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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엄마가 집에 못 들어가냐면..."

농성 엿새째…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날아 온 편지

"'엄마, 파업하러 가? 몸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하고 와.' 얼마 전 작은 아들이 해준 말을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이 젖어든다. 내 자식은 비정규직을 만들지 않겠다고 나온 나의 각오이지만, 지금 현재 내 자식을 고생시키고 있으니 너무나 아프다. 내 자식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리고 승리해서 돌아가면 나를 응원해 준 만큼 잘할 것이다."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 임경분

"노무현 대통령님, 저희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희는 쉬고 싶습니다. 저희는 대우받고 싶습니다. 아무리 기업이 이익을 추구한다지만 이렇듯 비민주적이고 절차를 무시한 해고를 강행해도 되는 나라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운 터널에 눈가리개를 하고 들어가는 꼴일 것입니다." -홈에버 계산원 강미순(가명)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 계약해지와 외주화에 맞서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600여 명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5일 농성 엿새째를 맞았다.
▲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 계약해지와 외주화에 맞서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600여 명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5일로 농성 엿새째를 맞았다.ⓒ프레시안

"난생 처음, 좋은 경험이라고 하면 좋은 것이지만 안 해봐도 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은 묵묵히 집안일을 돌보며 응원해주는 남편보다 "엄마, 아프지마"라고 쪽지를 적어 놓은 자식들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이 땅의 엄마들이다.

이들은 아직 그 형체를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희망을 앞에 두고 자식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나 뿐이 아니라 너와 나의 아이들이 물려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없애기 위해", "우리 아들은 이 엄마처럼 투쟁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기에" 오늘도 농성장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어느덧 점거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농성장에서 쓴 이들의 편지글을 이랜드일반노조(위원장 김경욱)가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이 편지글에는 대부분 '엄마'이자 '아내'들인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이 다섯 번의 밤을 가족을 떠나 농성장에서 지새우면서 느낀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길어지는 농성에서 비롯된 피곤함과 속상함을 그대로 배여 있다.

(☞ 관련기사 보기 :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입니까", "비정규직 대량해고, 다음은 정규직입니다", 홈에버 월드컵점, 비정규직 싸움의 중심으로)

"너희를 생각하면 엄마가 두 명이었으면…"
▲ "엄마를 절실히 기다리는 너희를 생각하면 엄마가 두 명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든단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은 아이들에게 쓴 편지에서 "글을 쓰려니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적고 있다.ⓒ프레시안

집 떠난 엄마들의 제일 큰 걱정은 자식들일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농성이 어느덧 일주일이 다 돼가니 엄마들의 시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기만 한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지, 학교에서는 별 문제 없이 잘 생활하고 있는지, 엄마가 없어 외로워하지는 않는지….

하필이면 장마와 겹친 농성 기간, 밤새 내리는 비를 보며 유난히 추운 매장 바닥에 종이 박스를 깔고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진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은 아이들에게 쓴 편지에서 "글을 쓰려니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적고 있다.

"승우야! 엄마야. 그동안 잘 챙겨주지도 못해서 받아쓰기 30점 받았지. 담임 선생님께선 '승우가 왜 그럴까요?'라고 하셨지. 미안하다. 그건 네 점수가 아니라, 엄마의 점수라고 생각한다."

"새벽에 너희가 적어둔 쪽지를 보았다. '엄마, 아프지 마. 엄마 집에 일찍 오면 안마해줄게. 엄마, 잠은 어디서 자? 엄마, 사랑해.' 너희들의 이 물음과 걱정에 난 울었단다. 순간, 지금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후회도 했단다."

