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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법. 보완이 아니라 재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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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정규법. 보완이 아니라 재개정해야"

[반론]사유제한ㆍ사용자개념 확대 등 반드시 포함돼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둘러싸고 해법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제2의 이랜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다.
  
  박영삼 한국노총 기획조정실 본부장은 지난 16일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비정규법 재개정을 시도할 경우 "어차피 개정될 법률로 치부하고 현행법의 차별금지나 정규직 전환 의무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려는 사용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면서 "현재로서는 편법적인 도급용역 전환에 대한 보완입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관련기사 : "'제2의 이랜드 사태' 막기 위한 해법은?")
  
  이에 대해 민주노총이 반론을 보내왔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 글에서 "사용사유제한·사용자개념의 확대·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가 해법이며 현행 법에 규정된 차별시정제도도 그 주체와 제척기간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비정규법 시행을 전후하여 나타나고 있는 비정규직의 대량해고와 외주화 등의 사태를 보면서 이솝우화 중 두루미와 여우의 식사 초대가 생각난다.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해 목이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는다. 두루미는 뾰족한 입으로 음식을 맛있게 먹지만 여우는 구경만하면서 허기진 배를 움켜쥘 수밖에 없다. 여우가 음식을 먹으려면 호리병의 긴 목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내놓은 비정규법이 진정으로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하고 차별을 해소하려면 비정규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현재까지 농성 중인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만든 당사자인 정부는 일시적 혼란이라는 안이한 말만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비정규법 안착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등으로 사회적으로 분출되는 요구를 봉쇄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1만 명이 아프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전부 살릴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1만 명 가운데 한 두 사람을 살리는 치료법은 이미 치료가 아닌 병을 악화시키는 악법이다.
  
  1만 명 중에 한 두 명 살리는 치료법은 치료가 아니다
  
  비정규직법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정책의 제도화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는 사용자에게 이윤확보를 위해 노동을 마음대로 탄압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언제든 사용자에게 마음대로 해고하고 고용할 수 있는 전권을 주는 것, 다시 말해 노동자를 사용자의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잔혹성을 은폐하기 위한 표현으로 '저임금 비정규직화' 대신 '노동유연화'라 부르는 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피가 마르는 것 같다는 말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회사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감, 억울한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속으로 삭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서러움, 설혹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면 즉시 해고되는 현실, 월급은 100여 만 원 안팎에서 맴돌 뿐이고 여기에 사회적 낙오감까지 보태면 비정규직은 스트레스로 잠을 편히 자는 날이 많지 않다고 한다. 만성적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12월 공포돼 올해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고용의 남용을 억제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들의 고용이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경총이 지난해 진행한 기업 대상 설문조사만 보더라도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율은 중소기업 23.1%, 대기업 13.3%에 불과하다. 이는 비정규법이 사용자들의 비정규직사용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산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런 우려 때문에 지난해 입법을 반대했다. 지금이라도 더 큰 문제의 발생을 막고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에 사용사유제한, 원청 사용자성 책임 확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노조의 차별시정신청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
  
  사용사유제한·사용자개념 확대·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가 절실하다
  
  먼저 비정규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원칙은 사용사유제한을 엄격하게 적용해 상시업무에 사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간제한만으로는 비정규직을 줄이지 못하기 때문에 상시업무의 비정규직 사용을 막고 일시적, 임시적인 비상시 업무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서에도 "기간제근로자의 사용을 필요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제시한 바 있다. 국제기준과 서유럽국도 마찬가지다. OECD 가입국 중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11개국이 법으로 "사유제한"을 도입하고 있다.
  
  둘째는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를 위해 노동법상의 사용자개념을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의 귀속 주체이기도 하면서 해당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파견·외주·도급 등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현대차, 포스코 등의 원청사업장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원청과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도 원청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랜드에서 보듯이 사용자들도 이 때문에 외주화를 선호하는 것이다.
  
  셋째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문화해야 한다. 비정규직이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했을 때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 노동조건을 보장받으려면 이런 장치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법제화하기 힘들고, 차별시정기구의 사례가 쌓이게 되면 차별 판단의 기준이 점차 마련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규정으로 기준을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례와 판례도 그 기준이 있어야 축적이 가능한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차별시정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에게도 차별시정 신청권을 부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차별시정신청은 사용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막대한 비용부담, 입증상의 곤란함, 제한된 정보로 인해 비정규노동자가 스스로 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차별시정 제척기간은 차별적 처우가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로 규정해야한다. 현행은 차별이 발생한 날로부터 3개월이다. 하지만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의 임금 그 밖의 근로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차별은 그것이 이루어진 시점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알 수 있는 것이 통상적이다. 따라서 차별시정은 '차별적 처우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차별적 처우가 있었음을 안 날'로 규정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 6월 15일 국회에 비정규법 시행령 무효화와 전면 재개정을 위한 민주노총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랜드 사태에서 보듯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라는 재앙은 즉각적인 법개정 착수만이 막을 수 있다. 언제까지 민주노총의 해법을 '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왜곡하면서 879만 비정규 노동자를 절망의 수렁에 가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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