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해진 날씨만큼이나 개봉하는 영화들도 한결 가을색을 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대기업에서 만년 부장으로 살아온 50대의 가장이 뒤늦게 락밴드 드러머로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고, <마이 파더>는 입양아로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왔다가 사형수가 된 아버지와 만나게 된 앨런 베이츠의 실화를 영화로 옮겼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꿈도 소망도 접은 채 묵묵히 가족을 위해 뛰는 '아버지'의 영화라면, <마이 파더>는 부족하고 모자란 아버지마저 사랑과 정으로 껴안은 기특한 '아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타란티노가 들고 온 <데쓰 프루프>는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 가을색과는 거리가 가장 먼 영화다. 저예산 B급 영화의 장르공식은 물론, 이 영화들이 두 편씩 상영되던 과거 동시상영관의 빛바랜 낭만마저 화면 위로 재현하려 노력한 타란티노만의 영화다. 여배우들의 멋진 자태는 물론 그 어느 영화에서의 액션씨보다도 박력 넘치는 카체이스 씬을 볼 수 있다. 스타 배우들이 잔뜩 포진한 영화 두 편도 눈에 띈다. <레인 오버 미>는 9.11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 보듬어가는 과정을 약간 신파조로 그렸고, <스트래인저 댄 픽션>은 자신의 삶이 소설로 중계되는 남자의 소동을 통해 소설의 본질에 관한 애교 넘치는 농담을 곁들인다. 애덤 샌들러의 또 다른 영화인 <척 앤 래리>는 애덤 샌들러의 장기인 '철없는 어른'의 모습을 기본으로 가짜 게이 부부의 좌충우돌을 다루는 코미디다. <푸치니 초급과정>과 <방황의 날들>, <입술은 안 돼요> 등은 각각 필름포럼과 씨네큐브 등의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할 영화들. <푸치니 초급과정>은 레즈비언 여성이 남녀 커플 각각과 양다리를 걸치며 겪게 되는 행복과 갈등에 대한 로맨틱 코미디로, 사랑과 인생, 예술에 대한 지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대사들이 자잘한 재미를 준다. <방황의 날들>은 이국땅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첫사랑을 통해 성장통을 겪는 외로운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알랭 레네 감독의 뮤지컬 코미디 <입술은 안 돼요>에서는 <아멜리에>와 <인게이지먼트> 이후 오랜만에 오드리 토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 데쓰 프루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커트 러셀, 로사리오 도슨, 바네사 펄리토 |
텍사스 주 오스틴. 지역방송의 인기 DJ인 정글 줄리아(시드니 타밀라 포이티어)는 친구인 셰나(조단 라드), 알린과 함께 바에서 남자들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스턴트맨 마이크는 자신을 집에 데려다 달라는 팸을 차에 태우고, 정글 줄리아 일행이 탄 차를 쫓는다. 저예산 B급 영화들이 상영되던 동시상영관의 분위기를 살려 NG컷과 지글거리는 화면 등까지도 고스란히 재현한, '작정하고 B급영화처럼 만든' 영화. CG 없이 연출했다는 영화 후반부의 차량 추격씬은 박력과 긴장감이 넘치는 명장면이다.
