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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배고파도 영화를 버릴 수 없다"던 그들이 갈 곳은?

[일과 희망·16]"'문화 교육 일자리'를 키우자"

장마가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최근 <한겨레>는 '개봉 첫 주 화려한 신고'라는 제목으로 우리 영화 '화려한 휴가'가 5주 만에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관객동원 1위에 올라섰다고 알렸다.

CJ엔터테인먼트의 자료를 인용한 기사는 '화려한 휴가'가 지난 7월 25일 개봉 이후 29일까지 5일 동안에 전국에서 관객 143만 여 명을 동원, 개봉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보이고 '다이 하드 4.0'(7월 17일 개봉, <씨네 21>의 7월 20~22일 집계 누적 관객 159만 명)을 2위로 물러서게 했다고 전했다. <씨네21>의 박스오피스 집계(7월 20~22일)에 따르면,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308만), '트랜스포머'(658만)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2일에는 '디워'가 국내가 국내관객 500만을 목표로 개봉되는 등 여름을 겨냥한 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질 예정이다. 이중에는 '기담', '멋진 그녀들', '이브의 유혹-좋은 아내',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리턴' 등 한국영화도 상당수 눈에 띈다.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팽창했지만…'영화 인력은 떠나고 있다'
▲ '괴물'이 1300만 명 관객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던 2006년 한국영화산업은 양적 팽창의 극단을 보여주었지만 2007년 영화산업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프레시안

'괴물'이 1300만 명 관객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던 2006년 한국영화산업은 양적 팽창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평소 연간 80여 편이 제작되던 한국영화가 110편으로 늘어(108편 개봉) 1847개 스크린을 통하여 총 359편이 상영됐다. 연인원 1억6000만 명이 극장을 찾아 극장매출액은 1조 원을 넘어섰다.

7월부터 축소된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약 2년 반 뒤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2년 48.3%에서 64.2%로 급상승하였다.

그러나 많은 영화인들이 예견하였던 것처럼 2007년 영화산업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상반기 한국영화는 50편이 개봉되어 전년 대비 2편 늘어났으나 관객(서울 기준)은 전년 대비 18% 줄고 점유율은 40% 미만(전년에는 49.7%)으로 폭락하였다. 흥행작 최고 10개 중 한국영화는 3개만 끼여 있다. 하반기 한국영화의 흥행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며칠 전 영화인력 관련자와 저녁을 포함하여 4시간 가까이 영화인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화 인력들이 떠나고 있어요." 들어서자마자 대뜸 하는 이야기였다. 예견되었던 일들이 하나 둘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지나치게 많은 영화가 제작된 결과는 올해 평소보다 적은 편이 제작될 것을 예고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작년 개봉작 108편 중 손익분기점(10억 이상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51억 원인 점을 감안 160만 명 이상 관객)을 넘긴 영화는 22편에 불과하였다는 현실은 영화제작투자를 줄이는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결국 영화인력에 대한 수요는 상당수 줄어들 것으로 예견되고 있었다.

지난 4월 18일에는 (사)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7월 1일부터 적용되는 임단협을 체결하였다. 영화제작스탭이 중심이 되어 2005년 영화산업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2006년 6월 27일부터 '한국영화 제작합리화'와 영화스탭의 처우개선을 목표로 한 산별교섭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이다.

이 협약으로 현장스태프는 각 직급별 최저임금 기준을 적용받게 되고 야간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해 초과근로수당을 받고 4대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는 등 근로조건이 상승할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사용자는 영화제작 과정을 합리화함으로써 제작비 절감이라는 시장 압력을 해쳐나가야 한다.

열악한 근로 조건에도 '영화판을 떠나기 싫다'던 사람들
▲ 개봉 첫 주에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관객동원 1위로 올라선 '화려한 휴가.' 조사에 따르면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영화인력들이 최근 영화판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프레시안

대부분 영화관객들은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화배우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지는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크레딧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가 없다. 영화에 이름 석 자만 나오는 사람들이 처한 근로조건은 딱하기 그지없다.

2005년 영화전문인력 455명에 대한 <영화산업인력 직무 및 근로실태조사>(한국노동연구원 등) 결과를 보면, 월 평균 임금은 전체적으로는 232만 원으로 그리 낮지는 않다.

하지만 스탭만 보면 임금은 178만 원에 불과하고 써드(Third, 영화 제작 인력 가운데 세 번째 서열)이하로 내려가면 121만 원 정도로 낮아진다. 70만 원 미만이 차지하는 비중도 써드 이하에서는 40%를 넘고 세컨드(Second, 영화 제작 인력 가운데 두 번째 서열) 급에서도 23%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80%가 전문대를 포함한 고등교육 수혜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 보수 수준은 낮은 편이다.

