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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와 '신데렐라'를 오가는 큐레이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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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와 '신데렐라'를 오가는 큐레이터들

'신정아' 파문 계기로 본 국내 큐레이터계 실태

가짜 학위로 파문이 일고 있는 신정아 씨는 미술관의 전시기획 학예직, 일명 '큐레이터'직에 들어선 많은 인재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의 성장과정은 아직도 후진적인 우리나라의 큐레이터계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은 코스다. 그래서 누구든지 일용직 아르바이트생에서 커다란 전시예산을 주무르고 작가들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환상을 품을 수 있다.
  
  여기에는 재벌가나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사립미술관과 상업화랑에서 제대로 된 인사 검증 시스템없이 입맛에 맞는 인물을 채용하고 키워주는 것이 당연시되는 우리 미술계의 풍토가 자양분이 된다.
  
  과거의 미술과 달리 현대미술에서 큐레이터는 작가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이어서 많은 미술 전공자들이 큐레이터직에 도전하고 있고 시장에 공급이 넘쳐나고 있다.
  
  난해한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통로가 되는 큐레이터는 전시의 기본 개념을 잡고, 작가를 선택하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전시공간을 꾸민다. 흔히 큐레이터와 작가, 비평가는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삼각축으로 불린다.
  
  게다가 대안공간-소형화랑-대형화랑-미술관이라는 피라미드 구조의 전시공간 체계에서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미술계에서 목소리가 큰 중견,원로 작가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쉽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양성과 채용, 검증 과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큐레이터 직에 대한 검증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때가 됐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큐레이터들의 자발적인 모임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신 씨의 경우 1997년 말 미국 캔자스대 서양화와 판화 전공,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들고 금호미술관에 나타나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됐다. 그러다 기존 큐레이터들이 미술관을 그만두자 1998년 큐레이터 직을 물려받고 본격적으로 전시기획을 맡게 됐다.
  
  신 씨는 금호미술관에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여러 기획전 등을 열면서 호평을 받았으나 2001년 5월 전시장에서 화재가 나 유치원생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그 일로 미술관측과 마찰을 빚고 미술관에서 옮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성곡미술관의 사정을 잘 아는 미술계 인사에 따르면 신씨는 금호미술관에 재직하면서도 이미 성곡미술관에 몇 차례 지원했으며 2002년 결국 입사에 성공했다.
  
  당시 성곡미술관 학예실에는 J모 씨가 학예실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다른 큐레이터도 있었으나 그들 모두 퇴사하면서 신씨 혼자 남았고 신씨가 유일한 큐레이터이자 학예실장이 됐다. 성곡미술관은 그 이후에는 제대로 학예직을 뽑지 않고 신씨와 인턴생들로만 미술관을 꾸려왔다.
  
  한 미술계 인사는 "미술관 관장의 치맛자락까지 들어줄 정도로 비위를 맞추고, 개인비서 역할까지 해주는 것이 이 세계의 관행처럼 돼 있다"며 "그런 일을 하면서 관장의 눈에 들면 별도의 보수를 받기도 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도록 지원을 받기도 하며 대학 강의의 기회도 주어진다"고 말한다.
  
  채용과정이 어떠했든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되면 많은 부수적인 일거리가 생겨 '경력이 경력을 부르는' 현상이 이어진다. 신 씨가 지난 2월 아르코 아트페어 당시 한국 주빈국 행사의 큐레이팅을 잠시 맡았고, 이번처럼 광주비엔날레 감독직을 맡을 수 있는 근거가 된 것도 금호ㆍ성곡미술관에서의 전시기획 경력이 크게 작용했던 것은 분명하다.
  
  큐레이터로서 성공하려면 신 씨처럼 자기 홍보에 적극적인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신 씨는 집안의 재력을 은근히 강조하는 이외에도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이형구 씨를 거론하며 "내가 이형구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을 열어줬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고 많은 작가들을 자신이 픽업했다고도 말해왔다.
  
  미술계 또다른 인사는 "신 씨가 각종 미술행사에서 주인공이 된 원로급 작가에게 상상을 초월할 크기의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을 여러번 목격했다"며 "그는 주로 원로급과 어울렸으며 젊은 작가나 미술관의 인턴들에 대해서는 매우 까다로웠다"는 말도 했다.
  
  신 씨 사태를 보는 큐레이터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서울 모 갤러리 큐레이터는 "최근 큐레이터직 1명을 공모했는데 외국대학 석박사학위를 내세운 쟁쟁한 인력들이 너무 많이 지원해 당황했다"며 "외국 학위자들이 너무 많다보니 학력 인플레가 심각하지만 일일이 검증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화려해보이지만 실제로 많은 큐레이터들은 빛좋은 개살구처럼 혹사당한다"며 "신씨 사태 때문에 큐레이터계가 오해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상업화랑의 모 큐레이터는 "인사동 소형화랑들의 경우 큐레이터라고 해도 100만원도 못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화랑 청소에서부터 전시까지 모든 업무를 한 명이 처리하고, 청담동의 몇몇 화랑은 전시에 맞춰 인턴들을 여러 명 채용해 새벽까지 업무를 시켜 상당수 화랑에서 몇개월 단위로 큐레이터들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5년차인 모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모든 것이 수요 대비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기는 현상"이라며 "외국에서 그럴듯한 학위를 따와도 들어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한번 자리가 나면 월급과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들어가려는 것이 이 바닥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모 미술관 여성 큐레이터는 "신 씨가 나이에 비해 화려한 경력을 쌓아 질투와 시샘을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학위 위조 소문이나 대단한 배경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서도 신씨같은 여성 큐레이터가 제대로 성공해 후배들을 끌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또다른 미술관 큐레이터는 "미술계에서 검증 없이 활동하는 큐레이터들을 걸러내고 큐레이터들끼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모임을 결성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신정아 씨건을 계기로 한창 활동 중인 몇몇 큐레이터들의 학위도 의심스럽다는 소문, 가짜를 유통시키는 인사들에 대한 소문도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미술계 모 인사는 "조심스러운 단계이긴 하지만 영국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모 인사, 최근 몇 년간 큰 전시를 해온 모 인사, 평론가 몇 명 등에 대해서도 늘 의문이 제기돼왔으나 깔끔하게 규명된 것이 없다"며 "이외에도 큐레이터를 하면서 가짜 미술품을 팔아 막대한 부를 챙겼다는 소문도 늘 개운치 않게 떠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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