. |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감독 박영훈 주연 백윤식, 박준규, 임하룡 |
30년째 만년 부장 자리를 지키다가 정년퇴임을 한 달 앞둔 조민혁 부장(백윤식)은 유학을 원하는 아들과 퇴임 후 직장 때문에 요즘 심사가 편치 않다. 퇴임을 축하하는 의미로 부서 내 가장 어린 여직원 유리(이소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그는 새삼 젊은 시절 꿈이었던 드러머의 열정을 불태우게 되고, 부서 내 박과장(박준규)은 기타를, 비슷한 처지의 옆 부서 김부장(민병기)은 색스폰을, 경비인 최주임(임하룡)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부서 내 여직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갑근세 밴드를 결성하고 조민혁 부장의 마지막 출근 날 콘서트를 열기로 한다. <중독>, <댄서의 순정>을 연출한 박영훈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 | 마이 파더 감독 황동혁 주연 대니얼 헤니, 김영철 |
미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입양아로 자라난 제임스 파커(대니얼 헤니)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이 되어 한국땅을 밟는다. 그러나 가까스로 찾게 된 아버지는 사형수 황남철(김영철). 처음의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제임스는 주한미군으로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와중 아버지를 면회와 부자 간 애틋한 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의 말이 진실과 어긋남을 알게 되는데... 앨런 베이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했다. 완벽한 신사 이미지로만 소비됐던 대니얼 헤니를 비로소 '배우'로 각인시켜 주는 영화로, 신체 건강한 20대 남성이며 활달한 성격과 섬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제임스 파커의 역을 감동적으로 소화해 낸다.
. | 척 앤 래리 감독 데니스 듀건 주연 애덤 샌들러, 케빈 제임스, 제시카 비엘 |
뉴욕 브루클린 소방서의 단짝 친구이자 동료인 소방관 척(애덤 샌들러)과 래리(케빈 제임스)는 래리의 두 아이가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게이 부부로 위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시 공무원이 둘 사이를 의심하자 이들은 인권변호사 알렉스(제시카 베일)를 찾아가게 되고, 척은 그만 알렉스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면서 이들의 가짜 결혼생활은 위기를 맞게 된다. <해피 길모어>, <빅 대디>에 이어 데니스 듀건 감독과 애덤 샌들러가 세 번째로 다시 뭉친 코미디. <사이드웨이>, <어바웃 슈미트> 등을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각본을 쓰기로 해 제작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지만 미국 개봉 당시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 | 스트레인저 댄 픽션 감독 마크 포스터 주연 윌 페럴, 매기 질렌홀, 엠마 톰슨 |
단조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고지식한 국세청 직원 헤롤드(윌 페럴)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와 생각까지도 정확히 묘사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이 목소리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 말한다. 마치 자신의 삶을 소설로 읊는 것 갖다고 느낀 헤롤드는 문학박사인 힐버트(더스틴 호프먼)를 찾아가고, 이들은 곧 주인공을 죽이는 비극만을 쓰는 소설가 카렌(엠마 톰슨)이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몬스터 볼>, <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의 2006년작 소품으로, 소설과 현실이 뒤얽히는 소동극을 통해 픽션의 본질에 대한 재치있는 농담을 관객에게 건넨다.
. | 푸치니 초급과정 감독 마리아 매겐티 주연 엘리자베스 리저, 저스틴 커크, 그레첸 몰 |
여자친구에게 실연당한 레즈비언 작가 알레그라(엘리자베스 리저)는 파티에서 우연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필립(저스틴 커크)과 실험적인 이성애 연애를 해보기로 한다. 한편 그녀는 단골 코미디 극장에서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기로 괴로워하는 그레이스(그레첸 몰)를 만나 친해지고, 이성애자이지만 알레그라에게 관심을 갖는 그녀와도 연인 관계를 맺게 된다. 두 남녀 사이를 오가며 양다리를 걸치던 알레그라는 그 둘이 바로 최근까지 사귀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뉴욕을 배경으로 작가인 주인공을 등장시킨 영화답게 지적이면서도 귀엽고 재치있는 수다의 대사가 넘치는 로맨틱한 소품. <퓨너럴>, <셀레브리티>, <라운더스> 등에 출연하면서 기대를 모았으나 스타가 되지는 못했던 그레첸 몰의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다.
