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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당신의 동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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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혁명은 당신의 동네에서 시작된다"

[인터뷰] '민중의 집' 준비하는 문화연대 최준영 팀장

지난 주말,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집안에만 있기는 싫어 외출을 했다면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갔는가? '우리 마을에는 대체 편하게 놀러갈 데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교외로 나갔다가 교통체증에 짜증만 더 얹어 오진 않았는지?

주중에도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다. 모처럼 회사일이 일찍 끝난 날, 술집 외에는 갈 곳이 없어 더 큰 허무함만 느낀 채 집으로 돌아온 적은 없었는지. 옆집에 사는 이도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사 한 번 건네기도 힘들다.

그럴 때 '동네 가까운 곳에 여가시간을 보낼 공간이 있었으면…'이라고 꿈꿔본 적은 없었는지. 어느 때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쉴 수 있고, 교양·음악·미술 등 원하는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공간. 또 지역 노동조합에서 지원한 작은 도서관이 한켠에 마련돼 있고, 근처 대학 학생들이 우리 아이에게 악기나 글쓰기도 가르쳐줄 수 있는 장소라면?

여기 바로 그런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부터 서울 마포 지역 '민중의 집'을 구상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회와 문화연대 활동가들이다. 지난 7일 열린 한국사회포럼 주제토론에서 문화연대 최준영 문화정책센터 팀장은 민중의집에 관한 이 같은 계획 및 취지를 발표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 운니동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최준영 팀장을 만나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혁명을 지속시켜 주는 공간', 민중의 집

"2004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마포구위원회, 문화연대가 프로그램 하나를 기획했다. '마포 문화사회 만들기'라는 주제로 홍익대 등 마포 지역 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을 상대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해보자는 목표였다. 그런데 논의가 진행되다보니 일회성 행사보다 지역 내 '거점'을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그 결론이 '민중의 집'이다. 지난해 초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 이탈리아 '민중의 집' 포스터 ⓒ프레시안

이들이 구상한 민중의 집은 이미 유럽에서는 익숙한 개념이다. 이탈리아 전역에 1000개 이상 있다는 '카사 델 포폴로(Casa del Popolo)'의 '카사'는 집을 뜻하며 '포폴로'는 인민·민중·시민을 의미한다. 스웨덴 역시 전국에 수백개의 민중의 집(Folkets Hus)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노동당이나 사회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는 점이 민중의 집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특히 이탈리아 민중의 집은 토스카나 주, 에밀리아·로마냐 주, 피에몬테 주 등을 중심으로 1850년대 시작돼 160여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각 지역 '민중의집'은 이름이 같지만 각 지역 노동운동, 농민운동,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운동 등의 전통과 생활 양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최근 이탈리아 내 민중의 집 운동은 다소 약화됐다는 평가다.

마포 문화의집을 준비하는 이들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사례는 쿠바다. 이곳에서는 '까사 데 꿀뚜라(Casa de Cultura)'라는 이름의 공간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애초 '문화의 집'이란 뜻을 갖고 있다. 직접 현지를 방문한 이는 '혁명을 지속시켜 주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우리는 꿈꾼다…"이번 주말, 민중의 집에 가서 놀까?"
▲ 최준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프레시안

그렇다면 '한국 민중의 집'에서는 무엇을 할까? 준비팀은 일단 어른들을 위한 '진보 복덕방'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민중의 집에 가면 심심하지 않더라", "이번 주말에도 민중의 집에 가서 놀까?"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일상적인 부대낌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복덕방, 까페와 같은 공간이 마련되면 이곳에 모인 이들이 등산, 배드민턴 등의 운동 소모임이나 영화나 공연 모임을 구성할 수 있다. 또 독립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한다든지 인디밴드 공연을 유치하며 직장인 밴드 구성, 공동체라디오운동 등의 공동체 문화활동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역단체, 학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다. 조합원·회원 자녀, 저소득층 자녀 등을 대상으로 철학, 문학, 음악, 미술, 영상 등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하는 것이 현재 민중의 집 준비팀이 계획하고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다. 부모님의 월급명세서를 분석하는 정치경제학 강좌 역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구상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다.

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생활 네트워크' 구성도 민중의집 목표 중 하나다. 전농 등과 연계한 농산물 생협운동, 지역단위 조합원, 활동가, 진보적 의료인 등과 연계한 의료 생협운동 등이다. 지역에 있는 노조들로 구성된 '지역 평의회'도 민중의 집 준비팀의 구상 중 하나다.

"사실 '문화의 집', '주민자치센터' 등 지자체나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도 많다. 하지만 당과 노조, 문화단체가 모인 우리는 출발점이 다르다. 즉 민중의 집은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에서 그 시작을 두고 있다.

