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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다시 '박정희의 아이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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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다시 '박정희의 아이들'이 나타났다

['87-'07, 일상의 혁명⑧] 요즘 대학생들, 뭐하고 사냐고요?

"대학문화? 술? 배낭여행? 글쎄…. 언뜻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게 있기나 한가."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용한 씨는 '대학 문화'에 대한 질문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가 떠올려본 주변 친구들은 공모전, 자격증, 인턴 등 취업할 때, 이력서에 한 줄 더 넣을 수 있는 활동에 늘 바쁜 모습이다.

"오늘날 대학생에게 그들만의 문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혹시 요즘 '대학생'한테만 인기 있는 그룹이 있나? 최근 대학 문화가 배출해냈거나, 혹은 대학생이 좋아하는 '아이콘'이 전혀 없다."

86학번인 성공회대 김정훈 교수(사회학)는 '대학 문화'를 묻는 기자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학부 시절 6월 항쟁을 겪고, 국내 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며, 지금도 대학 강단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그가 보기에 대학 문화는 '실종 상태'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상징하는 이한열 열사는 연세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 '대학생'의 생활은 당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다. 그들만의 문화는 어느새 사라지고 남은 것은 '취업 예비생'의 모습뿐이다.

왜 그렇게 된 걸까? 시대가 각박해졌다는 말은 너무나 빠르게 찾아온 변화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학생들은 '경쟁'하고, 학교는 '장사'하고

'신자유주의'를 빼놓고는 대학 사회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청년 문화를 연구해온 문화사회연구소 권경우 연구기획실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1990년대 이후 대학 사회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총장에게 기업의 CEO와 같은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대학은 학생을 교육하는 공간이 아닌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학생의 관심도 취업과 같은 먹고사는 문제로 기울기 시작했다. 1998년 IMF는 그런 흐름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96년부터 대대적으로 도입된 학부제는 대학 사회에서 정착된 '경쟁' 담론이 대학생의 일상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제도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인기 있고 취업 잘되는 과'에 가려는 경쟁으로 내몰렸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사회학)는 "대학 사회의 변화를 요즘 학생이 옛날 학생보다 영악해지거나 타락했다는 논리로는 설명해서는 안 된다"며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로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지금 대학은 소수의 지식인을 양성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다수의 기능인을 양성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 홍성태 교수에 따르면 대학 건물의 신·증축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진은 공사 중인 이화여대 캠퍼스 모습 ⓒ프레시안

"90년대 신세대 담론은 '해프닝'이었을 뿐"

이렇게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변하는 상황에서 대학 문화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김정훈 교수는 "지난 20년간 대학 문화는 계속 고유성을 잃고 대중문화에 종속되는 과정을 거쳤다"며 "앞으로도 고유한 대학 문화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초·중반 대학 사회에서 유행한 이른바 '신세대 담론'은 이렇게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에 포섭돼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종의 '해프닝'이었다"며 "당시 대학생은 '정치 혁명' 대신 '문화 혁명'을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영화, 음악이 대학생의 큰 관심거리가 됐지만 고유한 대학 문화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대학생의 아무런 저항 없이 진행돼 온 대학 사회의 공간 변화도 대학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홍성태 교수는 "1990년대 들어 대학 안에서 건물의 신·증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거대한 로봇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대학 곳곳에 들어서면서 대학생의 일상생활을 바꾸는 데도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2004년 고려대가 학내 편의시설로 신축한 '타이거플라자'에는 스타벅스, 던킨도너츠와 같은 외국계 외식업체가 줄줄이 입점해 논란이 됐다. 최근 서강대는 신축하는 50주년 기념관에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를 들여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홍 교수는 "이런 공간 변화는 학생의 삶에 그대로 투명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 1976년 당시 제작한 새마을운동기념우표. ⓒ한국우표포탈서비스

1970년과 2007년의 '상황 역전'…변화는 다시 찾아올까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대학은 '주류' 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생산하는 대표적 공간이었다. 2007년, 상황은 뒤바뀌었다.

남보다 좀 더 좋은 직장을 잡고 좀 더 빨리 돈을 벌고자 서두르는 한국 대학생들의 '열정'은 수십 년 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그것과 닮아 있다. 앞으로 한국의 대학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권경우 실장은 "대중문화와 경계가 허물어진 시점에서 꼭 대학 문화가 있어야 하는지부터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이 고등학교 졸업 후 '당연히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정착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대학 문화 자체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문화의 생산이 가능했던 대학에 이제는 생산은 없고 소비만 가능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 같은 경향은 심해질 수도 있지만 반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홍성태 교수는 "대학생은 엘리트라는 지위를 박탈당한지 오래"라며 "그럼에도 그중에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것도 사실이며 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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