. | 레인 오버 미 감독 마이크 바인더 주연 애덤 샌들러, 돈 치들 |
길거리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생 찰리 파인먼(애덤 샌들러)을 발견한 치과의사 앨런 존슨(돈 치들)은 찰리가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자폐아처럼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마음을 닫은 채 살고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9.11 때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을 잃고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린 찰리를 다시 사회로 나오게 하기 위해, 앨런은 그에게 상담의를 소개해주고 그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아간다. 9.11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 이와 그를 배려하고 감싸는 주변인들의 따뜻한 우정을 그린다.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외에도 리브 타일러, 제이다 핀켓-스미스, 도널드 서덜랜드, 새프론 버로우즈 등의 스타들이 출연한다.
. | 방황의 날들 감독 김소영 주연 김지선, 강태구 |
엄마와 단둘이 미국으로 건너와 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있는 10대 소녀 에이미(김지선)는 엄마와 점차 서먹해지면서 타지에서 더욱 외로움에 빠져들고, 자신처럼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트란(강태구)과 친해진다. 에이미는 트란에게 점차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트란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한데... 재미교포 김소영 감독의 첫 데뷔작으로,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라 한다. 작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고 올해 부에노스아이레스국제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굵직한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 한때 <인 비트윈 데이즈>라는 영어제목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 | 입술은 안돼요 감독 알랭 레네 주연 사빈 아젬마, 랑베르 윌슨, 오드리 토투 |
미국인인 에릭 톰슨(랑베르 윌슨)과의 이혼 사실을 숨기고 돈 많은 조르주(피에르 아르디티)와 결혼한 질베르트(사빈 아젬마)의 삶은 조르주가 사업 문제로 에릭과 친분을 나누게 되면서 복잡해진다. 한편 질베르트를 흠모해온 젊은 청년 샤를(잘릴 레스페르)은 그녀에게 계속 구애를 하고, 질베르트 부부와 친분이 있는 위제트(오드리 토투)는 샤를을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다. 결국 질베르트는 자신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동생 아를레트(이사벨 낭티)와 함께 에릭을 찾아가고, 같은 시간 위제트 역시 에릭과 같은 건물에 사는 샤를을 찾아가면서 여섯 명은 한 방에서 자신의 짝을 찾는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된다. 누벨 바그 영화의 기수 중 하나였던 알랭 레네 감독의 뮤지컬 코미디.
. | 사쿠란 감독 니나가와 미카 주연 츠치야 안나, 안도 마사노부 |
8살의 나이로 요시와라 유곽에 팔려온 키요하는 번번이 도망치다 잡혀오고, 결국 오이란이 되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17살이 된 키요하(츠치야 안나)는 요시와라 최고의 오이란으로 큰 인기를 얻고 라이벌인 타카오에겐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잘생긴 외모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 소우지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타카오의 계략에 넘어가 배신을 당하며 첫사랑의 아픔을 겪는다. 인기 만화작가인 안노 모요코의 원작을 토대로 하며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 니나가와 미카의 감독 데뷔작이다. 키요하의 옆을 지키는 청년 세이지 역으로 안도 마사노부가 등장하며, 소우지로 역으로는 일본의 아이돌 스타 나리미야 히로키가, 타카오 역은 기무라 요시노가 맡았다.
. | 마이 걸, 마이 엔젤 감독 알렉시스 듀랑-브롤트 주연 카린 바나스, 미셸 코테 |
캐나다의 퀘벡 지역에서 변호사에서 유력 정치인으로 변신해 활동하고 있는 저메인(미셸 코테)은 뛰어난 미모와 우수한 학업 성적을 보이는 딸 나탈리(카린 바나스)를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연히 접속한 포르노 사이트에서 딸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탈리가 이제껏 자의로 모범적인 대학생과 포르노 스타라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한편 몬트리올의 한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된 포르노 스타가 그녀의 포르노 섹스 파트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족은 더욱 위기에 봉착한다. 미국영화 영향권인 캐나다에서 드물게 성공한 자국영화로, 개봉 당시부터 센세이셔널한 논란의 화제작이 되었다. 촬영감독 출신인 알렉시스 듀랑-브롤트 감독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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