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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왜곡된 경제담론'이 지배한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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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의 '왜곡된 경제담론'이 지배한 경선"

[좌담]"'경제'대 '평화'는 범여권 필패구도"

실질적으로는 1년2개월 간 진행된 한나라당 경선이 끝났다. 도덕성 검증을 둘러싼 네거티브 공방전에 파묻혀 국가적 의제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2007년 대선의 한 축이 완성됐다는 점은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 복판으로 진입한 우리사회에서 나타난 '이명박 현상'은 단지 범여권과 진보진영의 무기력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과연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어떻게 봐야 할까. <프레시안>이 연재 중인 '대선이야기'에 참여한 필자들 가운데 손호철 서강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의 좌담을 통해 짚어봤다.

"경제에 대한 막연한 심리가 작용한 결과"

좌담 참석자들의 공통된 화두는 '시대정신'이었다. 또한 시대정신의 요체가 '경제'라는 점에도 이견이 없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이같은 시대정신의 일정한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왜곡된 반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이 후보의 '경제 담론'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손 교수는 "시대정신에서 박근혜가 상징하는 냉전적 보수로는 시대를 이끌어가기 어렵지 않은가 하는 점을 보수진영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 교수는 그러나 "지금 핵심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의 문제, 사회적 양극화다. 그것이 소위 경제라는 담론으로 왜곡되고 단순화됐다"며 "이명박의 성공한 CEO, 그가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호기 교수도 "경제, 성장, 발전에 대한 대중들의 간절한 염원에 이명박 후보가 경제주의적 민중주의, 즉 포퓰리즘의 형태로 불을 댕겼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이명박은 우리사회의 산업화세력을 상징하는 박정희, 정주영과 결합했다"며 "이명박의 상징과 그가 내놓은 신개발주의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긴장이 덜했다"고 분석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정치적 상징과 '줄푸세'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 사이의 긴장"을 유발한 박근혜 후보와 대비됐다는 것이다.

박성민 대표도 "박정희 장점은 이명박이 다 가져가고 박정희의 부채인 역사에 관한 문제만 딸인 박근혜에게 전이된 것 같다"고 호응했다. 박 대표는 또한 "박근혜 후보가 너무 네거티브를 하다보니 자신의 비전마저도 묻혀버렸다"며 "최초 박 후보가 '5년 안에 선진국이 되겠다'고 한 슬로건은 좋았으나 후반에 너무 네거티브를 하다보니 자신의 포지티브한 흡인력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사람들은 도곡동 땅이 이명박 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지한다"
▲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 '이명박 현상'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프레시안

그렇다면 '이명박 현상'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이는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도덕성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김호기 교수는 "경제와 성장, 발전의 열망과 대선후보가 가져야 할 도덕성에 대한 인내의 하한선이 어느 시점엔가 충돌할 것"이라며 "인내의 하한선에 도달하게 되면 결과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유보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박성민 대표는 "이명박의 도덕성과 관련해선 사람들이 도곡동 땅이 이명박 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지하는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땅이 이명박 땅이 아니라고 해도 지지하지 않는다"며 "이명박이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로 지지층이 갈리는 폭은 생각보다 작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도 "결국 이명박 대세론이 꺾일 것인지는 국민이 분노할 수 있는 네거티브한 이슈들이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는 적다"며 "오히려 다른 변수가 중요하다. 얼마나 박근혜를 껴안고 당을 추스르고 한나라당을 통합적 리더십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 등"이라고 했다.

손 교수는 특히 "(박근혜가 낙선하면)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한 박근혜의 지지자들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정당 해체로 가는 현상을 가늠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당은 핵심은 지역이었는데 정당의 해체 현상은 한국의 정당 정치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과 차별성 없다는 게 범여권의 비극"

'경제'를 앞세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범여권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대선구도를 창출했다는 점에서도 토론자들의 견해가 비슷했다. 범여권이 관심을 기울이는 평화 이슈는 경제 담론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성민 대표는 "민주화세력이 민주화됐기 때문에 헤매는 것처럼 평화 이슈는 별로 범여권에 유리하지 못하다"며 "평화와 돈, 평화와 빵, 평화와 밥 등으로 선진이라는 문제를 뒤쪽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것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김호기 교수도 "한나라당도 온건유화 정책을 지지하는데 각이 나오나. 각이 안 나오는 평화이슈로 범여권이 각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경제대통령 대 평화대통령은 일종의 필패구도다. 한나라당이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담론과 비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범여권의 비극은 한나라당과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 역시 "핵사태가 다시 벌어져서 전쟁이냐 평화냐 겁을 줄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평화를 당연시하는 마당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며 "물론 평화를 고립된 이슈가 아니라 선진화 프로젝트와 연결시켜서 제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얼마나 우리들의 생존권문제, 양극화 문제 해결에 도움되는 것처럼 설득할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적이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진행으로 '이명박 후보의 한나라당 경선 당선과 2007년 대선'을 주제로 가진 좌담 전문.
▲ ⓒ프레시안

보수는 왜 이명박을 택했나?

