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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그 이상의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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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용병, 그 이상의 용병

[별을 쏘다·20] 다니엘 리오스가 '스타'인 이유

"꼴찌가 리오스 탓인가, 리오스 퇴출 반대 한다!"

지난 6월 16일 인천 문학구장. 한국 프로야구사의 진기록이 나왔다. 3타자 연속 3구 삼진. 이런 기록은 메이저 리그에서야 몇 년에 한 번 볼 수 있으니 뭐 그리 대단한가라고 할 만하지만, 투수가 다름 아닌 다니엘 리오스(35.두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날로부터 2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2005년 7월 7일, 기아-삼성전이 있었던 대구구장. 6회까지 2점을 내주며 버티고 있던 리오스는 6회말 1사, 만루 홈런을 맞자 강판 당한다. 강판 후 투수가 가야 할 곳은 덕아웃. 그런데 리오스는 뜬금없이 포수 김상훈에게 다가가 포옹을 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했던 그 날은 리오스가 2002년 입단한 기아에서의 마지막 등판이었고 3일 후, 같은 구단의 김주호와 함께 두산의 전병두와 2:1 트레이드가 되고 말았다. 이적 전날 광주구장에서 위와 같은 펼침막을 내걸며 리오스 이적 반대 시위를 벌였던 기아팬들은 한 달이 조금 지나 두산 라커룸에서 그에게 작별선물을 건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리오스의 저주'인가, 기아는 그 전해까지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무색케 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반대로 그 전부터 유달리 기아로부터 외국인 선수 수혈에 성공했던 두산은 리오스에게서 이적 후 9승 2패(이적 전 6승 10패)를 선사받으며 2001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 준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리오스는 선발투수 최고의 미덕인 "이닝 이터"(inning eater: 선발로 나와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라는 찬사를 들으며 3년 연속 한 시즌 20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지난 6월 16일의 3타자 연속 3구 삼진은 "진기록"이 아니라 왜 리오스가 이닝 이터로 불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가 "용병"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6년을 보내왔는지 보여주는 스냅샷일 뿐이었다.

프로야구, 홍보물에서 기업으로의 변신. 그리고 리오스
▲ 다니엘 리오스 선수 ⓒ뉴시스

이런 얘기를 하면 요즘 하위권을 전전하는 기아의 팬들에겐 울화가 치밀겠지만, 트레이드를 가장한 기아의 리오스 '퇴출'은 프로선수들의 지위를 생각해 보면 이상하거나 분노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3S 정책의 일환이건, 정권의 헤게모니 투쟁이건 독특하게도 프로야구는 다른 종목의 프로구단들과 달리 출범 때부터 주식회사의 사장제로 운영돼 왔다.(다른 프로 스포츠들은 아직도 '단장'체제이다.) 모기업의 홍보물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지만 올 초 현대 유니콘스 매각 소동이 보여주듯이, 홍보물도 수익이 맞아야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특히 리오스가 두산으로 이적한 2005년은 상당수의 구단에서 사장을 모기업의 홍보맨들로 채우며 홍보와 더불어 독자적인 수익창출 방안을 모색하던 때이기도 하다. 정치적 의도가 내포되었던 80년대와 달리, 수익창출을 위한 각 구단들의 노력은 관중 동원을 증가시키기 위한 성적, 곧 '좋은 경기'라는 상품의 생산으로 이어진다. 이런 까닭에 기업으로서의 프로구단에서 선수들은 단지 억대 연봉의 '상품'이기 이전에, 성적과 좋은 경기라는 더 큰 상품을 만들기 위한 장기간의 '생산수단', 곧 고정자본(fixed capital)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두산으로의 이적 전, 리오스의 성적은 퇴출될 정도는 아니었다. 김성한 감독과의 '코드차이'가 이유라는 말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코드차이로 비싼 외국인 선수를 갈아치울 수 있는 조건에 있지 않을까. 기아가 리오스의 이적 구단이 결정되기도 전에 미국 마이너 리그 출신인 세스 그레이싱어의 영입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미 그의 '사용연한'이 끝났다는 선고에 다름 아니었다.(당시 그는 33세였다)