최근들어 운동진영에서는 다들 '운동이 안된다'며 고민하고 있다. 반면 사회는 80:20을 넘어 90:10의 사회라고 하고, 경제는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왜 운동이 안될까'란 의문이 든다. 사는 게 어려워지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는데 80을 넘어 90의 사람들이 뭉치지 못할까?

그것은 이슈를 잘 잡거나 못잡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활동가들 조차도 낮에는 파업하고 투쟁하다가 밤에 집에 들어가면 애들 과외문제만 신경을 쓰는, 삶의 문제가 아닐까. 삶이나 생활 측면에서 문화적인 혁명 없이는 운동의 변화도 없겠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역 단위, 생활 단위에서 운동의 거점을 만들고 생활이나 삶을 중심으로 운동을 재편해보자는 취지다."

사회운동은 민중을 앞세우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퇴행 중'

준비팀은 7월 중 '준비위원회'를 공식적으로 발족하고 8월 중에는 상근자를 모집해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최 팀장은 "지난 6월 21일 마포 지역에 있는 노동조합들을 대상으로 1차 간담회를 가졌을 때도 분위기가 좋았다"고 밝혔다. 마포 지역에는 크고 작은 사업장을 모두 합쳐 30군데 정도 노조가 있는데 대부분 민중의 집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동의 의사를 밝힌 상태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한겨레 사무실은 마포구에 있다)도 지난 간담회에 참석해 "공간이 따뜻해야 운동도 따뜻해지고 그 운동을 통해 만드는 사회도 따뜻해진다"며 작고 따뜻한 공간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들은 곧 마포 지역 사회단체들을 대상으로 2차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마포연대, 성미산 마을공동체 등 지역단체들을 물론이고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생태지평, 서울프린지 등이 마포 지역에 자리잡은 단체들이 그 대상이다. 이후 3차 간담회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질 예정이며 이 자리에서 본격적인 제안을 한다는 것이 준비팀의 구상이다. 민중의 집 설립 시기는 11월 중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 팀장을 비롯해 민중의 집 구상을 지켜보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민중의 집이 들어설 공간을 마련할 자금이다. 일단 민중의 집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면 마포 지역에 살고 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발기인과 회원으로 모집할 생각이지만 아직 갈길이 멀어보이기만 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돈을 받지 말자는 원칙을 세우고 나니 자금 모으기가 만만치 않다. 100만원을 내는 100명을 모으자는 것이 제 생각인데 쉽지 않다. (웃음) 충분히 월급받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만원, 2만원 내라고 선뜻 제안할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민중의 집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본다. 사회운동을 하는 단위들은 자신들의 운동의 주체로 '국민'이나 '민중'이라는 말들을 많이 쓴다. 그러나 실제로 조직되는 걸 보면 민중의 삶의 조건 자체가 압박을 받으며 퇴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담장 밖 사람들의 연대도 좋고, '퇴근 후 삶'에 대한 관심도 좋다"
▲ ⓒ프레시안

최 팀장은 민중의 집 프로젝트가 '실험'과 같다고 했다. 준비팀에 모인 이들이 공통으로 느꼈던 현실은 '집회를 해도 사람이 안 모이고, 이에 대한 여론도 안 좋은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주민들과 최대한 접촉면을 넓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었다.

"민중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결국 목적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상황을 상호구조적인 네트워킹을 통해서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운동의 근본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로는 운동의 위기가 '주체 형성'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옛날과 달리 소위 '빨갱이 책'들이 서점에 깔려 있다. 그런데 파업하면 욕먹는 상황은 반복된다. 내용도 풍부하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데 왜 운동이 안될까?

거기에는 운동 방식의 문제도 있다. 상층부 중심의 연대가 주체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연대를 지역 단위로, 수평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민중의 집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이곳저곳에서 민중의 집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 최준영 팀장에게 심심치 않게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대구, 광주, 전주 등 지역시민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자료를 보내달라고 하기도 한다.

"굳이 '이전엔 없던 매우 새로운 것'이라고 강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탈리아 민중의 집에서 제일 인기있던 프로그램이 '댄스'라고 한다. 민중의 집이라고 해서 매일 심각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는게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심화되면 '게토화'된다고들 말한다. 자본력을 가진 이들이 높은 담장을 둘러치고 자기네끼리만 살 거라는 '담장국가' 얘기도 나온다. 결국 담장 밖 사람들은 연대로 이를 극복하는 수 밖에 없다. 네트워크가 잘 이뤄지면 자원은 충분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질서 외곽에서 이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운동진영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실험해 봤으면 좋겠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집에 돌아오면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갖는 것이다. 그런 관심을 계기로 마포 민중의 집 후원에도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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