프레시안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을 선택하게 된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손호철 :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는 당선가능성이다. 박근혜 같은 강한 냉전적 보수가 후보로 나오면 과거의 군사독재와 민주화세력의 대결구도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중도적 표를 끌어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둘째는 후보가 상징하는 시대정신에서도 박근혜가 상징하는 냉전적 보수로서는 시대를 이끌어가기 어렵지 않은가 하는 점을 보수진영 스스로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김호기 : 비슷한 견해다. 첫째는 이념적 선택이다. 박근혜 쪽이 정통보수라면 이명박은 온건보수에 가깝다. 보수진영 내에서 정통보수보다는 온건보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높지 않았나 싶다. 두 번째는 전략적 선택이다. 많은 사람들이 12월 19일 대선에서의 본선경쟁력이 박근혜보다는 이명박 후보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권력을 상실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대선에서의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전략적 선택의 결과가 이명박이 된 원인이다.

박성민 : 이명박의 당선가능성은 수치로 나와 있었다. 호남, 수도권 30~40대, 화이트칼라 지지층 흡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세계적으로 부동층은 줄어들고 투표율은 늘어나는 추세다. 유권자들이 마음의 결심을 조기에 굳히고 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현재 여야 후보군을 다 포함시켜 조사하면 지지율 합계가 85%가 된다. 부동층이 15% 미만이다. 정당지지율도 합치면 80%가 된다. 이것은 냉전시대처럼 유권자들이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인데, 최근 2, 3년 사이에는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유럽의 복지모델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게 대체적이다. 독일, 프랑스의 보수화 바람이 이를 보여준다. 그런 것이 한국 선거에도 반영된 부분이 있다.

역으로 왜 박근혜가 졌냐고 따져볼 필요도 있다. 첫째 너무 네거티브를 하다 보니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박근혜의 문제는 자기가 내건 네거티브에 자기 비전마저도 묻혀버린 점이다. 두 번째는 수도권과 호남에서 밀린 것이 패착이다. 역사인식에 한계를 드러낸 것과 관련이 있다. 셋째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스킨십 부족이다. 당대표를 했으면 당심을 잡았어야 했다. 당원과 대의원에서 앞설 것이라고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들은 이명박 쪽으로 갔다. 그러다보니 박근혜는 마지막엔 민심 가지고 이겨보려고 했다. 이건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애국심만 강조했지, 한사람 한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가지 추가하자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의 공통점은 상고 출신, 자수성가형이라는 점이다. 한국현대사는 밑에서부터 박박 기어온 역사인데 정몽준이나 박근혜 같은 사람들은 아버지 잘 만나서 저렇게 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프레시안 :이명박 대세론, 또는 이명박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즉 차명재산 등 도덕성과 관련된 의혹이 계속 나왔는데도 지지율이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명박을 대한 지지를 멈추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 손호철 교수. ⓒ프레시안

손호철 :
이명박이 우리시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최소한 박근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명박이 경제대통령 외에 뭐가 있나.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정책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는 대운하 외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특히 네거티브만 하다보니 박근혜가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가 없어졌다. 박근혜가 스스로 무덤을 판 대목이고 되짚어 보면 한나라당 경선이 갖는 한계일 수도 있다.

김호기 : 민중주의, 포퓰리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7년엔 기본적으로 DJP 연합이라는 지역연합을 토대로 영남 패권주의에 도전하겠다는 포퓰리즘이 작용했다. 민주화의 절정의 시대였던 2002년 대선은 기득권계급과 반기득권 계급 간의 갈등이 선거의 저변에 흐르고 있었다. 노무현이라고 하는 상징이 기득권 계급에 대한 거부, 타파의 시대정신을 이루고 있었다.

최근 우리의 민중주의를 동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주의다. 경제, 성장, 발전에 대한 대중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양극화가 강화되면서 국민 누구나 경제와 성장, 발전의 열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그 열망에 불을 댕겨야 한다. 이명박이 불을 댕겼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명박의 삶의 역정이 경제주의적 민중주의, 즉 포퓰리즘의 형태로 불을 댕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온갖 네거티브에도 불구하고 35% 이상의 높은 지지를 얻은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번 대선은 이른바 경제주의적 포퓰리즘을 둘러싸고 선거가 진행될 것이고, 이에 대한 상대 진영이 대립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따라 이번 대선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박성민 : 슬로건을 관심 있게 봤다. 박근혜가 '5년 안에 선진국 달성'을 처음에 들고 나왔을 때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프레임은 박근혜가 잘 잡았다. 프레임은 무서운 것이다. 예컨대 '부패했지만 유능한 한나라당, 깨끗하지만 무능한 열린우리당' 프레임이 잡히면 유능-무능만 남는다. 이 프레임에선 여당이 절대로 못 이긴다.