"보잘 것 없는 시어머니가 되어서 미안하다. 네가 결혼한 지 몇 달도 안 됐는데, 희준이 생일이 되었구나. 시어머니가 된 내가 미역국이라고 끓여서 우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즐겼으면 좋았을 것을. 미안하다." - 방학분회 이경룡

"사랑하는 수연, 수민아. 엄마를 절실히 기다리는 너희를 생각하면 엄마가 두 명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든단다. 엄마가 엄마의 일로 한 번도 집을 비워보지 않아서, 엄마 없는 빈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딸들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를 그리워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어제부터 큰아이는 기말고사인데, 내가 없다고 시험공부 안 하고 잠든 것은 아닐까? 아직도 엄마의 품이 그리워 잠 못 드는 막내는 남편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이 밤을 뒤척이며 온통 나의 머리속엔 가족 생각과 다음 달 얇아질 급여 봉투 걱정에 점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너희에게만은 이런 서러움을 남겨 주고 싶지 않아"
▲ "너희에게만은 이런 고통, 이런 서러움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 다들 아이를 집에 두고 있는 엄마들이 일주일 가까이 아이들 곁을 떠나 있는 까닭이다.ⓒ프레시안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몇 문장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엄마들'은 그렇게 미안해하면서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학창시절에도 안 해 봤던 민중가요를 부르고, 투쟁을 외치고, 동지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왜일까?

조합원들의 편지에서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겪었던 설움과 고통 역시 몇 문장의 글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그보다 이들이 당초 1박2일로 예정됐던 점거 농성을 무기한으로 이어가자고 스스로 결정한 것은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들 때문이다.

"처음에는 잘못된 법 때문에 계약만료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돼야 하는 내 처지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노조 가입을 하고 농성장을 따라다녔지.

그런데 지금은 나뿐이 아니라 너와 나의 아이들이 물려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없애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일조를 한다는 마음에, 자긍심을 가지고 이 곳 홈에버에서 열심히 투쟁을 외치고 있단다." -월드컵 분회 조합원

"큰 아이가 '엄마, 왜 매일 집회에 가는데? 그냥 그만두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아들아, 엄마는 너를 엄마와 똑같은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엄마보다는 너희를 위해 지금 싸우고 있는 거란다.


3년이나 지난 직장생활이지만 아직도 비정규직 계약기간이 다가오면 언제고 그만둬야 하는 약자이기에 너희에게만은 이런 고통, 이런 서러움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 옆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해고될 때마다 '나는 언제 해고될까?' 오늘 하루도 조마조마하며 지내는 시간…." - 면목분회 이은숙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이랜드인가? 왜 하필 대한민국인가?"

이들의 싸움은 지난 1일 시행된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정부가 점점 늘어만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며 만들어진 이 법이 오히려 이들을 길거리로 내쫒았다.

정부는 이 법이 차별시정, 2년 고용 후 정규직화 등을 통해 비정규직의 권리를 되찾아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기 위한 '계약해지 후 외주화'라는 방법이 횡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법으로 인해 오히려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이랜드인가? 왜 하필 대한민국인가? 저희가 누굴 원망하고 살아가야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의 절규에 뭐라고 답할까?ⓒ프레시안

한 조합원은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 아래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전혀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차별적인 해고를 기업이 일삼아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법의) 정당성만 부추기는 이런 나라에서 몸을 담고 사는 작금의 현실이 슬프다"고 털어놨다.

이 조합원은 기업의 교묘한 법 피해가기 전략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이 현실이 바로 "정경유착"이라고도 했다.

"아마 정경유착이라 하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시겠지요. 하지만 모든 정책이 기업과 경영자 우선이고 노동권 보장 등 노동자를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회사가 이렇게 많은데 이것이 어찌 정경유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은 틈만나면 현재의 노동운동을 비판하며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비난했다.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보다 열악한 위치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에는 대부분의 조합원이 정규직인 뉴코아노조(위원장 박양수)가 처음부터 함께하고 있다.

"저희는 급여를 올려달라고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고용안정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농성장 옆에서 영화를 보는 커플과 산책하는 공원의 가족들을 보고 있으면 저의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이랜드인가? 왜 하필 대한민국인가? 저희가 누굴 원망하고 살아가야 합니까?"

정규-비정규직이 함께 '비정규직의 권리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의 농성에 노 대통령은 뭐라고 답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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