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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의 느닷없는 '반미' 호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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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의 느닷없는 '반미' 호들갑

[기자의 눈]그들이 정말로 두려운 건…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랍 및 인질 살해 사건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입을 맞춘 듯 '반미 경계령'을 발령했다. 정동영, 손학규, 천정배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일부 시민단체들의 '미국 역할론'에 편승해 정치화된 반미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이 보인 경계심의 저변에는 2002년 대선의 악몽이 깔려있다. 선거 막판에 발생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대규모 촛불시위는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보면 현재 진행 중인 아프간 인질 사태를 느닷없이 정치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호들갑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국인 피랍 사건이 결말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장기화될 조짐인 데다 9월 한미 FTA 비준 문제, 연말 해외 파병부대 철군문제 등 미국 관련 이슈가 대선 일정과 맞물려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수 진영이 우려는 이번 아프간 사건을 계기로 반미 감정이 증폭돼 한미 FTA 비준 반대 여론으로, 연말 파병부대 철군 요구로 이어지며 '반미'가 대선 정국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될 가능성에 대한 경계로 볼만하다.

하지만 언뜻 보면 그럴싸한 시나리오이지만 반미가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부 및 범여권을 가르는 기준으로 부적절해진 현실을 무시한 측면이 다분하다.

해외파병의 공범들

우선 이번 아프간 피랍 사건은 폭발적인 반미감정으로 상승할 개연성이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초기부터 사태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었는데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을 무시했다"며 "정부의 무능한 외교력과 협상력이 먼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반미는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한 "근본적으로는 한국군의 파병 문제가 얽혀 있는데, 국회의 다수가 찬성한 파병인 만큼 이번 사태 해결과 관련해 '미국의 역할'이 문제제기 된다고 해도 반미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도 "근원적으로는 미국이 아프간에 개입한 것이 원인이지만, 국회 결의에 의해 우리 정부가 스스로 파병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한 "이번 사건에 한정해 봐도 전투적 선교가 원인으로 작용한 면이 있기 때문에 반미와 연관되기 어려운 이슈"라고 말했다.

요컨대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 한나라당의 '공조'가 해외파병 '원죄'를 낳은 만큼 '반미감정'보다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주체인 이들에 대한 책임론이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비해 이번 일은 국민들이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렇게 볼 때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반미 경계령'과 궤를 같이해 청와대가 "다른 나라(미국)의 역할을 과도하게 설정하는 것은 관련 당사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호흡을 맞춘 대목은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공범심리의 작동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이해찬 전 총리가 "아프간 사태는 반미와는 관계가 없다. 이런 일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인도적"이라며 가세함으로써 현 정부 책임론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범여권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구조에선 손학규, 정동영 등 반노 대선주자들이 뒤늦게 촉구한 '미국 역할론'이 반미의 촉매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범여권에는 쟁점을 흡수할 주체들이 마땅히 없다"고 말했다.

범여권이 반미로 득을 본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다른 미국 관련 이슈를 타고 넘어 대선정국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도 크지 않다고 봤다. 우선 해외 파병부대들의 철군 문제에는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파병기간 연장을 위한 정부의 꼼수를 단속하는 정도의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미 FTA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해영 교수는 "사회적 이슈와 경제적 이슈가 전문가적 수준에서는 연관성이 확인되지만, 두 가지 문제가 대중적 수위로 내려가 합치돼 정치적 이슈로까지 발전하려면 너무 많은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만 "정부가 한미 FTA 비준 처리를 회피하는 경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는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동만 교수도 "정부와 범여권이 비준을 연기시키는 쪽으로 흐를 것이다. 가급적 대선 정국에선 골치 아픈 이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도록 피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은 한국인 피랍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반미감정과 한미 FTA 반대론이 맞닿아 국민적 수위에서 '통합 반대론'이 형성된다고 해도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 한나라당 사이에 손익계산이 다르게 나올 리 없다는 뜻이다. 해외 파병이 그러했듯 한미 FTA 역시 '노무현 정부-한나라당-보수언론'이 구축한 '3각 동맹'의 산물인 탓이다.

특히 보수 진영이 현재 반미 감정에 편승했다고 비난하는 정동영 전 의장, 손학규 전 지사 등 범여권이 이 전선을 이탈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는 5년 전과 달리 '반미=반한나라당=친노무현'이라는 도식이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으로, 보수진영이 우려한 범여권의 '반미 편승론'이 생뚱맞은 건 그래서다. 강원택 교수는 "대선정국에 반미 감정이 형성된다고 해도 5년 전과 달리 범여권에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건…

이에 따라 보수 진영의 '반미 경계령'은 범여권의 정치적 일탈에 대한 경계라기보다는 통치적 수준에서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진입한 듯 보였던 국민들의 대미 정서가 정상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에 대한 걱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난 6월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미국 호감도' 조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전과 현재의 대미 인식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2002년 대선 직전인 12월14일 갤럽 조사에서 '미국을 얼마나 좋아하는가'란 질문에 '싫어한다'(53.7%)가 '좋아한다'(37.2%)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올해 6월 조사에선 '좋아한다'(50.6%)가 '싫어한다'(42.6%)보다 높았다. 20대(21.4%→37.8%), 30대(26.8%→38.6%), 40대(41.6%→50.7%), 50대 이상(56.3%→68.8%) 등 모든 연령층에서 대미 호감도가 높아졌다.

변화의 답은 물론 조사 시점에 있다. 5년 전 조사는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인한 반미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였다. 올해 6월 조사는 한미 FTA 협상 타결 시점과 맞물렸다. 2002년 대선에선 반미정서의 최대 수혜자였으나 집권기간 동안 해외 파병과 한미 FTA를 주도하며 우향우 한 노 대통령과 범여권이 사실상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

5년의 과정을 거치며 노무현 정부와 범여권, 보수진영은 정당만 달리했을 뿐,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우리의 장밋빛 미래인 양 선전함에 있어 사실상 한 묶음이었다는 얘기다. 이들은 이제 반미가 껄끄러운 '동지'이자 반미정서를 '관리'해야 할 역할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 보수 진영과 노무현 정부에게 반미를 관리하는 상당한 노하우가 쌓였다"며 "이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수 진영의 반미 경계론을 '반미 관리의 기제'로 규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따라 보수 진영이 정말 걱정하는 건 한국인 피랍 사건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인질 석방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표면적 논리와는 달리, 허울뿐인 한미공조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거 빈약한 낙관으로 별 탈 없이 '다스려지던' 여론의 침묵이 국민적 수위의 자각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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