그러나 이번 한나라당 경선의 말미에 박근혜는 흠이 있는 후보는 진다는 도덕성 프레임으로 갔다. 문제는 너무 네거티브를 하다 보니 5년 안에 선진국을 달성하겠다는 자기의 포지티브한 흡인력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 대안이 없으니 이명박의 도덕성 문제가 터져도 박근혜 쪽으로 넘어갈 표가 없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가 박정희, 육영수의 딸이라는 걸 확인시키며 국가주의적으로 간 반면, 상대적으로 이명박은 대한민국을 기업체로 봤다. 안보체로서의 국가라는 개념보다 세계와 경쟁하는 기업과 개인에게 가중치를 뒀다. 이것이 애국심을 강조한 것에 비해 젊은층에 대한 호소력이 있었다.

김호기 : 상징과 정책의 긴장이 있었다. 현재 우리의 보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는 반공주의, 개발독재로 상징되는 구식 보수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신개발주의로 상징되는 신보수주의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정치적 상징을 갖고 있음에도 정작 박근혜가 내세운 대표적 정책인 줄푸세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다. 유권자들에게 상징과 정책 사이에 일종의 긴장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정책담론들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차라리 박정희의 딸로서 강한 대처리즘 같은 것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반면 이명박은 우리사회의 산업화세력을 상징하는 박정희, 정주영과 결합했다. 재벌기업을 이끈 정주영의 후예인 동시에 대운하 프로젝트는 제2의 경부고속도로와 비견될 만큼 박정희를 닮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의 상징과 신개발주의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긴장이 덜했다.

박성민 : 박정희 장점은 이명박이 다 가져가고 박정희의 부채인 역사에 관한 문제만 딸인 박근혜에게 전이된 것 같다. 박근혜는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라도 가져왔어야 했는데, 아버지 얘기를 그렇게 많이 했음에도 아버지의 장점은 이명박이 가져가고 낡은 유산만 가져왔다.

손호철 : 시대정신을 달리 얘기하면 97년 대선의 경우 정권교체가 중요한 시대적 화두였다면 2002년에는 3김정치 청산, 세대교체 등이었다. 지금은 핵심적인 것은 신자유주의의 문제, 사회적 양극화다. 그것이 소위 경제라는 담론으로 왜곡되고 단순화됐다. 자유주의 정권 10년간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양극화에 대한 해결방안이 이명박 식의 해법으로 해결될 것이냐는 문제가 분석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은 이명박의 성공한 CEO, 그가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물론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이 모두 신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혼합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박근혜가 부정적 결합으로 나타났다면, 이명박은 겉으로 보기에는 포지티브하게 국민들에게 인식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TK에서 지고도 당선된 최초의 정치인"

프레시안 :경제인 출신의 이명박은 전통적 의미의 정치인은 아니다. 굴러온 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명박이 한나라당의 후보로 뽑힌 것은 한나라당의 체질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손호철 : 과거에도 이회창이라는 굴러온 돌이 있었으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가 당선되면 이명박 지지자 중에 상당수가 박근혜를 안 찍겠다고 응답한다. 이는 얼마나 정당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개인에 대한 지지 중심으로 흘러왔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정치가 정당의 틀이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개인에 대한 지지가 정당 해체적으로 나타나는 느낌이 강하다.

프레시안 :달리 질문을 해본다면 경제인 출신의 정주영은 92년 대선에서 실패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진 성공적이다. 그런 것이 시대적인 분위기와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 박성민 대표. ⓒ프레시안

박성민 :
정치 지도자는 CEO형 이미지, 정치가적 이미지, 사상가적 이미지, 운동가적 이미지 가운데 최소한 어느 하나는 가져야 한다. 화합하고 크게 타협하는 정치가적 이미지는 JP가 대표적이다. 지장의 이미지, 사상가적 이미지는 DJ다. 운동가적 이미지는 YS가 가지고 있었다. 박근혜가 이명박을 이기려면 무엇 하나를 확실히 가져야 하는데,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손호철 : 박근혜는 너무 운동가적 이미지 때문에 실패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반공의 투사,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한 순교자적 이미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념적 경직성과 꼴보수로 보이는 것이다.

김호기 : 이명박의 정치경력이 짧지는 않지만 기업 CEO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한나라당의 선거에서 나타난 것은 약간의 이념적 변화, 즉 구식 개발독재와 함께 신개발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다. 747 공약, 대운하, 줄푸세 등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이념은 구식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한나라당을 과거의 민자당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 구식개발주의가 국가주의에 기반 해 있다면 신개발주의는 신자유주의나 개인주의에 친화돼 있다.