이에 더하여 문제는 1년 내내 영화제작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 한 편 제작기간이 3개월 남짓하다면 적어도 3~4편에 참가하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1~2편에 불과하고, 이러한 결과는 연평균보수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사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력의 2004년 연평균 보수는 1008만 원, 감독급을 제외한 현장인력은 742만 원, 이 중 써드 이하는 382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대부분 사회보험이나 부가급부로부터는 제외되어 있다. 영화촬영이 진행되는 단기간에만 프로젝트성으로 고용이 유지되는 인력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왜 이렇게 열악한 근로조건인데 '영화를 하겠다'는 것일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영화에 대한 열정 때문에' 영화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영화산업이 유망하여' 영화 분야에서 일하게 된 사람은 6%를 밑돈다.

이들 중 '영화 이외 다른 분야에서 더 많은 보수를 제시할 경우 다른 분야로' '무조건 옮긴다'고 응답한 사람은 4%에 불과하다. 세 명 중 한 명은 어떤 조건에서도 옮기지 않겠다고 하고, 네 명 중 한 명은 영화관련 분야라면, 또 다른 세 명 중 한 명은 자기가 가진 기술이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면 옮기겠다고 한다. 영화제작에 대한 충성도가 보통이 아니다.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는 다른 산업인력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특히, '하는 일의 내용', '대인관계-상하간과 동료간', '일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정도'에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 반면 임금수준, 복리후생, 일자리 안정성 면에서는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요약하면, 영화제작스탭들은 보통 근로자에 비해 근로조건은 열악하지만 일이 좋아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저자가 그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15일 가까이 직접 관찰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고 있단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근로조건을 보호할 장치가 만들어지는데도 영화 제작에 평생을 바치려던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복합성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영화 현장을 떠나는 이들이 지난 20년 간 열악한 시장상황에서 말없이 한국영화를 지키고 마침내 최근 몇 년 동안 외국영화의 흥행을 앞지르는 대작을 만들어낸 저력을 이어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좋은 관객이 좋은 영화를 가능케 한다

대부분 산업현장에서 인력이 중요하지만, 특히 영화산업만큼 인력이 중요한 산업도 드물다. 개개인의 능력은 어디서나 중요하지만, 영화산업에서는 특히 이들의 협업이 더욱 중요시된다. 이러한 개개인의 작업능력과 협업능력은 영화제작에 실제 참여하면서 습득된다. 그런데 이들이 영화판에서 터전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이제 한국영화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좋은 한국영화를 많이 만들어 우리 모든 국민들이 한국영화를 즐겨볼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지난 몇 년 간 경험은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영화 소비자다.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 스스로 극장을 찾은 이들이 늘어야,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이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좋은 영화가 좋은 관객을 부르고, 이런 관객들이 다시 좋은 영화를 만들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좋은 영화인력의 양성은 독립영화 또는 예술영화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고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예술영화가 많은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예술영화를 만날 기회를 찾지 못한다. 좋은 상업영화를 만들 토대가 취약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스크린쿼터 축소가 외국영화에 더 많은 스크린을 내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상영관 스크린이 '돈 되는' 상업영화에만 자리를 내주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은 시장경쟁 구조를 유지해서는 예술영화가 설 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영화 전공자가 꼭 제작 현장으로만 향할 필요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영화를 접하면서, 영화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를 보다 적극적인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모든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포함하여 주민들에게 좋은 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한다면 어떨까. 스크린쿼터로 축소된 한국 영화가 상영될 스크린이 확보될 것이다.

또 학교에 영화 선정 및 영화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을 배치한다면, 영화전문인력의 일자리가 늘어남과 동시에 건전한 영화소비자를 어릴 때부터 키우게 된다. 물론 학교 외에도 다양한 공공기관을 이런 '문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워싱턴 D.C.에는 있지만, 청계천에는 없는 것?,
"미술은 '예능'이 아니다" ,
"파리에 온 친구가 화를 낸 이유는?")

많은 대학들이 연극영화 관련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지만, 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그런데 영화 인력이 굳이 제작 현장에만 머물러야 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일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 못지 않게 보람있는 일이다. 오히려 이처럼 좋은 영화 관객을 키우는 작업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각 대학에서 배출하는 연극영화 관련 전공자들이 '문화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단지 '일자리 창출' 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 산업의 토대를 쌓는 일인 동시에,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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