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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놓고 뒤집는 거나 사람 쓰고 버리는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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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놓고 뒤집는 거나 사람 쓰고 버리는 거나"

[기자의 눈]협상장 해프닝이 보여준 이랜드의 경영철학

20여 일째 진행되고 있는 '이랜드 사태'를 대화로 풀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교섭이 19일 새벽 최종 결렬됐다. 협상 전부터 정부가 "결렬 시 강제로 점거 농성 해제"를 공언한 가운데 진행된 협상은 회사의 '선 점거 농성 해제'의 벽에 부딪혔다.
  
  노조가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최종 요구는 거부됐다. 홈에버 협상에서 이랜드일반노조는 회사에 17일 교섭까지 고집했던 '18개월 미만 비정규직의 고용 보장' 요구를 철회했지만 결국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등의 쟁점에서 회사는 끝내 "법대로"를 고집했다. .(☞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사실 협상은 초반부터 진통을 겪었다. 이랜드 그룹 홍보담당 이사의 "12시까지 진전 없으면 결렬"이라는 발언 때문이었다. 노조가 이에 대해 '언론 플레이'라며 "협상이 공권력 투입의 순서밟기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반발하고 나서면서 양측은 '사소한' 문제로 부딪혔다.
  
  기자들과 이랜드 홍보 이사의 '진실게임'
  
  노조가 "협상시한 설정 철회 및 사과"를 요구하면서 3시간 가까이 비정규직 고용 등에 관한 실질적인 안건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노동부 안양지청 관계자도 "협상 시작하자마자 기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협상을 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노조가 이 홍보 이사의 발언을 문제 삼자 회사 대표들은 "모르는 일이다. 교섭위원이 한 말이 아니니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전해들은 기자들과 발언의 당사자인 홍보담당 이사 사이에 다시 질의응답이 오갔다.
  
  문제가 되자 이랜드 홍보 이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자들이 나섰다.
  
  홍보 이사 : "기자분들이 얘기 좀 해보세요. 내가 언제 '12시면 결렬'이라고 언론 플레이를 했습니까."
  기자 1 : "아까 이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저희가 다 각자 회사에 보고했는데 무슨 소리세요."
  홍보 이사 : "그건 회사 방침이 그렇다는 거지요. 협상을 하다 보면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기자 2 : "그러니까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 사실이잖아요. 왜 아니라고 하세요."
  기자 1 : "아니, 그러면 이랜드 그룹의 공식 입장을 얘기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예요?"
  홍보 이사 : "저지요."
  기자 3 : "그런데 왜 회사 대표들은 모른다고 하시죠?"
  홍보 이사 :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냥 우리 입장이 그렇다는 겁니다. 노조가 싫으면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기자 4 : "그건 별개의 문제고요. 자꾸 회사에서 '그런 말 안 했다'고 하신다니까 그렇지요."

  
  "이랜드,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영 의지' 있나?"
  
  이날 협상장에서 볼 수 있었던 이런 해프닝은 이날 교섭에 임하는 양측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기도 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노조가 협상 시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이 일은 동시에 이랜드 그룹이 가진 노사관계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드러낸 일이기도 했다.
  
  협상 전부터 시한을 정해놓고 나와 "노조의 양보가 없으면 더 얘기할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문제가 되자 발뺌을 하는 홍보 책임자의 모습은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한 이랜드의 책임감 부재를 보여준다.
  
  그룹의 임원 가운데 하나인 홍보 이사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그렇게 말한 적 없다", "그저 우리 입장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을 바꾸고 회사 대표는 이같은 홍보 이사의 발언에 대해 "모른다"고 하는 것은 이랜드 그룹의 기업 경영 시스템 체계도 의심케 한다.
  
  비정규직의 사용도 사실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이렇게 말하고 저럴 때는 다르게 말하는' 이런 태도는 '필요할 때는 사용하고 쓸모 없어지면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의 사용 철학과 닮아 있다.
  
  장기적인 계획 속에 안정적인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자신들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별도로 기업 역시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이 좋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랜드 그룹이 노사관계를 푸는 것 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과연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은 많다. 상주점 등 새로 문을 열었거나 열 계획인 홈에버의 매장은 전체 직원의 대다수가 용역 직원으로 이뤄져 있다. 각 매장별로 100~200여 명에 달하는 직원들 가운데 회사의 정규직은 15~30명 수준이다.
  
  나머지는 모두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인 것이다. 간접고용은 직접고용 비정규직보다 저임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노사관계에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많이 쓰는 것은 장기적인 기업 경영의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원장도 최근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한 기획 연속강연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근로자의 마음을 사는 기업가가 되야 한다"며 기업이 당장의 눈에 보이는 재무재표 성과보다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노동자의 마음'을 사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협상장에서 보여진 소소한 해프닝은 이랜드 그룹의 경영철학에 대해 새삼 곱씹어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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