둘째는 조직운영의 문제다. 경선의 네거티브를 돌아보면 보수정당의 구태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가 전국에 걸쳐 정책 간담회를 했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대북정책이나 사회정책에서 변화도 보인다. 보육, 육아정책에서부터 보수주의적 복지정책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정책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즉 경선의 진행과정이나 정책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인정할 부분이 있다. 분명히 보수정당이 변화과정에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박성민 : 주목할 만한 대목은 민자당 때부터 당대표와 대선후보 선출을 할 때 TK에서 이긴 사람이 무조건 이겼다. 노태우, 김영삼은 물론이고 당 대표로 서청원, 최병렬, 강재섭이 될 때도 목격했다. TK에서 이긴 사람이 다 됐다. 이명박의 당선은 TK에서 지고 최초로 승리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세대, 이념, 계층, 지역을 나눠서 보자면 이명박의 입장에선 중도로 와도 된다. 극우보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대선은 중부권(충북)에서 이긴 사람이 다 됐다. 계층에선 중산층이다. 서민표를 겨냥해선 집권 못한다. 서민도 중산층을 꿈꾸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는 40, 50대를 잡느냐의 싸움인데, 이명박 만한 후보가 없다.

손호철 : 대구에서 지고 처음 승리한 경우가 맞다. TK의 전략적 선택이 중요한 것 같다. 과거와 같은 정서적 지역주의를 넘어섰다.

다만 향후 유심히 살펴볼 문제는 박근혜의 지지자들이 향후 어떻게 할 것이냐다.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현상이 정당 해체로 가는 것인지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당의 핵심은 지역이었는데, 이것이 봉합되고 여론조사 수치처럼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인지는 대선의 결과, 나아가 한국의 정당정치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질 것이다.

김호기 : 이명박의 당선을 거시적으로 보자면 우리사회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의 영향력이 정치권력에서 경제적 자본으로 이동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핵심은 더 이상 정당이 아니라 기업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많은 사람이 이명박에 갖고 있는 것은 서울시장 이미지와 함께 현대건설 사장의 이미지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엔 현대건설 사장 이미지에 매료돼 이명박에게 맡겨보자는 심리가 있을 것이다.

"이명박의 함정은 지금부터"

프레시안 :이명박 대세론, 내지 이명박 현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앞으로 본선 과정에서 도덕성에 관련된 의혹이 과연 이명박 후보의 대권도전의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인지 전망해보자면 어떤가.

▲ 김호기 교수. ⓒ프레시안

김호기 :
두 가지가 충돌할 것이다. 한편에는 경제와 성장, 발전의 열망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대선후보가 가져야 할 도덕성, 즉 부정부패에 대한 인내의 하한선이 있다. 아직 인내의 하한선에 도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어느 시점엔가 충돌할 것으로 본다. 충돌했을 때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다. 인내의 하한선에 도달하게 되면 결과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 지지 철회를 빠른 속도로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내의 하한선이 어디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의식의 영역인 것 같다.

박성민 : 잘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명박의 도덕성과 관련해선 사람들이 도곡동 땅이 이명박 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지하는 것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땅이 이명박 땅이 아니라고 해도 지지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로 지지층이 갈리는 폭은 생각보다 작다.

또한 이슈보다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중요하다. 60%는 이명박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60%는 검찰이 적절하지 못한 표현을 썼다고 한다. 맥락에서의 싸움이었다. 도곡동 땅의 진실여부가 문제냐 국정원 문제가 문제냐의 맥락에서 싸움을 할 것이기 때문에 도덕성 문제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고 본다.

손호철 : 도덕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회창 때와는 다를 것이다. 이명박은 귀족이 아니라 자수성가형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여권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엑스파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국정원 등으로부터 정치공작을 받은 것 같은 피해자 이미지로 굉장히 성공적으로 방어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최장집 선생의 말대로 검찰이 정치를 대신하는 것은 잘못됐다. 정치를 검찰이 대신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잘못됐다.

결국 이명박 대세론이 꺾일 것인지는 국민이 분노할 수 있는 네거티브한 이슈들이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는 적다. 오히려 다른 변수가 중요하다. 얼마나 박근혜를 껴안고 당을 추스르고 한나라당을 통합적 리더십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 등이다.

박성민 : 이명박에게 우려되는 것은 공격이 들어오면 대응을 잘 못한다는 점이다. 위장전입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도 좀 더 감동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그때는 대통령 나갈 생각을 안했었다는 식의 말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

김호기 : 역량 대 도덕성의 문제인 것 같다. 국민들은 상당수가 이명박이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흠결이 있어도 역량 때문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가 관건이다.

