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꿈꾸던 아파트와 자동차 천국, 맘에 드시나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꿈꾸던 아파트와 자동차 천국, 맘에 드시나요?

['87-'07, 일상의 혁명⑥] 화려한, 그러나 척박한 난개발 공화국

오늘날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사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 고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그러나 그 속내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 40위권의 삶의 질, 세계 130위권의 환경 질, 세계 40위권의 부패지수, 8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700만 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OECD 최고의 자살률 등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분명히 한국은 고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이지만 올바른 의미에서 잘 사는 나라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고성장과 민주화는 수단적 가치이다. 민주화는 인권의 실현을 뜻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하지만, 고성장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성장의 결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성장과 함께 흔히 나타나는 자연파괴와 빈부격차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고성장은 온갖 악덕이 담겨 있는 '판도라의 상자'로서 민주화의 성과마저 위협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고성장과 민주화에서 커다란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우리의 공간문화는 오히려 크게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면이나 생태적인 면에서 우리의 공간문화는 커다란 파괴를 계속 겪었기 때문이다. '난개발'로 대표되는 한국의 공간문화는 돈 많은 못 사는 '기형국가' 한국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이런 공간문화의 변화를 주도한 것은 바로 한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두 사물인 아파트와 자동차다.

아파트, 고층을 넘어 초고층, 고급을 넘어 초 고급으로
▲ "주택보급률 105%에 전체 주택의 70% 정도가 아파트이다. 이렇다 보니 이 나라 어디서나 아파트를 볼 수 있다." 서울 한남동에서 바라본 한강 일대. 강 건너 보이는 곳은 압구정동 및 신사동 아파트단지. ⓒ프레시안

오늘날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릴 지경에 이르렀다. 주택보급률 105%에 전체 주택의 70% 정도가 아파트이다. 이렇다 보니 이 나라 어디서나 아파트를 볼 수 있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이 산골이나 해안에도 거대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아파트의 건설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아파트는 가장 편리한 주거공간이자 '재테크'의 수단으로서 전국 어디서나 무분별하게 건설되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가 들어서려면 엄청난 공간의 변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아파트가 땅 위로 솟아오르려면 땅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면 수십 미터 깊이로 땅을 파야 한다. 따라서 골목이며 언덕 등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존의 토지조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풀이며 나무, 그리고 그곳에 깃들여 살던 생물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식으로 아파트는 자연자원이나 역사자원을 심각하게 파괴한다. 고층 아파트일수록 그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아파트는 고층화를 넘어서 초고층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또한 고급화를 넘어서 초고급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평당 몇 천만 원이라는 초고층 초고가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리는 실정이다. 개발이익이라는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크게 미비한 상황에서 개발업자와 투기꾼들은 더 많은 개발이익을 손에 넣으려고 초고층 초고가 아파트의 건설을 더욱더 강력히 추진한다. 초고층, 초고가 아파트들은 화려한 외양을 뽐내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 척박한 '난개발 공화국'의 문제를 보여줄 뿐이다.

집은 없어도 자동차는 있게 된 시대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인 '자동차 공화국'이기도 하다. 20년 전에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비로소 양산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제는 무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여기에는 1980년대 초부터 추진된 강력한 내수확대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86년의 3저 호황과 1987년의 6월 항쟁을 겪고 소득의 분배가 크게 개선됐으며,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1980년대 말에는 자동차 36개월 할부판매와 같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집은 없어도 자동차는 있다'는 '자동차 대중화'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은 1500만대 정도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됐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가구당 1대꼴이며, 실제로는 2대 이상을 보유한 가구가 매우 많다. 1980년대 초까지 자가용은 '부유층'의 상징이었으나 오늘날 자동차는 사실상 모든 국민의 일반적 필수품이 됐다.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가 공간문화의 고층화를 가져왔다면, 자동차는 공간문화의 고속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서 대다수 국민이 빠른 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동성의 증대, 대기오염, 민주화
▲ ⓒ프레시안

문화의 면에서 고속화는 고층화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먼저 대다수 국민이 자동차를 타고 먼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되면서 교외의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졌다. 모텔, 가든, 카페 등의 상업시설이 교외에 무분별하게 들어서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게 된 것은 그 좋은 예다. 이동성의 증대는 개인의 강력화라는 점에서 민주화의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훼손과 파괴의 비용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간이라는 공유재의 무차별적 사유화를 통해 민주화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자동차 공화국' 한국은 이미 너무나 많은 자동차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기오염의 악화에 따른 건강의 피해다. 전국에서 대기오염으로 매년 1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기사망하고 있다. 이 엄청난 '재앙'의 주요 요인이 바로 자동차이다. 또한 자동차의 운행을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도로가 신·증설됐다. 이로 말미암아 전국 곳곳에서 자연과 역사의 파괴가 대대적으로 빚어지고 말았다. '자동차 공해'뿐만 아니라 '도로 공해'는 이미 한국의 심각한 환경문제이자 사회문제다.

도시와 농촌의 '공통점'? 공간문화의 멸종
▲ 도시 곳곳에서는 송전탑과 전봇대를 비롯해 유선통신선이 뒤엉켜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레시안

또한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공간문화의 변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간판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판 공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 문제는 더욱 악화하여 거의 세계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간판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나 개선은 커녕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송전탑과 전봇대 문제를 들 수 있다. 한전이 최대 이윤을 올리려고 후진적 방식으로 건설하는 송전탑과 전봇대는 자연과 사회를 파괴하고 우리의 공간을 극히 삭막하고 위험하게 만든다. 건설업자와 투기꾼만이 아니라 한전과 같은 거대한 공기업도 공간문화의 중요한 '적'이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떠나서 우리의 공간문화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공간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 그리고 인공과 인공의 조화이다. 이렇게 되려면 거리와 건물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들어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간에서는 이러한 조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공간은 더럽고 천박하고 척박하고 시끄럽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끗하고 조용하고 은근하고 아름다운 곳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조용히 자연 속에서 역사를 익히며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은 그야말로 '멸종상태'에 이르렀다.

설악산에서 제주도까지 공간 오염에 시달리는 국토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여행하는 것이 고역이 되기 십상이다. 아름답다고 해서 어렵게 찾아가 보면, 도로가 산을 쪼개서 마구 개설되어 있고, 드넓은 아스팔트 주차장이 심란하게 하고, 악을 써대며 호객을 하는 듯이 온갖 간판들이 어지럽고, 확성기에서는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귀를 때린다. 낙산에서, 변산에서, 채석강에서, 고창에서, 부석사에서, 소수서원에서, 백산에서, 새만금에서, 용문에서, 홍천에서, 춘천에서, 치악산에서, 설악산에서, 지리산에서, 제주도에서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늘 보고 겪고 있다.

우리는 진정한 '발전'을 이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우리도 유럽처럼 깨끗하고 아름답고 조용한 공간문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필요한 노력을 올바로 기울이는 것이다. 그 핵심은 난개발을 막을 수 있도록 개발이익의 환수를 위한 구조적 개혁을 이루는 것과 자연과 역사를 존중하는 생태문화적 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도 여기에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