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24일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에 대한 파면요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노무현 때리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 민주신당과 민주당 등 범여권 내에서도 비판론이 제기되는 등 정치권 전반이 기자실 통폐합 논란을 두고 청와대를 포위하는 모양새다.
한나라 "독재적 발상…부끄러운 일"
한나라당은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이주영 정책위의장, 당 소속 문광위원 전원이 참석한 대책회의를 열고 "취재의 자유, 보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독재국가에나 있을만한 발상"이라면서 "한나라당은 청와대와 정부의 이런 무모한 책동을 분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에 제출한 국정홍보처장 파면요구 결의안에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명목 아래 55억 원이 넘는 세금을 들여 기자실을 강제로 통폐합하는 것은 물론 기자 등록제 시행 등으로 언론자유를 심각히 위협, 국정홍보처장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흠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김충환 공보부대표는 브리핑에서 "이번 기자실 통폐합 조치는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폭거라는데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봤다"면서 "파면요구 결의안은 앞으로 국회 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또 기자실 통폐합과 관련한 2006년도 예비비 지출승인도 거부키로 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세간에 '언론탄압 5적'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굳이 거명하지 않아도 누구를 말하는지 다들 알 것"이라면서 "대부분 언론인 출신들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친정이나 다름없는 언론을 상대로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나 대변인은 "언론탄압의 정점에는 결국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의 뒤틀린 언론관, 언론에 대한 적개심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언론말살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은 언론인은 물론 국민과 함께 언론말살책동 분쇄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의 '약한고리'?
한나라당의 이같은 공세는 9월 정기국회를 겨냥한 사전 포석.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보수언론은 물론 개혁성향 언론까지 반대하는 노무현 정부의 '약한 고리'라는 인식에서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反)노무현 전선'을 부각시켜 올해 대선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끌어가겠다는 뜻이다.
특히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비판에는 '노무현 색깔 빼기'가 당장의 과제인 범여권도 호응하고 있어 청와대와 정치권 전반의 긴장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합 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이후 가진 브리핑에서 "언론계가 한 목소리로 반대하는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언론단체와 진지하게 협의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정부는 기자들의 취재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 이 정책을 구상했다고 하나, 취재현장에서는 취재통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정부가 지적하는 기자실의 폐해가 과거에는 적지 않았으나, 언론계의 현실이 급격히 변화해 과거의 폐해는 이제 거의 사라진 만큼 정부는 변화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더욱 비판적이었다. 최인기 원내대표는 이날 성명을 통해 "노무현 정부는 중앙부처 기자실을 없애고 대관령 목장만한 합동 브리핑룸으로 대체하는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내놓고 전향적 개편이라고 강변하나, 이는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막가파식 보복폭행이고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언론을 통제하면서 독재를 했던 5공 시절의 언론정책으로 회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최 원내대표는 "기자실 인터넷 회선을 뽑아버리고 경찰서 기자실을 폐쇄하는 등의 조치는 불량사채 수금원의 행동과 다를 바 없으며, 기자들을 바코드를 통해 관리하겠다는 것은 기자등록제의 부활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문광위 격돌…"언론탄압 분쇄" vs "상식적 행태 아니다"
이런 가운데 이날 국회에서 열린 문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민주신당의 친노의원들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발단은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자신의 좌석 앞에 '언론탄압 분쇄'라는 구호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부착하면서부터 불거졌다.
민주신당 이광철 의원은 "지금 (심 의원은) 남의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상식적이지 않은 행태를 그만 두라"면서 "남의 의견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같은 당 정청래 의원도 "사진기자들이 다 찍었으니 이제 그만 떼라"면서 "눈이 아프다. 각막이 피곤해 진다. 홍채, 수정체가 다 피곤하다. 왜 다른 사람의 눈을 탄압하나"면서 "자발적으로 철거하지 않으면 제가 직접 철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재철 의원은 "순서에 있는 내 발언시간을 마칠 때까지 떼지 않겠다"고 버텼고, 전여옥 의원도 정청래 의원을 겨냥해 "눈이 아픈 게 아니라 양심이 아프겠지"라고 쏘아 붙이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양 진영의 의사진행 발언이 이어지면서 신경전은 이날 오전 내내 이어졌고 정상적인 질의응답은 정오가 가까워져서야 겨우 시작됐다.
전여옥 의원은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외교부, 경찰, 노동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등 정부 각 부처 기자단의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노 대통령 개인의 언론 적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손발 노릇을 하는 국정홍보처는 즉각 해체되어야 하며,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역시 백지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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