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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시죠?"…오늘 이말 몇 번 하셨어요?

['87-'07, 일상의 혁명⑦] 초광속 지향시대

내가 사는 동네에 작고 낡은 '구멍가게' 하나가 있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봉다리 슈퍼'.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이곳은 내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곳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자리 잡고 있다. '봉다리 슈퍼'는 12시가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지만, 편의점은 24시간 항상 불을 밝히고 있다.

'봉다리 슈퍼'에 들어가면 시간은 정지되는 느낌이다. 물건도 많지 않아 선반 곳곳은 텅 비어 있으며, 냉장실에도 생수 몇 병과 우유, 음료수 등이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슈퍼마켓은 누군가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건이 항상 넘쳐나서 가게 바깥에도 가득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봉다리 슈퍼'는 선반 곳곳이 비어 있다. 몇 년 동안 팔리지 않아 전혀 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농구공과 축구공도 선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 사용하다가 갖다 놓은 것만 같다.

'봉다리 슈퍼'는 바로 옆에 위치한 편의점과 주변에 있는 비교적 큰 수퍼마켓과 경쟁을 하지 않는다. 만약 경쟁을 한다면 그 종목은 '속도'와 '시간', '물품' 등이 될 터인데, 애초에 그러한 경쟁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라진 14만개 '봉다리 슈퍼', 나타난 1만개의 편의점

'봉다리 슈퍼'와 같은 구멍가게는 1996년부터 2004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14만개가 사라졌다. 2007년 현재 24시간 편의점은 1만개를 넘어섰다. 이제 편의점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필수 공간일 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고 있는 편의점은 때로는 밤거리를 무서워하는 이들에게는 안도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편의점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물건들을 아무 때나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사람들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달려 나간다. 편의점은 이처럼 참을 수 없는 다양한 욕구들을 즉시 채워주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 1996년부터 2004년 사이 소위 '구멍가게'들은 14만개가 사라졌다. 대신 한국에는 1만개의 편의점이 자리잡았다. ⓒ프레시안

'봉다리 슈퍼'가 존재하는 풍경은 2007년 한국사회의 도시를 담은 한 단면이다. 이 풍경은 속도와 편리성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야금야금 삼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느 덧 느림과 낡음은 사라져야 할, 버려야 할 가치가 되어버렸다. 가게는 어둡고 물건은 부족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굳이 사지 않아도 살 것이 많은 곳으로 향한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길들인 삶의 방식이다. 입지 않아도 쌓여 있는 옷장의 옷들, 사용하지 않아도 집안을 가득채운 가구와 집기들, 필요하지 않아도 가득채운 냉장고의 음식들 ….

이처럼 불과 20여년 사이에 우리의 삶은 빠르게 바뀌었다. 변화의 기준은 빠른 속도와 편리성이다. 자본과 테크놀러지는 그 변화를 지지하고 뒷받침했다. 속도와 관련된 대부분의 기계들은 모두 자본을 증식시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휴대폰과 인터넷, 컴퓨터 등은 가장 대표적인 예에 속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호출기(pager, 일명 '삐삐')와 휴대폰의 등장은 삶의 속도를 바꿔 놓았다. 호출기의 등장은 장소와 생활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꾼다. 과거에는 타인에게 연락을 취하는 방식이 전화였다. 전화는 한 장소에 고정된 것이었고, 그 장소에 있을 경우에는 연락이 닿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메모를 남겨뒀다. 하지만 호출기의 등장으로 인해 타인을 추적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개인의 생활과 움직임은 타인의 추적과 감시 시스템에 검열 당하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조금씩 기다림에 지쳐간다. 기다림의 시간은 짧아졌고 인내심은 줄어들었다. 24시간 모든 장소에서 연결이 가능한 휴대폰을 사용하는 오늘날, 이제 더 이상 기다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은 직접 연결되어야 하며, 모든 관계는 간접적인 전달이 아니라 직접 가능해졌다. 휴대폰은 '정착민'을 '유목민'으로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휴대폰 가입자수는 3천7백만 명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70% 가까이 된다. 휴대폰은 전화 기능보다도 TV, 인터넷, MP3 등 다양한 기능을 합친 복합기일뿐더러 장난감 기능까지도 하게 되었다.

30분 내 배달, 퀵메이크업, 빠른 등기…'속도마케팅'이 등장했다

통신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PC 통신을 처음 사용하던 시절과 광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단순히 속도가 빨라진 것뿐만 아니라 어느 장소에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이 구축되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수치 비교는 별다른 의미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 변화로 인해 사람들이, 그리고 문화 환경이 어떤 변동을 겪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속도의 변화는 점점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정보' 자체가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주었다.

