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의원만 빠지면 범여권의 대통합은 순풍에 돛을 달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침체의 늪에 빠진 범여권의 구세주가 될까?
'유시민 배제', '손학규 쏠림'은 최근 범여권 다수의 정서적, 정치적 판단을 대변하는 키워드다. '노무현의 그림자'를 유 의원에게 덤터기 씌우고 손 전 지사를 지렛대 삼아 비노(非盧)의 신천지로 옮겨가면 대선에서 한번 해 볼만 하지 않겠냐는 논리다. 대통합론의 허구는 여기서 또다시 노출된다.
유시민과 손학규의 차이란…
'盧의 남자'라는 유시민 의원은 한미 FTA 찬성론자다. '비노의 표상'이 된 손학규 전 지사 역시 적극적인 찬성론자다.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을 뛰어 넘는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 모두 신자유주의 전선에서 좌측 퇴로를 차단했다는 뜻이다.
탄광 막장까지 찾아가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운 손 전 지사의 민심대장정 일정에도, 복지부 장관 출신에 사회투자국가론을 설파하고 다니는 유시민 의원의 강연정치에도 이랜드 계열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사회경제적 현안 뿐 아니라 이라크 파병과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표를 던진 유시민 의원에게서 손 전 지사보다 개혁적인 요소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햇볕정책 계승'으로 대표되는 우측 전선에서도 두 사람은 한 식구다. 이쯤이면 손학규의 '중도'와 유시민의 '자유주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하려는 작업은 애당초 무의미한 일이 된다. 유 의원이 12일 전남대 강연 원고를 통해 열린우리당을 중도의 본류로 규정하고 "온건보수가 압도적 주도권을 가진 가운데 온건진보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이 힘을 보태온 것이 한국의 중도정치세력"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따라 노무현 노선과 십중팔구 일치하는 이란성 쌍생아 가운데 한 명은 배제되고 한 명은 기둥이 되는 대통합론은 납득이 쉽지 않다.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강조하는 '이질세력 걸러내기'가 노선 차이에 따른 것이라면 한미 FTA 반대가 정책적 슬로건인 천정배 의원이 배제의 대상이어야 아귀가 맞다.
이광철 의원이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지난 14년 동안 수구세력에 몸담으며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를 두루 거쳤던 인물은 한나라당을 탈당했으니 동질세력이 되고 자신들의 손으로 세웠던 민주개혁정부는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 이 궤변으로 어떻게 국민을 납득시킬 것이냐"고 지적한 대목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하다.
이처럼 '노무현 노선'과 별반 다를 바 없으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반정립이 중요한 목적이다 보니 범여권 대통합론은 좀처럼 모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희생양과 불쏘시개로 국민적 감동?
노무현 정부의 과(過)에 대해서까지 눈을 감아버린 친노 대선주자들이 '참여정부 계승론'을 내세우며 은근슬쩍 'DJ에 기대기'를 시도하는 양다리 행각은 물론 목불인견이다. 하지만 유 의원과 손 전 지사에 대한 대통합파들의 행태는 더욱 퇴행적이다.
노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빼면 "싸가지가 없다"는 '괘씸죄'가 '유시민 배제'의 이유다. 친노 인사인 데다 정서적으로도 껄끄러운 유 의원만큼 노무현 색깔빼기의 적임자는 없다. 일각에선 은근히 유 의원이 열린우리당 사수의 깃발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눈치도 역력하다.
손학규 쏠림은 단연코 지지율 때문이다. 최근 손 전 지사의 민심대장정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의원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의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동영계의 앞줄에 섰던 일부 의원들이 손 전 지사 쪽으로 말을 갈아타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줄서기와 배신의 정치가 한나라당의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신당의 주도권을 노리는 이들이 강조하는 '유시민 배제론'의 핵심은 유시민표 기간당원제 등 정치실험으로 3년 내내 홍역을 앓은 열린우리당의 경험을 반복하기 싫다는 뜻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체제를 염두에 놓고 볼 때 유 의원의 '분탕질'이 걱정이 될 법도 하다. 또한 어차피 대선용으로 '굴러온 돌'인 손 전 지사는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집권에 실패할 경우 범여권 어느 세력에게서도 지금처럼 융숭한 접대를 받을 리 만무하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노 대통령을 두들겨 조기탈당을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무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범여권이 또다시 정치적 희생양을 찾아 유 의원을 지목한 것이나,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쪽으로 우르르 쏠렸던 그들이 새로운 '불쏘시개'로 손 전 지사를 내세운 대목은 대통합이라는 명분 너머에 총선 주도권 장악을 위한 욕심이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낸 현상이다. 이런 대통합론에 감동할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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