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될수록 유방암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이후 유방암은 한국 여성에게 가장 일반적인 질병이 됐다. 그러나 그 원인은 좀처럼 밝혀지지 않고 있다.
흔히 질병의 원인은 개인의 잘못된 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귀결되기 쉽다. 그러나 특정 세대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질병이라면 사회적 원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유방암을 비롯해 세대를 거듭할수록 늘어가는 질병들을 어떤 방식으로 예방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좀처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에 새로 개발된 값비싼 치료제나 치료법에 대한 소식이 언제나 빠르게 전해진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자리잡고 있는 '침묵의봄(Silent Spring Institute)' 연구소는 바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1995년 설립된 이 연구소를 만든 이들은 유방암에 걸린 여성들 자신이었다. 매사추세츠는 미국 안에서 유방암 발병률이 5위 안에 손꼽히는 지역이다.
이들은 특히 환경적 변화가 유방암에 끼친 원인에 주목했다. 연구소의 이름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인간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발해 환경운동을 촉발했던 미국 생태주의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제목에서 착안한 것이다.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환경과 여성건강'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침묵의봄 상임 연구원 캐들린 앳필드(Kathleen R. Attfield) 씨를 지난 4일 서울 신문로 여성환경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3년 전부터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사회에 원인이 있으면 예방도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연구소의 이름이 레이첼 카슨의 책 제목과 같다. 카슨과 어떤 관계인지?
엣필드 :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우리는 환경과 건강의 관계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저서와 연구 성과를 기리며 이 이름을 지었다. 또 한 가지, 레이첼 카슨 역시 유방암으로 죽었다.
프레시안 : 연구소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엣필드 : 미국은 유방암 발병률이 매우 높고, 매사추세츠는 특히 5위 안에 들 정도다. 특히 코드곶(Cape Cod) 지역은 매사추세츠 다른 지역에 비해 발병율이 20%나 더 높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여성들은 그들 스스로 연구소를 차릴 필요성을 느꼈고 환경과 건강, 유방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즉 연구소를 창립한 사람들은 유방암을 갖고 있던 여성들이었다. 이 같은 설립 과정으로 인해 비록 지금 침묵의봄 연구소는 과학도 출신들로 이뤄진 연구기관이지만 '매사추세츠 유방암 연맹'이라는 단체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소가 설립된 1995년 당시에는 모든 연구들이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에 대해서만 집중돼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는 투자가 거의 안 됐다.
우리가 환경적 원인과 유방암과의 연관성을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그 이유는 유방암의 위험 요소 중 약 50% 정도만이 알려졌으며, 그 중에서도 BRCA1, BRCA2와 같은 유전적 요소는 겨우 10~15% 정도 밖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우리 사회 자체에 원인이 있다는 것으로, 그렇다면 예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유전자 변형에 그 원인을 묻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의 유방암 발생 위험은 해마다 1%씩 증가해왔다. 오늘날 미국 내 여성들은 8명 중 1명 꼴로 유방암에 걸린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회적으로 줄여 나갈 수 있는 화학물질에 눈여겨 봐야 할 나쁜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화학물질의 붐이 일었지만 그것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제야 겨우 조금씩 알게 되는 수준이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했나?
엣필드 : 우리는 21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다양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연구는 살충제나 수질 오염과 유방암 사이의 연관관계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또 환경과 유방암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실내에 존재하는 화학물질들에 관해 조사했다. 이는 매우 새로운 분야다. 코드곶 지역 총 120개 가구에서 실내 공기, 가구, 전자제품 등을 대상으로 89개의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총 67개의 환경호르몬이 감지됐으며 27가지 살충제가 실내에서 검출됐다. 평균적으로 각 가정마다 20가지의 화학물질이 검출됐다. 1972년 이후 금지된 살충제 DDT까지 검출됐던 것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30년 이상 햇빛과 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실내에 머무르고 있는 이 같은 화학성분은 우리가 아무리 어떤 물질을 금지해도 노출을 통한 위험은 남아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또 89개의 조사대상 물질 중 정부 차원의 '건강 안전 가이드라인'이 있는 물질은 39개뿐이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안전 여부를 알려주는 어떤 장치도 없는 것이다. 안전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안전'은 무엇이며 '안전한 장소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실내에서 검출되는 환경호르몬…'안전한 장소'는 어디인가?