손호철 : 이명박이 추락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자멸할 가능성이다. 박근혜는 노무현과 순교자주의에서 닮았다. 노무현은 내가 반주류, 소수이지만 항상 이긴다는 것이고, 박근혜는 주류, 좌파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것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가슴이 닮았다. 박근혜에 비해 이명박은 노무현 대통령의 입을 닮았다. 언제라도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 엉뚱한 발언을 해서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김호기 : 특이한 것은 지난 구설파동을 보면 이명박에 대해선 이 문제가 대중들에게 적지 않게 용인된다는 점이다. 또한 결국 후보가 된 것이 어느 면에서는 면죄부다. 앞으로 터질 일에 대한 예고편이지만 면역일 수도 있다.

이는 이명박 대세론에 실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97년 대선과 02년 대선에서는 시대정신을 DJ나 노무현이 쥐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대정신을 경제, 성장, 발전 등으로 볼 때 올해 선거에선 보수 후보가 먼저 쥐고 나왔다. 이것이 대세론의 중요한 실체 같다.

손호철 : 유권자들이 투표경향은 두 가지다. 회고투표, 전망투표다. 회고투표로 가면 여당은 게임이 안 된다. 전망투표로 가야 하는데 여권은 신자유주의 양극화 문제에서 담론을 제시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평화이슈 가지고 헛다리짚고 있다. 평화담론을 가지고 한나라당과 차별화해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박성민 : 이회창은 미래비전이 없어서 진 것이지, 도덕성이 없어서 진 게 아니다. 이회창이 우리 주머니를 채워줄 비전이 있다면 왜 선택하지 않았겠나. 그런 면에서 이명박에 기대하는 것은 무언가 맡기면 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다만 함정은 후보가 된 지금부터다. 측근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다. 그렇게 욕 먹고도 또 그런일이 발생하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한나라당의 '쥐약'은 화합론이다. 지금부터는 화합이냐 혁신이냐의 싸움이다. 무조건 혁신으로 가야 한다. 혁신이 아니고선 다른 방법이 없다. 화합론은 지도부가 눌러앉을 생각을 하니 나오는 것이다. 강재섭 대표가 당직개편 빨리 하겠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혁신론은 나오기 어렵다. 칼로 다른 세력을 치겠다는 것이니 쉽게 나올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의 대세론이 꺾이는 변수는 화합론이 지배하면서 당이 엉망이 되는 것이다.

"후보불가론으로 후보 바뀐 일 있나"

프레시안 :그런 면에선 박근혜 후보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김호기 : 박근혜는 원칙론으로 경선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받아들이면서 후일을 도모하지 않겠나. 이명박이 가진 도덕적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은인자중 할 것이다. 또한 보수의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정말 크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열망 때문에 일단은 화합하고 나갈 것 같다.

그러나 봉합된다고 해도 내부에서 정통보수와 중도보수 사이의 긴장은 제고될 것이다. 남북관계를 포함해 사회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전통적 지지그룹과 이명박 캠프에 합류한 중도보수적 성향 사이에서 보수적 유권자층을 놓고 상당한 긴장이 발생할 것이다. 이명박에게 부여된 과제는 긴장관리다.

또한 이제부터는 지지율 1위의 이명박 후보와 현직 대통령 사이에 이중권력의 시대가 시작된다. 우리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은 이명박과 노무현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중요의제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한사람은 실질적 권력으로, 다른 한사람은 여론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할 것이다. 12.19대선까지 남북정상회담 등 여러 가지 의제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후보가 어떤 역량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후보가 되자마자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것인데,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헤쳐갈 것인가도 대단히 중요하다.

▲ ⓒ프레시안

박성민 :
경선 끝나고 후보 불가론 등으로 후보가 바뀐 일은 본 적 없다. 흔든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한 사례도 없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성장하고 망하는데, 패배를 통해서도 성장하기도 한다. 낙법을 잘 해야 한다. 그 쟁쟁하던 박찬종, 이인제, 후단협을 보라. 국민들은 한번 멋있게 싸웠으면 그만이지 뭘 흔드느냐고 평가할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일단 당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총선 공천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갈라질 것이다.

손호철 : 박근혜의 선택도 중요하고, 박근혜 세력에 대해서도 이명박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박근혜의 선택과 상관없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선택은 다른 문제다. 정당해체적인 새로운 현상인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중권력 상태에선 측근관리가 중요하다. 다시 비리가 터지면 용서가 안 된다. 이념적으로는 중도보수와 정통보수, 냉전적 보수 간에 긴장이 고조되겠지만, 통상 경선과정에선 극단으로 가고 후에는 중앙으로 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냉전적 보수세력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한나라당의 노선은 중도로 올 수밖에 없다.