또 인터넷 환경은 무엇보다도 언론문화를 바꿨다. 종이신문과 TV 뉴스가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모든 정보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전달되고 축적되고 재생산된다. 언론인터넷과 포털사이트는 실시간 뉴스를 제공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사를 독점하고 권력을 생산한다.
▲ 최근에 등장한 '퀵메이크업' 제품은 '속도마케팅'을 겨냥한 대표적인 사례다. ⓒ프레시안

이러한 속도 경쟁을 나타내는 것으로 최근에는 '속도마케팅'이 등장했다. 사실 속도 경쟁에 불이 붙은 지는 오래됐다. '도미노 피자'는 30분 내 배달 원칙을 지키고, 어느 대학가 편의점에서는 물건을 15분 내에 배달해준다고 한다. 아침 출근시간이 바쁜 여성 직장인들을 위한 '퀵메이크업' 제품도 선보였다. 파운데이션에 자외선차단제를 더하는 등 2가지 이상의 기능을 하나로 합쳐서, 기초부터 색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다. 택배는 물건을 직접 배달해 주는데 전국이 거의 1일 생활권이다. 배달의 가장 절정은 '퀵서비스'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은 작은 서류 봉투에서부터 무거운 짐까지 실어나르고 있다. 과거 사람들의 모든 연락과 배달을 도맡아 했던 우편서비스도 달라졌다. 1990년대 '빠른 우편'이라는 게 생겼다가 몇 년 전 사라졌다. 그 후 등장한 것이 '빠른 등기'다. 전국 어디라도 당일 배송이다.

고속철도, 출발과 도착만 남아버렸네
▲ KTX의 가장 큰 변화는 300㎞라는 엄청난 속도 때문에 차창 밖의 풍경을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이런 시간과 속도의 관계를 처음으로 보여준 것은 철도의 등장이었다. 근대사회에서 철도의 발명은 공간의 축소 및 소멸을 초래했다. 모든 것을 시간으로 바꾸었으며, 오직 출발지와 목적지만 남게 되었다. 지난 20년 사이의 변화에서 중요한 사실로 'KTX'를 들 수 있다. 2004년 KTX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속도 문화를 대변하는 절정이다. KTX의 가장 큰 변화는 300㎞라는 엄청난 속도 때문에 차창 밖의 풍경을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KTX는 출발과 도착이라는 직선적이고 선형적인 사고를 담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 혹은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것이 목표이다. 목표 이외에는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의미가 없다. 이제 속도는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의 시선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유까지도 속도의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속도가 편리성과 빠름의 가치만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예는 고속도로다. 현재 남한 땅은 고속도로의 '천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을 경험하고 나서 추진한 것이다. 건설 과정에서 77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이 도로는 1970년 7월 7일 개통되됐다.

비좁은 한반도 남쪽에는 지금도 고속도로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 도로를 이용해서 대도시인들은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열심히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길은 자꾸 생겨나고 사람들은 자꾸 떠나니, 길은 계속 막힐 수밖에 없다. 적어도 한국 고속도로는 현대인의 여행을 위한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지역주민을 위한다거나 물류를 위해서라는 말은 그에 비하면 아주 빈약한 변명에 불과하다. 고속도로는 직선을 지향하며 지름길을 우선한다. 그러다보니 산을 깎고 터널을 만든다. 지극히 반생태적인 일이다.

스스로 바빠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 사라져버린 '몰입의 즐거움'

한국사회는 '속도'라는 차원에서만 본다면 자본주의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나라다. 어떤 이들은 이를 가리켜 '역동성'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다이나믹 코리아'를 찬양하고, 그에 따라 IT 등의 첨단산업이 발달하는 것이라고 옹호한다.

하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최근 '걷기'나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빠름과 편리성에 익숙한 문화에 대한 거부 혹은 저항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후자의 입장이다.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대중문화와 기술발달에 대해 조금이라도 성찰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가치로 인정받는 빠름이나 편의성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행복한 결합'처럼 빠름과 느림의 조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최근 걷기와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건강에 관한 관심을 넘어 빠름과 편리성에 익숙한 문화에 대한 거부 혹은 저항의 몸짓인지도 모른다. ⓒ프레시안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요즘 바쁘시죠?"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런 인사를 받고 "아뇨, 한가합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질문에 긍정할 뿐이다. 만약 물음에 반하는 답을 내놓는 사람이 있다면, 무능력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당하기 일쑤다. 현대인은 실제로도 그렇지만 스스로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인들이 70년 평생 동안 기다리는 데만 6년을 허비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의 삶은 1초를 다툴 정도로 정신없어 하면서도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행복한 결합'처럼 빠름과 느림의 조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빠름의 가치가 지배하면서 사라진 것 중에 '몰입의 즐거움'이 있다. '몰입'은 객관적 기준이라는 시간의 빠름이 결코 빠른 게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는 몰입의 순간에 시간을 상대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생활이 인간을 점점 무기력한 동물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일이다.

작고 소소한 일상의 움직임이야말로 곧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몸짓들이 아닐까. 신체에서 비롯되는 작은 몸짓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현대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속도와 편리성만 추구하는 삶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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