프레시안 : 그렇다면 실내에서 검출된 이 같은 화학물질들이 유방암 발병과 연관이 있나?
엣필드 : 우리는 아직 이들 화학물질이 인간의 유방암을 일으킨다는 결정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환경 오염원과 유방암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지만 아직 초보단계다. 식생활이 유방암에 미치는 연구는 매우 크고 활발하지만 이 같은 연구는 아직 미미하다.
그러나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연구결과들은 화학물질인 PCB(폴리염화비폐닐)가 유전적 요인과 맞물려 여성의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PCB는 과거 전자 제품이나 코킹 재료에 쓰였으며 현재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를 없애야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위험은 상존한다.
또 몇몇 연구는 유방암 발병 위험이 PAH(다환성방향족탄화수소) 노출에 의해서도 높아진다는 걸 보여준다. 화석 연료가 연소할 때 발생하는 PAH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 중 어디에나 존재한다.
유방암 세포에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을 주입하면 암세포가 커진다. 그런데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환경호르몬들 역시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즉 환경호르몬이 직접적으로 암을 발병시키진 않더라도 암세포를 자라게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평생 환경호르몬에 노출돼 있을 때 종양은 그만큼 자라날 위험성이 높다.
이처럼 환경호르몬들은 유방암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이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입증됐는데 즉 특정한 화학물질들은 동물의 유방암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 연구결과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유방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216개의 화학물질들을 목록으로 정리했다. 각 화학물질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국립 연구소의 발암물질 평가 등에 관한 연구 정보,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는 요소, 동물에 관한 연구 결과 등이 집약돼 있다. 이들 중 29가지의 화학물질이 매년 100만 파운드 이상 생산되고 있고 35개는 공기 중 노출돼 있으며 25가지는 5000명 이상의 여성의 작업 환경에 노출돼 있고, 10가지는 음식을 통해, 73가지는 일반 소비자 상품 또는 오염된 음식에 분포돼 있다. 침묵의봄 연구소 웹사이트(www.silentspring.org)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뿐 아니라 이 목록을 접한 다른 이들도 함께 연구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화학물질을 제품 제작에 사용하는 기업들 역시 이 정보를 통해 화학물질 사용을 자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프레시안 : 유방암 발병을 줄일 수 있는 일상생활 속 실천 방법은?
엣필드 : 첫째, 살충제를 쓰지 말 것. 둘째, 전자렌지에 플라스틱 용기를 넣지 말 것. 셋째, 드라이크리닝을 하지 말 것. 그 안에 들어 있는 퍼크(PERK)라는 물질은 확실히 혈액암을 유발시킨다.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 퍼크를 빼달라고 부탁하라. 넷째, PAH를 피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검게 태워 먹지 말 것.
친기업적인 미국 정부, 결국 '우리'가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 : 국내에서 환경과 여성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은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다. 미국의 상황은?
엣필드 : 미국에서도 역시 이런 종류의 연구는 꽤 새롭다. 주류가 돼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연구의 끄트머리에 있는 수준이다. 사실 많은 미국인들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유방암과 화학물질에 대한 이런 연구 결과들도 그들에게는 담배나 음주가 건강에 나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경고처럼 들릴 뿐이다.
그러나 미국의 유방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일부 여성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기 시작했고, 90년대 그들 중 또 일부가 '왜 우리는 윗세대보다 더 많이 유방암에 걸릴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원인을 찾아내서 발병률을 줄이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때 환경 문제가 건강 문제가 맞물려 연구가 활발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사회적 소수 세력'과 다름없다.
프레시안 : 미국 정부 차원의 예방 노력은 진행되고 있나?