"평화이슈는 범여권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프레시안 :이슈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범여권에서 주목하는 평화이슈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이명박 후보가 과연 중도로 갈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박성민 : 현재 한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정신은 선진국으로 가자는 게 평화보다 더 강하다. 사람들은 급해질 때 문제를 찾는다. 역대 선거에서 북풍은 긴장이 고조됐을 때 해결하라는 차원에서 고조됐다. 긴장이 완화되면 사람들은 평화를 당연시한다. 민주화세력이 민주화됐기 때문에 헤매는 것처럼 평화 이슈는 별로 범여권에 유리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다른 이슈를 개발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여권의 모든 대선후보가 평화이슈에 매몰될 것이다. 대중은 별로 관심이 없다. 여권의 전략가들은 '선진화가 어떻게 한나라당이 더 잘한다는 것이냐. 세계화 시대에서 한나라당은 감당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평화와 돈, 평화와 빵, 평화와 밥 등으로 선진이라는 문제를 뒤쪽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것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

김호기 : 평화이슈 가지고는 각이 안 나온다. 한나라당도 온건유화 정책을 지지하는데 각이 나오나. 각이 안 나오는 것을 범여권이 각을 만들려고 한다. 오히려 각이 나오는 것은 세금을 올릴 것인가 낮출 것인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노동시장을 유연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 교육의 3불정책을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이다. 평화 이슈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올해의 대선에서 각을 만드는 이슈는 아니다. 범여권이 과대평가한 부분이 있다.

손호철 : 핵사태가 다시 벌어져서 전쟁이냐 평화냐 겁을 줄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평화를 당연시하는 마당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물론 평화를 고립된 이슈가 아니라 선진화 프로젝트와 연결시켜서 제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얼마나 우리들의 생존권문제, 양극화 문제 해결에 도움되는 것처럼 설득할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적이다.

박성민 : 왜 정형근 의원이 평화정책 만들어놓고 향군회에 가서 계란을 맞을까. 같은 상황이면 이제 이명박도 갈 것이다. 그런 수난을 당하고도 시대가 바뀌었다고 할 것이다. 보수세력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서 변화에 이용하는 퍼포먼스다.

손호철 : 우리당과 다르게 민노당 같은 정당이 한나라당엔 없다. 한나라당이 중도로 가도, 그래서 불만이 있는 정통보수도 한나라당 찍을 수밖에 없다. 운신의 폭이 훨씬 자유롭다.

프레시안 :이명박이 경제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했을 뿐이지 실제 내용은 별로 없다. 이에 대응해서 범여권이나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김호기 : 경제대통령 대 평화대통령은 일종의 필패구도다. 한나라당이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담론과 비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범여권의 비극은 한나라당과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이 전체 금융자본의 45% 비정규직이 470만, 일자리 창출이 중요함에도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정책적 이슈목록에서 DJ정부나 노 정부가 한나라당 정책과 각이 없다. 이것이 최대 딜레마다. 4개월간 유의미한 대선구도가 이뤄지려면 비전, 담론,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박성민 : 87년엔 자유주의가 진보와 손잡고 보수에 대립한 반면, 지금은 자유주의가 보수주의와 손잡고 진보에 대응하는 형국이다. 정당은 동지들이 하는 것인데, 민노당은 '동지'들이 한다. 한나라당은 '동업'이라도 한다. 범여권은 동거를 할 뿐이다. 그러니 그 당에서 내놓을 만한 노선이 거의 없다. 북한을 끌어들여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데 대중들은 지겨워한다.

손호철 : 자유주의의 빈곤이다.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없다. 하나는 지난 10년의 업적이 문제다.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한 것은 집권한 자유주의자들이다. 한나라당은 개발독재는 했지만 신자유주의에선 피를 안 묻혔다. 그렇다고 경제에 대한 다른 의견을 내기도 어렵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내에선 보여줄 게 없기 때문이다. 그 딜레마를 풀기 어렵다.

김호기 : 총선은 회고투표, 대선은 전망투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회고투표의 성격이 두드러질 것이다. 5년이 아니라 10년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DJ, 노무현이 추구한 건 서유럽의 제3의 길에 대한 한국적 변용이다.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복지국가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복지정책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해온 것 같긴 하다. 그러나 결과는 양극화 강화, 비정규직 확대, 중소기업 자영업자 몰락이다. 이러다보니 대안이 없다. 진보진영이 위기와 맞물려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노당이 제시하는 안이 현재의 우리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돌파할 실현가능성으로서 자리매김되지도 못했다.

프레시안 :범여권이나 민노당에서 이명박에 대응할 만한 희망의 싹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공통적인 것 같다.

박성민 : 현재의 여권을 끌고 있는 노무현, 김대중, 손학규가 동일하게 세계화와 한미 FTA 지지다. 선진이라는 단어를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썼다. 그런데 손학규가 범여권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반성문을 제출하며 평화담론을 말하고 있다. 다른 범여권 후보들도 일거에 다른 문제에서 손을 떼고 이 문제로 몰입하고 있다. 앞으로 더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이명박에 부여하고 범여권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

손호철 : 범여권으로 좁혀서 말하면 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일수록 지지도가 낮고, 각이 없을수록 지지도가 높은 역설이 있다. 손학규의 선진평화론은 가장 충실한 노무현 노선이다. 그나마 개혁적인 노선을 명확히 하는 천정배의 경우 지지도가 훨씬 낮다. 때문에 결국 지금의 지지도 하에서 이루어진 범여권 후보가 얼마나 이명박에 각을 만들까 회의적이다.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 돌아가 차이를 찾는 것 같다.