리오스와 같은 외국인 선수들의 지위는 이런 점에서 고정자본인 국내선수들과 다르다. 고교 때 지명을 받아 9시즌이라는 오랜 사용연한을 갖는 국내 선수들과 달리 1년짜리 단기 계약을 맺는 외국인 선수들은 팀의 전력(달리 말하면 생산력)이 위기에 몰리면 언제라도 교체 가능한 자원이다.(이런 까닭에 웨이버 공시기한인 7월 말의 한여름은 외국인 선수에게 칼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초단기 계약은 선수의 입장에서 자신을 원하는 구단을 찾아 선수시장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단, 조건이 붙는다. 이러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선수에겐 오직 몸 하나, 즉 '실력(노동력)'만이 있어야 한다. 그 자신들이 기업이 되어 버린 베컴이나 조단처럼 실력 이외의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면 굳이 그런 시장에 나갈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줄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의 '자유'가 보여주는 자본주의적 삶

이런 역설적인 자유는 곧 자본주의라는 '삶의 방식'에 다름 아니다. 연고 지명에 따라 9시즌을 '예속'되어 있어야 하는 국내 선수들의 처지가 지극히 봉건적 고용방식이라면, 외국인 선수들과 FA(물론 명목상의 자유계약이지만)들은 이윤을 지상의 목표로 삼는 기업에 걸맞는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이들에게 무슨 '노동'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이 임금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해지는 명칭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인간의 활동에 부여되는 사회적 관계라면, 리오스 역시 이 관계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출퇴근과 반복되는 업무에 질려있는 우리의 노동과 리오스의 그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의 업무에서 그 생산물은 내 것이 되지 않지만, 리오스와 같은 스포츠 선수들에겐 그렇지 않다. 비록 그들이 땀내 나는 플레이로 구단의 수익을 창출해 줄지라도, 최소한 그 일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며 그 결과 역시 구단 수익 이상의 자부심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리오스처럼 10여년을 넘도록 오직 '운동'만을 해온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낳은 수많은 기록과 성적은 연봉으로 환산될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자신이 보내온 세월과 노력에 대한 이런 자부심은 오늘날 '자유로운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연봉액에 따라 수시로 팀을 바꾸는 선수들에게 '변절'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하고, 과도한 포지션 중복을 감수하면서까지 억대의 선수와 계약하는 구단을 곱지 않은 눈으로 째려보기도 하지 않았던가. 2005년 리오스 이적 전후의 일들은 그가 우리와 같은 노동력 상품이면서도 그 이상임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용병과 '우리'의 용병
▲ ⓒ뉴시스

기아 시절 리오스는 '전라도 용병 이오수'로 불렸고, 두산 이적 후 한국 프로야구 6년차가 되니 '한국형 용병'으로 불린다. 그만큼 한국 프로야구에 적응을 잘 했다는 말도 되겠지만, 앞의 수식어를 빼고 '용병'만 놓고 보자면 그만큼 리오스에게 어울리는 말도 없을 듯 하다.

쿠바 출신인 부모로부터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그는 2살 때 미국 마이애미로 다시 이민을 가 1993년 본격적으로 야구를 직업으로 택한다. 2001년 기아로 올 때 메이저 리그 출신이라는 소개와는 조금 다르게 그가 뛴 미국의 리그는 대부분 트리플 A거나 그 이하였다.(그가 뛴 메이저 리그는 1997년 뉴욕 양키스에서 2경기, 이듬해 캔자스시티에서 9경기였다.) 2000년 오마하(캔자스시티 산하 트리플A)에서 방출된 후 리오스는 멕시칸 리그 토레온에서 뛰다 기아로 오게 된다. 행여 그가 우즈나 그레이싱어처럼 일본 리그라도 진출하게 된다면, 이 세계화 시대에 '자유로운' 노동력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리오스와 같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룬 용병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1998년 박찬호, 이종범 등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국내 프로야구의 흥행과 전력보강을 위해 외국인 선수등록제를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233명의 선수들이 한국땅을 밟았다. 무리한 비유겠지만 이 선수들이 프로야구 제국의 중심부(미국)를 거쳐 온 용병들이라면, 그 반대방향으로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진출한 박찬호, 김병현 같은 또 다른 '용병'들이 존재한다.

