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쥐와 시골 쥐 우화가 있다. 서울 쥐와 시골 쥐는 먼 친척인데, 어느 날 시골 쥐의 초청으로 서울 쥐가 시골을 방문했고, 볼품없는 친척집과 음식을 핀잔했다. 그 후 서울 쥐의 초청으로 시골 쥐가 서울을 방문했고, 으리으리한 친척집과 굉장한 음식에 놀란다. 그러다 갑자기 등장한 사람 주인에 또한 놀라 쥐구멍으로 숨게 된 시골 쥐는 이런 불안한 생활을 하느니 콩만 먹고 살더라도 시골로 가서 마음 편하게 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시골로 떠난다.
이 우화는 불안정한 풍요로움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 더 낫다는 교훈을 준다.
하지만 이 우화의 교훈이 오늘날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안분지족보다는 불안정한 풍요로움을 향해 수도권으로 인구의 절반이 이동해버린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화 속의 시골 쥐는 맛있는 치즈는 아니지만 마음 편히 먹을 만큼의 충분한 콩이 있었다. 시골 쥐에게 콩이 넉넉지 않다면 불안해도 먹을 것이 있어 보이는 서울로 가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서울로 떠나지 못하였기에 결국 지역이 남는 것이 선택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지역 사람들에게는 이제 다른 우화가 필요할 것 같다.
서울행과 지역 잔류를 선택한 두 여성 이야기
1992년에 대학을 입학한 두 여성이 있었다. 한 사람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다른 한 사람은 그 지역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같은 평수에, 같은 자동차 배기량에, 같은 의욕과 열성을 가진 부모님에, 같은 내신 등급에, 수능점수도 비슷했다.
하지만 대학을 달리 선택하면서부터 가용할 자원과 선택, 희망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졸업할 즈음에는 그 차이가 확연해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전국 어디에서도 그 대학 졸업에 대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지역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그 지역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인정받기 힘들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서울에 계속 있을지, 지역으로 돌아올지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지역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그 지역이 아닌 곳으로 이동할 꿈을 꾸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지역대학을 졸업한 여성은 그저 "직장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소망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사실 지역에 있는 대학에도 서울에 있는 대학만큼 전공이나 학과는 다양하게 있다. 하지만 지역에는 이들 대졸자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업종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기업 규모와 숫자 등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섰을 때만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미미하였으나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차이가 상당히 벌어졌고, 구직과 직장 생활, 커리어 경로가 달랐던 두 사람은 10년 전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이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더 벌어질까?
"서울은 지방을 흑인 취급한다?"
5년 전 이맘 때였을까. 경북대 박찬석 총장이 8년간의 총장직을 마무리하는 이임식 직후 가졌던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서울은 지방을 흑인 취급한다"고 얘기 한 적이 있다. 이 발언 직후 일부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총장이라니", "흑인에 대해 그런 식으로 발언하다니 차별 당할 만하다", "경북대는 그 지역에서 '성골'인데 그런 말 자격이 있나"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반대로 또 한편에서는 "너희가 지방을 아느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등의 옹호 주장과 함께 자신이 지역 출신이어서 당해야 했던 차별의 경험담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의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박찬석 총장이 재임시절 지방대 졸업생 채용 할당제 도입을 주장하는 등 지역차별 해소를 강조해왔던 인물이라는 맥락을 이해한 옹호론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지난 4년 반 동안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역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는 등 '지역차별 해소'에 대한 강한 정책의지를 표명해 왔다. 하지만 공공기관 지역 이전 논의가 나온 후 필자 역시 지역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정책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지켜본 소감은 "기대보다 실망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지역으로 이전할 공공기관이 선정되고 지역 간 이전 기관 유치가 본격화되는 과정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지역 차별의 본질을 잘 보여줬다.
서울 사람들 가운데 얼마만큼이 공공기관 지역 이전에 공감하는지는 차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지역으로 안 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따라서 지방정부는 지역 이전을 기피하는 서울 사람들을 향해 지역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애써 감춰둔 채 각종 인센티브를 앞세워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서울 선택'에는 보다 나은 생활여건과 자녀교육을 위해서 "그러니까 서울에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이에 반해 서울과의 차별로 박탈감을 느끼는 지역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살아야 하니까 산다"는 역시 현실적인 여건의 문제가 존재한다.
결국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은 서울과 지역 사이의, "그러니까와 그럼에도"가 의미하는 삶의 수준의 격차를 되새김질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랜드' 투쟁마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역여성
시골 쥐가 서울 쥐 집을 방문해서 으리으리한 집과 굉장한 음식에 한번 놀라고 갑자기 등장한 집주인에 또 한 번 놀란 것처럼, 최근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이랜드' 투쟁을 보면서 지역 여성의 한 사람으로 두 번 가슴이 아팠다.
한 번은 계약해지와 외주화로 부당하게 차별당하는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현실이 마음 아팠고, 또 한 번은 지역에는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그런 기업마저 없는 지리멸렬한 현실이 마음 아팠다. 필자가 사는 부산은 지난해 부산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이 89곳에 불과하다. 제조업은 27곳이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가 이 정도니 다른 지역의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랜드 사건을 둘러싼 언론이나 정치인, 지식인 집단, 민주노총, 시민단체 등의 관심과 연대 역시 부러움의 대상이어서 또 한 번 마음이 아팠다. 지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더라도 언론이 그만큼 관심을 가져주고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었을까?
550일 가까이 투쟁하고 있는 KTX 여승무원들도 기존에 알려진 것과 조금 다른 렌즈로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투쟁하고 있지만 서울지부 승무원들에 비해 부산지부 승무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많다. 아프거나 힘들어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는 모두 부산에 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서울행 KTX나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위해, 시험을 보러, 병원에 가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향하는 지역 사람들의 불편과 추가적 비용지출은 너무도 일상화 되어서 새삼 불평하기조차 민망하다.
함께 건너야 할 차별의 강물이지만, 그 폭과 깊이·유속이 다르다면…
큰 틀에서 보면 그 동안 일하는 여성들이 제기해온 성차별 해소 요구나 앞으로 증폭이 예측되는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고용차별 해소 요구는 지역이라고 해서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금 더 섬세히 살펴보면 같은 이름의 성차별 혹은 고용차별의 험난한 강물을 앞에 두고 있지만 서로 다른 두 곳에 살고 있는 여성이 맞닥친 지류의 폭과 깊이, 유속이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차이에 대해 내 손에 박힌 가시처럼 좀 더 예민해져야 하지 않을까?
대졸여성의 취업을 지원하는 여성가족부의 정책이나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교육인적자원부와 노동부의 정책도 이 같은 지류의 폭과 깊이, 유속이 다른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여성운동도 마찬가지다. 지역 여성에 대한 의도적인 차별은 아닐지라도 정책 의제설정이나 이슈 파이팅의 기준이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면 결과적으로 지역 여성들은 부당한 차별을 받게 된다. 여성정책과 여성운동은 권력과 자원의 남성중심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서울중심성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와 맥락에서 좀 더 민감해지고 성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랜드 경영자는 독실한 종교인으로 간증 때 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복음의 터전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한다. 이랜드의 한 여성노동자는 '내가 그 하나님께 기도하면 어떤 답을 주실지 궁금하다'고 했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이랜드 노동자도 아니지만 지역 여성은 오늘도 "시골 쥐가 콩이라도 쪼개 먹을 수 있도록 지역 기업이 일자리를 더 창출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더 힘겹게 차별의 강물을 건너는 여성들에게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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