김호기 : 담론 수준에서 보자면 나쁜 세계화와 반세계화 사이에서 범여권은 좋은 세계화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 다수는 세계화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범여권에 부여된 과제는 비전이나 담론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이분구도를 탈피해 나쁜 세계화, 좋은 세계화, 반세계화의 3분구도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후보와 정책적 역량이 있어야 한다.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가 개방과 복지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조사를 보면 개방과 복지를 동시에 원하는 지지그룹이 있다. 이것이 범여권 원래 지지그룹이었다. 그러나 개방과 복지의 양립은 신자유주의라는 구조적 조건 하에선 대단히 어렵다. 물론 네덜란드, 덴마크, 아일랜드, 스웨덴 같은 나라가 있긴 하지만.

손호철 : 유럽 선진국을 보면 개방도와 복지도는 비례한다. 개방한 나라일수록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사회적 압력을 받기 때문에 복지가 강화되는데 우리 조건에선 도저히 되지 않는다.

김호기 : 이를 제시할 수 있는 범여권 후보도 없다. 만약 이를 제시할 수 있다면 정치적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만들어낼 비전과 정책이 취약하다. 이것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범여권의 지지부진, 지리멸렬은 12월19일까지 갈 것이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구도다.

손호철 : 범여권이 그것을 허공에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면 좋은 세계화 이론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 대안적 세계화의 내용은 반자본주의적이다. 기존의 금융세계화를 전제로 한 좋은 세계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호기 : 준비도 거의 안 돼 있었고 실패한 것이지만, 김근태 전의장 체제에서 한국식 뉴딜의 문제의식은 공감했다. 개방과 복지를 양립시킬 수 있는 게 타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준비도 제대로 안했고 프로그램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날 노총을 방문하고, 전경련을 방문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덴마크, 네덜란드처럼 대단히 치밀한 로드맵과 사회적 조건이 성숙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 보니 오히려 희화화 된 것이다. 범여권은 사회적 타협에 기반 한 지속가능한 세계화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박성민 : 유시민이 선진통상국가론, 사회투자국가론으로 말하는데 설득력 차원에선 말이 어렵다. 말은 다들 양극화가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나와서 지난 10년간 했던 정치적 행동을 가지고 설득하려고 했을 때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진보진영 쪽을 보자면 국제적으로 압력을 받아 나온 현상을 일국가 차원에서 해결책을 낼 수 없는 처지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해 데모하고 소리 지르면 달라질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범여권, 이래서 어렵다

김호기 : 비전과 담론의 빈곤에 더불어 집권층이 지난 10년 동안 유지해 온 관성도 문제다. 몸이 무겁다. 절박감이 부족하다. 선거에서 중요한 건 권력의지다. 지금은 현재시점에서 보면 권력의지가 가장 큰 사람은 이명박 후보다. 범여권에서도 어찌 보면 한나라당에서 온 손학규가 제일 클지도 모르겠다. 권력의지가 있으니 이리로 옮겨온 것 아니겠나.

또한 범여권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세력은 여전히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국민들 눈에는 기득권 세력이다. 권력의지도 취약하고, 자기에 대한 성찰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선 이번 대선이 쉽지 않다.

손호철 : 김근태식의 뉴딜에서 견해가 다르다. 사회적 타협 모델을 만드는 것은 좋을 수 있지만, 김근태 식의 한국판 뉴딜은 이명박과 다르지 않다. 성장률을 높이면 되는 것처럼 해선 되지 않는다. 60년대에 없어진 떡고물 이론을 신자유주의적 떡고물 이론으로 변용해 국민을 설득하려고 하는데 잘못됐다. 세계화 대응모델은 국가마다 다르다. 중국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중상주의적이다.

그렇게 볼 때 범여권이 우리사회의 대응 모델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는 21세기 발전모형에 대해 국민적 토론을 조직화했어야 했는데 계몽군주와 같았다. 지난 5년 동안 여권은 국가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모형을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민노당의 경우에는 덜 일하고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하는 기본적인 문명관이나 환경까지 고려한 복합적 모형에서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얼마나 해줄 수 있겠느냐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선 안 된다.