이 두 부류의 용병들은 우리에게 정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메이저 리그가 '제국'인 것은 단지 그 규모 때문이 아니다. 박찬호의 메이저 리그 진출은 역으로 메이저 리그의 한국 상륙을 의미하지만, 메이저 리그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진출했다고 해서 한국 프로야구가 미국에 상륙하지는 않는다.(세계화는 이런식으로 늘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던가.) 이런 불균등은 문화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용병의 존재는 그야 말로 미운 오리 꼴이다. 구단의 입장에서 용병은 단기적인 구단 전력보강을 위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편리한 부속품이라면, 국내 FA와 2군 선수들에겐 1군 리그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걸림돌로 비춰진다.

더군다나 구단 별 지역연고 지명권이 축소된 올해 같은 경우, 각 구단 2명이라는 외국인 선수 보유한도는 그 숫자 이상의 무게로 다가온다. 지금도 간간히 제기되는 외국인 선수 보유상한제(2인 보유, 2인 출전)의 확대 논란은 선수협 vs. 구단 또는 '토종' vs '용병'이라는 대립의 구도에서 수년간 반복되어 왔다. 게다가 '고액연봉자'라는 수식어는 늘 용병들에게 안하무인, 먹튀, 돈 밖에 모르는 선수들이라는 딱지로 이어졌다.(올 4월 KBL 4강 플레이오프에서 심판을 떠민 LG의 파스코에게 쏟아진 비난을 생각해 보라) 만일 이런 식의 '대접'을 중심부에 가 있는 용병인 김병현이나 서재응이 받고 있다면 어떨까? 단지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내선수들에겐 9시즌이라는 FA 조건이 '봉건적'이면 선수단 내부의 '위계' 역시 용병들에게 그만큼 '봉건적'이다.

국내의 '용병'과 중심부에 진출한 우리의 '용병'을 보는 시선은 이렇게 달라진다. '우리'의 용병이 중심부에서 호평을 받기를 기대하는 만큼, '그들'의 용병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냉정하다. 사용연한이 다하여 방출되는 우리의 용병은 거액의 연봉과 안타까움이 기다리만, 돈 밖에 모르고 오만한 '그들'의 용병은 방출되어 멕시코나 다른 변방으로 밀려간다.(물론 메이저리그나 일본 리그로 간 코리안 드림의 '소수'는 예외다.)

'한국형 용병' 그 이상의 리오스

리오스를 '한국형 용병'이라 부르는 이면엔, 한국문화와 리그에 정말 잘 적응했다는 칭찬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런 칭찬이 리오스 개인의 인간성에만 맞추어진다면, 그가 보낸 5년의 용병생활에 얽힌 온갖 모순들에 침묵하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2001년부터 그가 지나온 5년은 한국 프로야구가 단순한 홍보수단에서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으로 변해온(지금도 변하고 있는) 시간이며, 우리 안의 타자로서 '그들'의 용병을 만들어온 기간이기도 하다.

리오스에게 한국인 용병이란 별명은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 그가 이 과도기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살아남았음을 뜻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내게 스타는 화려한 경력이나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모순과 제약을 보여주는 지표(index)가 스타다.

리오스는 이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프로야구가 어떤 시절을 관통해오고 있는지 보여주는 '특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그 '특별함'으로 '평범한' 프로 선수들(국내건 용병이건)을 돌아보게 해 준다면, 그야말로 스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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