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의 커피타임 이야기"
<과학동아> 1991년 6월호에 실린 광고 제목입니다. "초를 다투는 반도체 기술전쟁…진 박사 팀은 여느 때처럼 새벽 3시에 커피 타임을 가졌습니다…."라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당시 '휴먼테크'라는 모토를 내걸었던 삼성전자의 기업 이미지 광고입니다.
같은 잡지를 뒤지다보면, 비슷한 광고를 여럿 찾을 수 있습니다. 1993년 10월호 표지를 넘기면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라는 광고 제목이 눈에 띕니다.
"'도대체 집에는 왜 들어 왔다 가는 거예요? 고작 몇 시간 계시다 나갈 거 그냥 회사에 눌러 사시지 그래요!' 아내의 투정이 귓가에 맴돌지만 오늘도 벌써 11시 30분. 칸막이 건너편의 홍보실 김 차장도 여태 일이 남았는지…."라는 내용이 뒤따릅니다. 뉴텍 컴퓨터라는 회사의 이미지 광고입니다.
"새벽 3시의 커피 타임"이 자랑이었던 시절
16년 전, 14년 전의 광고입니다. 이 광고에서 집에서 고작 몇 시간 머물다 가는 아버지를 둔 가족들의 소외감이나, 잠자리에 들기에도 늦은 시각인 새벽 3시에 졸음을 쫒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연구원들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몸이 부서지도록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은 미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원의 희생은 회사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가끔은 국가의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중동 건설 붐 당시 한국인 건설 노동자들의 부지런한 모습은 도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이들도 견디기 힘든 험한 모래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억척스러움은 뒤집어 말하면 회사를 위한 지독한 희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뒤집어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서와 같은 문구를 이미지 광고로 쓸 수 있었겠지요. 어쩌면 가문의 위신을 위해 희생된 여인들을 열녀문을 세워 기렸던 조선 후기의 풍경과 닮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보면 모두 조금씩 어색한 풍경들입니다. 앞서의 광고가 실린 무렵이면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4~6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절인데도, 노동 인권에 대한 각성은 몇몇 공장에만 머물렀던 모양입니다. 대부분의 사무직, 기술직은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새벽에야 퇴근하던 아버지, 직장에서 쫒겨나니 가족은 냉랭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단정한 복장의 은행원이건,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자건 회사를 위해 무턱대고 희생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새벽 3시의 커피 타임"이 자랑거리로 통하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번져간 노동 인권에 대한 각성이 이런 변화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의 경험입니다. 새벽 3시에 커피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집은 잠시 들러 옷이나 갈아입는 곳으로 여겼던 많은 이들이 갑자기 회사에서 쫒겨났습니다.
요령껏 여기저기 인맥을 만들어두고, 틈틈이 영어 공부라도 했던 이들은 사정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회사일밖에 몰랐던 사람들은 갈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매일같이 새벽에서야 택시를 타고 들어갔던 집에서 텅 빈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고역이었습니다. 가족들도 서먹하게 대했습니다. "새벽 3시의 커피 타임"이나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는 이제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정을 포기한 메마른 사람이나, 회사 일밖에 모르는 바보 취급당하기 일쑤입니다.
여전히 새벽에도 불이 환한 빌딩들…사람 잡는 야근
이런 지독한 경험을 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우리의 일터 풍경은 얼마나 변했을까요. "새벽 3시의 커피 타임"을 광고하는 회사는 없는데, 여전히 서울 광화문 사거리의 빌딩은 새벽에도 불이 환합니다.
회사원 김연수 씨는 지난 한달 동안 집에 들어간 날을 다 합쳐도 일주일이 안 됩니다. 8월 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개발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김 씨는 직원 30여 명 규모의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서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밤을 새다, 회사 건물 안에 있는 수면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거나 근처 목욕탕에서 잠시 씻고 오는 게 고작입니다.
이달 말까지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도 집에서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기안서를 작성해야 하고, 진행이 더딘 다른 프로젝트 팀에 투입돼 일정을 앞당기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잡지 기자 최 모 씨는 얼마 전 아이를 유산했습니다. 잦은 야근과 마감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결혼 5년 동안 아이가 없어서 남편과 함께 애타게 기다렸던 임신이었습니다. 남편은 회사를 관두라며 화를 내지만, 빠듯한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잉크가 다 되면, 언제고 갈아 끼울 수 있는 볼펜심처럼….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출판 편집자 윤 모 씨는 석 달째 사표를 품고 다닙니다. 출판업계가 박봉인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워낙 책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출판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한때 문학청년이었다는 사장의 쉴 새 없는 자기 자랑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사초기부터 시작된 사장의 은근한 성희롱이 점점 심해집니다. 당장에라도 사표를 내고 싶지만, 적어도 3년은 경력을 쌓아야 이직이 쉽다는 선배들의 충고를 떠올리며 사표를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소규모 무역회사 총무과 직원 정 모 씨. 15년 전, 대학을 졸업한 직후 한 대기업에 들어가 경리 부서에 배치됐습니다. 신입사원의 머리 빗는 모양까지 새로 가르친다는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기계처럼 일했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정신이 마모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좀 달라질까 싶던 차에 '벤처'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8년 전입니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차린 회사는 순식간에 주저앉았습니다. 함께 창업한 친구들과는 아직까지 연락을 끊고 지냅니다. 그리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습니다.
