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이란 이름이 생소한 장삼이사들도 그가 IMF위기 때 정리해고 대신 일자리 나누기로 인간 경영을 한 사람이라든지, 유한킴벌리 사장으로 숲가꾸기 운동을 한 사람이라는 몇 가지 단편적 얘기만으로도 "기대해 볼 만하네"하는 반응들이었다.
언론이 민주신당의 손학규, 민주당의 조순형, 무소속의 문국현 간 후보 단일화 조사를 할 만큼 정치적 비중도 높아졌다. 물론 이 조사에서는 손학규 43%, 조순형 19%, 문국현 7%로 손학규가 많이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과연 이걸 갖고 손학규 캠프가 좋아해야 할지는 모를 일이다. 10여년의 정치 활동과 2년여에 걸친 대선 후보 활동, 거기에 지난 몇 달간 범여권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손학규가 얻은 43%보다는 출마 선언을 대신한 지난 8월 23일의 출판기념회 후 불과 1주일 만에 7%를 얻은 문국현의 비약이 눈부시지 아니한가?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 1주일 만에 무소속의 문국현이 민주신당, 민주당 후보와 겨룰 정도로 비중 있는 후보로 언론에 의해 자리매김 되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여기에 네티즌들의 폭발적 관심과 범여권 정치인들의 잇따른 지지의사 표명, 시민사회와 학계인사들의 캠프 합류 등을 감안하면 확실히 문국현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문국현 현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반이명박의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는 문국현
이명박이 반노무현의 반사이익을 챙겨왔다면 문국현은 반이명박의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같은 반사 이익이지만 효과의 강도나 유효기간에는 차이가 있다.
반노무현 정서가 다수 국민에게 공유되었던 지난 2~3년간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전성시대였다. 40%대의 한나라당 지지도와 50%대의 이명박 지지도는 반노무현이라는 국민 정서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노무현이야말로 오늘의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있게 한 1등 공신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그 노무현이 이제 무대 위에서 퇴장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 노무현은 2008년 2월 25일까지 건재하겠지만 오늘의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가능케 했던 정치인 노무현은 사실상 무대를 내려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익히 예견되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는 참으로 김 빠지는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이 느닷없이 미국 대사에게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와의 싸움'이라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친북좌파'라는 자못 익숙한 프레임으로 노무현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만큼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노무현의 공백은 크다.
반면 반이명박으로 시작된 문국현의 기대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국현의 기대기는 사뭇 가벼우면서도 날카롭다. 이명박의 토건적 개발에 대해 친환경 경영을 내세우고 이명박의 대기업 중심에 대해 중소기업 중심을 내세우며 이명박의 물량 중심에 대해 인간 중심을 강조하는 식이다. 21세기인 지금 누구의 방법이 더 올바르고 효과적인'경제 살리기 방식'인지 대보자는 식이다. 이것은 이명박이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공격이다. 이제껏 독점해 온 '경제 전문가 이미지'도 '도덕성은 좀 부족해도 경제만큼은 제대로 살려놓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이심전심 양해론'도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게 되고 있는 것이다.
반이명박 프레임에 갇힐 것인가, 뛰어넘을 것인가
바로 이 점, 즉 '누가 이명박을 이길 수 있겠는가'라는 지난 1년여에 걸친 범여권 개혁진영의 애탄 목마름에 문국현이 솔루션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문국현 현상의 저변에 깔려있는 강력한 동력이다. 그러므로 고건을 거쳐 정운찬과 손학규, 조순형 등으로 흘러온 '이명박 대항마'에 대한 기대가 계속 손학규, 조순형 등에 머물게 될지, 더욱 강력한 새로운 대항마로 문국현을 택하게 될지는 손학규, 조순형 등에 달려 있다기 보다는 문국현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 하겠다. '문국현 하기 나름'인 셈이다. 문국현이 반사이익을 이명박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지의 여부가 주목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명박에게 노무현은 주어진 조건이었으므로 편승하기는 쉬웠지만 시너지를 만들기는 어려웠던 반면, 문국현에게 이명박은 주어진 조건임과 동시에 같이 움직이는 플레이어이므로 편승하기는 다소 어려워도 일단 동력이 붙으면 역전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명박의 반사이익이 근본적으로 반노무현에 근거한 네거티브 효과였던 반면에 문국현의 그것은 반이명박에 근거하되 그 틀에 갇힐 수도, 그 틀을 넘어설 수도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 지점에서 문국현 솔루션이 범여권 개혁 세력의 솔루션으로 받아들여질 지의 여부가 1차로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국현이 지금 해야 될 일은 자신이 보수 기득권 세력과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꺾을 수 있는 범여권 개혁세력의 유일한 솔루션임을 설명하고 증거하는 일일 것이다.
아마도 이 일은 문국현이 지금껏 겪어온 어떤 도전보다 험난한 도전이 될 것이다. 논리적 설명, 감성적 호소, 정서적 일체감에 더해 승리에 대한 확신이 함께 어울어진 정치 리더십을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문국현이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지 자못 흥미로운 국면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국현 현상'이 2007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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