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비판 발언'으로 민주당이 고민에 빠졌다. 민주개혁세력으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워독자노선을 택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비난으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또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난감하기만 하다.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김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역공에 나서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당내 일각에선 DJ에 대한 정면 대응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상천 "DJ에 의해 현실정치 방향 바뀌지 않아"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열린우리당 전직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일부 지도자들은 평화노선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시기와 장소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한 민주당 대선후보 조순형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또 김 전 대통령은 26일 민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합류한 추미애 전 의원에게도 "참 잘했다"고 칭찬했다. 민주신당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셈이다.
이처럼 김 전 대통령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이어지자 민주당 지도부는 발끈하고 나섰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28일 오전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에 출연해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무조건 통합하려고 하는 방침은 잘못 파악한 것"이라면서 "정계를 은퇴했기 때문에 옛날같이 다양한 채널로 정보를 받지 못해 정보부족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현실정치인이 아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말씀에 의해 현실정치가 추진되고 또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조병옥, 장면 씨 같은 민주당의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당의 동력은 지도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면서 "경제성장과 소외계층을 보고 병행하는 중도개혁주의 정책노선에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없는 민주당이 호남에서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대해 "호남에서 저희들이 (민주신당을) 앞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호남이 불신이 강하다"면서 "민주당 국회의원 5명을 데리고 갔다고 해서 (민주신당이) 호남의 지지를 받는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우리당과 통합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국정실패 노선을 지금도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과 통합하면 대선에서 이기기가 어렵다"며 독자 경선 후 후보단일화 전략을 고수했다.
앞서 27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DJ의 발언에 대한 반발이 이어졌다. 이상열 정책위의장은 "전직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민주신당을 비호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 손봉숙 의원도 "최근 김 전 대통령이 한 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한 것은 아주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비난의 당사자인 조순형 의원은 지난 26일 김 전 대통령에게 "체통을 지키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반DJ 정서에 편승해 한나라당 노선으로 가선 안 돼"
한편 이번 당내 경선에 참가한 이인제 의원, 김민석 최고위원,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등 조순형 의원을 제외한 대선주자들은 지도부의 'DJ 때리기'에 대해 비판했다. 이들이 이견을 보이고 나선 것은 경쟁자인 조 의원을 의식한 측면도 있지만, 아직도 호남 민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인제 의원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정상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주 만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며 매년 만남을 정례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잔여임기를 이유로 회담 연기를 주장한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고 조 의원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DJ와 정치문제인 대통합과 관련해 이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DJ 정서에 편승해 한나라당식 보수 노선으로 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영환 전 장관은 논평을 통해 "사이비 개혁세력이 김 전 대통령에 기대어 민주당을 공격한다고 해서 보수언론의 반DJ 정서에 기대어 김 전 대통령을 냉소의 대상으로 삼아 민주당의 생존과 성공을 기대할 순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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