민노당은 더 안 되는 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당으로서의 이미지라도 갖췄냐는 것이다. 범여권만 평화이슈에 매달린 게 아니라 민노당도 동일하다. 자주파의 압도 하에 북핵문제가 터졌을 때 자위권이라는 소리나 했다. 노무현 정부때만큼 민노당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었나. 노무현이 민노당 비밀당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모두 헛발질을 했는데, 오히려 히트친 것은 홍준표의 반값아파트다. 민노당 역시 이명박의 경제대통령에 대응하는 경제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김호기 : 민노당이 의미있는 3자 구도를 형성하는 데에서 우리 조건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우리가 너무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를 이루다보니 국민들 의식에는 개발독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납득하기 쉽지 않은 친화성이 있다.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 신자유주의에 대한 호감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영역에서도 경쟁의 원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의 특성에 고려해볼 때는 민노당의 현재노선은 대중적 영향력을 갖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민노당은 사안에 따라선 우향우가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 민노당에게는 원칙보다는 실용이 중요한 것이다. 민노당에서 누가 후보가 될지 모르겠으나 실용적인 정책노선을 강화하면 이번 대선이 3자구도로 치러질 수 있다고 본다.

범여권에는 두 번의 기회가 있다고 본다. 10월 중순으로 예정된 후보선출이 첫째다. 11월 중순께 민주당 후보와의 통합하는 게 두 번째다. 이벤트는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기본 구도를 바꿔내는 게 중요하다. 여태까지는 박·이·손 기본구도였다. 구도가 변하려면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이 첫 번째 사건이고, 두 번째는 범여권 후보 당선이다. 셋째는 단일화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경쟁력 있는 구도를 만들어가는 관건이다.

박성민 : 민노당에 관해 말하자면 한나라당과 범여권 양쪽을 다 비판하면서 다 먹겠다는 것은 비겁하다. 민노당이 그렇게만 나온다면 3자 구도는 전혀 상상이 안 된다. 다만 범여권 후보가 20% 초반대에 머물고 2, 3등 경쟁이 되면 민노당이 완전히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

▲ ⓒ프레시안

손호철 :
여권의 인기하락이 민노당의 동반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노당 위기돌파의 핵심은 범여권과의 차별화다. 민노당이 우경화를 할 경우 범여권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민노당을 찍을 이유가 없어진다. 여권 쪽으로 가야 표를 얻는다는 건 잘못생각한 것이다. 아직 민노당은 그럴 단계가 아니다. 민노당은 젊은 진보와 낡은 보수의 대결로 만들어야 한다.

한편 여권이 2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보면 여권이 가지고 있는 기회라는 것은 어차피 범여권 후보가 결집되면 호남표는 온다는 것에 기반해 있다. 가능성 있는 것은 DJP를 복원하는 것이다. 지금은 손학규가 선두를 다투고 있지만 필패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선 충청권이 고향인 이해찬이 가능성 있는 듯이 보여지지만 이해찬에 대한 독선적이라는 평가도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다.

김호기 : 범여권 경선이 친노-반노로 대립 선거가 되면 불리하다. 친노적 이미지 가진 후보로는 게임 자체가 쉽지 않다. 비노반한이 범여권에선 적어도 대중들의 표심, 정서에서 유의미한 것 같다. 이번 대선의 의미는 내년 총선하고 직결된다. 범여권도 민노당도,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내오느냐가 중요하다. 지더라도 몇%로 지느냐가 총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범여권이 지리멸렬하게 지면 대단히 우려스러운 결과 나올 것이다. 수도권, 영남권에서 압승한 한나라당은 내부분화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독식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범여권은 호남자민련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준비를 잘 못하면 범여권은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진다.

박성민 : 범여권 실패의 원인은 DJ 과대평가와 노무현에 대한 과소평가에 있다. 지금 여권 일부에서 국정 실패한 사람을 떼어내자고 하는데 그러면 백전백패다. 뭐가 실패했냐고 나가는 것이 오히려 낫다.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면 '민주화의 덕이라고, 자율성과 창의성 덕이라고 치고 나와야 한다. 그러나 유능-무능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기 때문에 노무현을 멀리하는 것이다. 범여권은 DJ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야 한다. 예컨대 손학규는 DJ보다는 노무현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게 좋았다.

손호철 : 노무현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대세에 따라가겠다고 하지만, 민주당과의 통합문제 등이 남아있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친노세력이 비호남, 영남의 민중운동세력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고 DJ식 대통합론과는 차이가 있다. 이번 대선구도는 대선의 구도뿐만 아니라 총선의 구도다. 그 점을 고려할 때 노 대통령이 대선에 손을 놓고 있을까 회의적이다. 이번 대선과 총선 구도는 노무현과 김대중 프로젝트의 경쟁과 대립이다. 지금까지는 김대중 프로젝트가 관철되고 있는데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가만히 있을지가 변수다.

프레시안 :한나라당의 경선은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논의된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지 않은 측면이 작용해서인 듯하다. 앞으로의 대선 과정에서 진지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하고 오늘 토론은 이쯤에서 마무리지을까 한다. 긴 시간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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