지금의 회사에서 그는 사장의 동창 모임 주소록 정리부터 화장실 변기 뚫는 일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합니다. 하지만 직원 누구에게서도 "고맙다"거나 "수고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 했습니다. 사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월급만 많이 챙기는 사람은 회사에 남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잉크가 다 되면, 언제고 갈아 끼울 수 있는 볼펜심이 된 느낌입니다.
늘어나는 비정규직, 늘어나는 직업병
회사를 위한 희생이 자랑거리이기만 했던 시절은 분명히 지나갔는데, 우리의 일터 풍경은 "새벽 3시의 커피 타임"을 광고하던 시절보다 나아진 게 없어 보입니다. 아니 더 나빠졌습니다.
앞서 소개한 네 사람은 그나마 모두 정규직입니다. 노동시장의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에게는 이런 네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정부는 월급 80만 원도 좋으니, 그저 일만 하게 해달라는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경찰력을 투입했습니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매장 계산대를 지키느라 방광염에 걸린 그들은 결국 쫒겨났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일터는 이등병의 군대 생활처럼 그저 하루하루 버텨내야 할 곳에 다름 아닙니다.
1987년 여름, 전국 곳곳의 공장에서 "노동자도 사람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의 일터에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오직 언제고 갈아치울 수 있는 기계만 가득해 보입니다.
자긍심이 사라진 일터에는 "우리는 나이 마흔까지 버티기도 힘든 소모품일 뿐"이라는 자조만 넘칩니다. 이렇게 파김치처럼 시들어버린 일터에 병이 찾아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실제로 각종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발생 빈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소모품 취급당하느니, 먼저 일터를 떠나겠다…공무원 시험, 로스쿨 진학 과연 대안일까?
우리의 일터에는 이제 희망이 없는 걸까요. 눈치 빠른 젊은이들은 그래서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합니다. 적어도 갑자기 잘려 나갈 리는 없고, 출퇴근 시간은 보장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청년 구직자 절반이 이런 공시족이라고 합니다. 이미 일터에 몸담고 있는 이들 역시 다른 길을 찾습니다. 저녁 시간, 공무원 시험과 교원 임용고시 학원이 밀집한 서울 노량진에 가면 직장인 수험생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께나 했던 이들은 뒤늦게 고시에 뛰어들거나 의대나 한의대 편입을 준비합니다. 로스쿨법 통과 소식을 가장 반기는 이들도 주로 이런 부류입니다.
모두 일터를 떠날 궁리를 하는 셈입니다. 직원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문화가 유능한 인재의 직장 탈출을 낳고, 이런 이유로 부실해진 회사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남은 직원을 더 쥐어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일터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들에게 공무원 시험이나 한의대 편입, 로스쿨 진학은 과연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곰곰이 뜯어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모든 사람이 이런 식의 진로 변경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늦은 나이에 진로를 바꾼다한들 꼭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분야 역시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직장 관둬봐야 별볼일 없다. 차라리 일터를 바꾸자"
이쯤에서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일터를 떠나는 게 아니라, 일터를 바꾸는 쪽으로 말입니다. 일하는 이를 기계나 소모품이 아닌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배려하는 일터를 만드는 게 과연 불가능한 걸까요. 물론 쉽지 않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면서, 경쟁이 격화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일터는 모든 면에서 너무 팍팍합니다.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보다 인간적인 일터를 만드는 방법은 분명히 있습니다. 단지 찾아서 시도하는 이가 적을 뿐입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은 너도나도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보다 인간적인 일터를 만드는 데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다들 입을 다뭅니다. 이래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일자리의 양(量)을 늘리는 데는 성공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것은 '일자리 문제'의 일부입니다.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일자리,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일자리,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겨를 없이 금세 쫒겨나는 일자리는 아무리 많아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일자리의 양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질(質)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가 일터를 바꿉니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언론은 그 속성상 일터의 문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터'는 우리의 삶이 영위되는 공간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매우 익숙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이야기들은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거리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언론은 일터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 했습니다.
〈프레시안〉 역시 이런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프레시안〉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일터에서 느끼는 문제를 제대로 다뤄 보려 합니다.
일터에서 느끼는 억울하고 답답한 사연은 무엇이건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 불합리한 업무 관행, 일하는 사람의 미래를 그릴 수 없게 하는 불안정한 고용 조건 등 무엇이건 상관없습니다.
물론 <프레시안> 역시 다른 언론이 처한 한계를 넘어설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요?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일터에서 겪은 다양한 사연을 적어 보내주십시오. 내용은 무엇이건 상관없습니다. 꼭 억울하고 힘든 이야기만 담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동료와 점심 먹으며 나눈 이야기,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내셔도 됩니다. 보내실 주소는
아, 책 한 권은 족히 됨직한 이야기라 글로 적을 엄두가 안 난다고요. 그럼 그냥 <프레시안> 편집국을 찾아오십시오. 소주 한 병만 들고 오시면 됩니다.
- 관련 기사 모음 ☞사람값이 싼 나라, 'IT 버전 삼풍백화점 붕괴' 부른다 ☞한국에선 '슈퍼 을' IT 개발자, 미국 가니 연봉 1억! ☞"반도체 산업, 언제까지 '아오지 탄광' 방식인가?"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