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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침해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 <31> 국가기관을 찾으면, 바로 법무부로 넘겨지는 이주노동자들

2001년 9월 동료 노동자의 돌연사와 관련하여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참고인으로 인천 계양경찰서에 출석하였다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던 미얀마인 묘떼뗀.

2004년 10월 체불임금에 대해 수원지방노동부에 진정하였고 진술을 위해 출석하였다가 근로감독관에 의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인계된 2명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2005년 3월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에서 700만원이 넘는 임금을 체불하여 입건되었던 사업주가 퇴직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니 퇴직금을 수령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검사실을 찾아가 퇴직금을 수령했다가 검사실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연행된 파키스탄인 사르다.

2006년 2월 500만원 가량의 임금은 체불하고 송금해주기로 했던 200만원도 횡령한 사업주를 충남 아산경찰서에 고소하고 고소인 진술을 마친 후 경찰에 의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인계된 어떤 이주노동자.

2007년 2월 노동부 인천북부지청에 퇴직금을 받지 못해 진정하였다가 사업주의 신고로 근로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던 몽골인 보이나.

그리고 2007년 8월 23일 7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금을 받고자 노동부 수원지청에 진정했다가 사업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근로감독관에 의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인계된 인도네시아인 야하.

임금체불 등 인권침해를 당하거나 공공기관의 업무에 협조하기 위해 한국 공공기관을 찾았다가 불법체류자라는 점 때문에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진 사례들이다.

피해사실을 구제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한국의 공공기관들이 이 과정에서 이들을 전혀 보호해주지 않았기에 이들은 결국 자신의 인권침해사실을 고지한 대가로 추방당했거나 추방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2004년 10월과 2007년 8월의 사례는 같은 노동부지청에서 일어난 일이다.

8월 29일 오후 3시, 노동부 수원지청앞에서는 체불임금 진정에 대하여 진술하러 출석하였던 인도네시아인의 연행과 관련하여 노동부의 잘못된 처신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세찬 빗줄기 속에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에서 50여명이 참석하였던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기댈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 등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도록 해야 할 노동부가 오히려 인권침해를 방조 혹은 동조하였음을 규탄하였다.

2007년 8월의 사례만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문제가 발생한 정부기관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토론회나 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개선방안을 요구했다. 지원단체들이 요구했던 내용 중의 하나가 이런 사실과 관련 있는 법조항, 즉 출입국관리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통보의무조항의 개정이었다.

공무원의 통보의무조항에 의하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다가 불법체류 사실을 인지했을 경우 출입국관리사무소 혹은 외국인보호소장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를 말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권을 침해당한 불법체류자가 한국의 국가기관에 구제를 요청하였을 때, 침해당한 인권은 구제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추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꼬투리만 있으면 '네 나라로 돌려보낸다' '잡아보낸다'는 말을 수시로 입에 담는 사업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으로 불법체류자들에게는 인권을 침해당해도 아무소리 말든가 못 참을 정도면 추방을 각오하고 문제삼든가 하라는 것이니 사실상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장하는 법조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위에서 예로 든 일들이 발생했을 때 해당 기관에서는 바로 이 통보의무조항을 들면서 자신들을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지난 몇 년간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는 '인권침해 구제절차가 진행 중일 때 공무원의 통보의무 유예', 구체적으로는 '인권침해사실 선구제 후통보'로 관련 법조항을 개선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 드디어 약간의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법무부는 '선구제 후통보'로 해당 법조항을 개정할 것임을 밝혔고 실제로 지난 7월 23일에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개정 발의되기도 한 것이다. 뒤늦은 조치이기는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노동부 수원지청이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이날의 집회는 재발방지를 약속받고자 노동부 지청장을 만나는 것이 마지막 순서였다. 그러나 지청장은 자리를 비웠고, 모 과장이 대신 시위대표를 만났다. 상호간에 생산적인 대화가 될 수 없을 것임은 처음부터 예측하였지만 최소한 유감의 표현이나 재발방지를 위해 애쓰겠다는 정도의 말은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다분히 정치적인 수사이긴 하지만) 그 정도도 되지 못했다.

공무원의 통보의무조항은 개정될 것이라 예상하지만 법이 개정된다 해서 현실도 따라서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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