 5.18 기억의 원형을 찾는 시도도 가능할 것이다. 홍세화 선생은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은 무식하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데 20대인 필자가 보기에도 뼈저리게 공감되는 발언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평론가의 아우라에 대한 인신공격 대신에 우리 젊은 세대들의 무식함을 일부나마 떨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바람이다. 다행히도 <PD수첩> 방영 후에 프로그램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아직 휴가는 끝나지 않았다. 기억의 복원과 젊은 세대의 보수화를 깰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면 <화려한 휴가> 논쟁은 더욱 불을 지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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