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웨건 효과는 앞선 후보에게 몰표가 몰리는 현상, 언더 독 효과는 뒤진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현상 쯤으로 해석해두자.
필승론 없이 필패론부터 주장해서야
대부분의 선거에서 두 효과가 같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밴드웨건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승자독식"의 대통령 중심제에다 양당정치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정치풍토라서 밴드웨건 효과가 사표 방지 심리와 결합돼 나타나기 때문에 선거전의 핵심 변수로 간주되고 있다.
이 밴드웨건 효과를 노려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여·야 주자들 간에 필승론, 필패론 공방이 뜨겁다. "내가 이길 후보이니 나를 찍어 달라"는 것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야 "내가 제일 잘났다"는 필승론식 어법이나 "넌 절대 안돼"식의 필패론식 어법은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이지만,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운명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니만큼 필승론이나 필패론 모두 올바른 선택을 위한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각 후보는 가장 설득력 있는 필승론과 필패론을 다투어 제시할 일이다. 역으로 말하면 스스로 필승론을 제시 못 할 후보는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다.
기왕 주문하는 김에 하나 더 하자면, 필승론과 필패론 중 필승론에 주력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먼저 자신의 필승론을 세우고, 그 다음에 상대의 필패론을 주장하는 것이 순리에도 맞고 효과도 더 있기 때문이다.
순서를 거꾸로 해서 필패론부터 주장하면, "상대방은 필패이니 나밖에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 되는데 이건 "나만이 이길 수 있다"는 필승론이라기보다는 "내가 그 중 나으니 나라도 해보자"는 차악론이 되고 만다. 이래서야 어디 승부가 되겠는가.
시대정신 담긴 '필승론'은 고품격 정치담론…대선판엔 천박한 '필패론'만이
필승론의 요체는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왜 내가 되어야 하는가.
둘째, 어떻게 내가 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문제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것이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하나는 시대 정신과 대의 명분을 후보와 일치시키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승리 가능성을 정치공학적으로 설명해내는 일이다.
다시 말해 필승론은 상대의 흠집만 잡아 나열하기만 하면 되는 필패론과는 그 문제의식의 수준이나 논리 구성의 프레임에서 차원을 나타내는 고품격 정치담론이다. 필승론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제대로 된 필승론은 없고 천박하고 거친 필패론만 난무하는 2007년 대선 현장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현장이다. "국민의 마음을 먼저 얻은 후에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동서고금의 철칙조차 깨닫지 못한 섣부른 정치꾼들의 조잡한 경연장이다.
서로 다른 필승론이 부딪히는 건곤일척의 승부도 아니고, 고작 "너는 절대 안 돼" 수준의 필패론으로 벌이는 네거티브 공방이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하다. 한나라당 경선전이 육탄전 일보직전까지 갈만큼 과열 상태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이유다.
아직 '필승론' 제출 못 한 박근혜, '필패론'부터 내놓은 이해찬
그런 중에도 이명박 캠프의 박희태 선대위원장이 제시한 '이명박 필승론'은 박근혜 측의 '이명박 필패론'에 대응하는 용도로 작성된 것이긴 하지만 필승론이 갖춰야 할 형식적 요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될 만하다.
이에 반해 박근혜 후보 측이 이에 상응할만한 '박근혜 필승론'을 아직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전략적 실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시야를 범여권으로 넓혀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범여권 후보들 중 입심으로는 단연 이해찬 후보를 꼽을 수 있을 듯 한데, 출마 선언과 동시에 '뜨기 시작한' 그의 장기 또한 '필패론'인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박근혜 후보는 한방이면 간다."
"이명박 후보가 TV토론에서 나한테 걸리면 박살난다. 한 번만 맞아도 10분 만에 간다."
물론 이해찬 후보는 자신과 이명박 후보 간 양자 대결을 상정한 위에 "이명박 후보를 10분 만에 보내면"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필승론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2002년 대선, '이인제 대세론' 꺾었던 '노무현 필승론''
각설하고, 최근의 정치사에서 필승론의 전형을 보여준 사람은 천정배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천정배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지지율 2%대의 노무현을 현역 의원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공개 지지하면서 '단 한 장의 필승카드'라고 표현했다.
이 선택에 대해 천정배는 "나로서는 노무현이 단 한 장의 필승카드라는 사실이 워낙 명약관화한 사실이어서 그를 지지하는 데 아무런 망설임도 어려움도 없었다"고 하였다.
2002년 당시 천정배가 세웠던 '노무현 필승론'이야말로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린 힘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무현의 2002년 대선 승리에서 천정배의 역할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천정배까지 포함해 20여명의 주자들이 할거하고 있건만 범여권의 어느 누구도 국민적으로 소구력 있는 필승론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낮은 지지율이나, 불리한 선거지형이 이유가 될 수 없음은 2002년 노무현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는 바이다. 범여권의 후보들과 지도부가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승리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지와 소명의식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2002년의 승리를 되짚어 볼수록 2007년의 무기력이 뼈아픈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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