엣필드 :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 모두 정부에 요구해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사항들이다. 어떤 제품, 어떤 물질을 제한해야 하는지 규정을 만들어 사람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연구를 주도했던 환경청(EPA)은 최근 그 정도를 줄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매우 친기업적이다. 부시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런 기업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친기업적이며 기업 활동에 해를 끼칠 만한 것들은 모두 금지된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를 통하지 않고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운동을 벌인다. 정부를 통하면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이미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 아직 미국에서는 허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기업들은 유럽에 파는 제품들에는 그런 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국에 파는 제품들에는 아직도 쓰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시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화장품 규제 방법이다. FDA는 직접 규제 대신 화장품 업체들의 자율적인 위원회에 심사를 맡긴다. 그들은 단기간에 테스트가 가능한 알러지 반응이나 피부 반응에 대해서만 검사한다. 장기간에 거쳐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제품을 파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전예방원칙, 중요성 인식하지만 아직 일부 주에서만 시행
프레시안 : 한국에서는 여전히 환경과 건강에 대한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적용하는데 정부, 전문가 양측 다 인색하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엣필드 : 그렇지 않다. 캘리포니아 주, 특히 샌프란시스코 시에서는 정부가 구매하는 물품에 대해 이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것은 기준에 대한 판단의 문제다. 만약 어떤 물질의 위험성이 80% 정도만 입증됐다면 우리는 그 위험성이 100% 입증될 때까지 기다린 뒤 금지해야 할까? 사전예방원칙은 이런 경우 80%가 입증된 경우라도 이런 물질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예방원칙은 1998년 1월 사전 예방 원칙에 실린 윙스프레드 조약에서 "인간의 건강 또는 환경에 위해가 있을 수 있는 위협 요소가 발생할 때 비록 그것이 사소한 원인이고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사전 경고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의 제안자는 먼저 이를 증명해야할 의무가 있다.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는 과정은 공개적이어야 하고, 대중에게 알려져야 하며, 민주적이어야 한다. 또 반드시 잠재적인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를 포함해야 한다. 사용금지를 포함해 모든 가능한 대안들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많은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이 이 원칙에 관심을 갖고 자기 지역 정부에 대해 이를 적용하라고 말한다.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시민단체들이 화학물질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규정으로 명시하지는 않고 있다.
사전예방원칙은 사실 논란의 여지가 많다. 어떤 이는 80%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90%라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자신있게 '금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는 누가 이익을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질병을 막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비싼 치료에 집중된 투자, 공중보건에는 무관심한 미국
프레시안 : 한국 정부는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환경보건'을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이런 정책은 일종의 돈 낭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엣필드 : 매우 전형적인 훼방 놓기다. "너무 비싸다",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가", "예산 낭비다" 등등. 환경과 건강에 관한 연구는 너무 어렵고, 투자되는 돈은 너무 적다. 증거가 적다면 연구에 투자를 해서 이를 밝혀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많은 시민운동가들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각종 과학적 연구를 이끄는 국가로 알려고 있지만, 그것은 의약품 개발 등에만 집중돼 있을 뿐이며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연구에는 매우 적은 투자가 이뤄진다. 비싼 치료에 대한 투자는 잘 되고 있지만 공중보건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안 쓴다.
의약품을 개발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면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보다 근본적으로 이 같은 현상은 미국의 개인주의적 성향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누군가의 상태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는 어디가 아프다', '그는 죽었다', '그는 아직 살아있다' 등. 그러나 '누군가가 곧 질병에 걸릴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기자신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일반 대중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적다. 개인 보험 체계는 잘 발달돼 있지만 공중보건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최근 한국과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한국 내 전문가, NGO는 미국 측이 유전자 조작 식품 검역 완화, 광우병(BSE) 예방 조치를 위한 쇠고기 수입 완화 등을 강력히 요구하는 데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미 FTA는 경제 이슈에 환경 이슈, 건강 이슈가 종속되는 세계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침묵의봄 연구소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엣필드 : 우리는 연구소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관점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각의 국가는 서로 다른 환경을 갖고 있다. 내 전공은 아니지만 우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같은 협상에서 각국의 건강과 환경에 관한 사항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돼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따져 협상을 체결해서는 안될 것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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