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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몸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게 될 것 같아요"

[인권오름] 의료급여수급권자 박정진 씨의 사연

돈 없이는 건강도 지킬 수 없는 세상이다.
  
  '꿈의 의료기술'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하고, 스스로 건강을 지키라며 광고하는 의료보험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한편에는 병을 치료할 돈이 없어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연일 방송된다.
  
  한 번에 수백 만 원씩 한다는 건강검진을 하는 화려한 병원들은 계속 늘어나는데도, 병을 알아도 치료할 돈이 없기 때문에 아예 검진 받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부채질이라도 하듯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보장을 점점 더 축소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이용을 더 힘들게 하는 개정된 의료급여제도가 지난 1일 시행됐다. (☞ 관련기사 : '유시민發 의료개혁'…시작부터 '비틀비틀')
  
  개정된 의료급여제도에 따르면 의료급여1종 수급권자는 매달 6000원 씩의 '건강생활유지비'를 받고 외래 이용 시 1500~2500원의 본인부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급여일수가 많은 수급권자에게 병원 선택을 제한하는 '선택 병의원제'도 생겼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료로 병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의식이 없고, 과도하게 의료이용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 의료급여 수급 당사자는 어떤 상황일까?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이자 쪽방거주민인 박정진(가명, 50세) 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남들 보기에 괜찮은 것 같지만…"
  
  "지금 은평병원 신경정신과를 다니고 있고요. 속도 안 좋아서…. 쓰리고 소화도 안 되고 구토도 하고 해서 동부시립병원을 다니지요. 무릎 관절에도 병이 있고, 팔다리도 당기고 저리고…. 남들 보기에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한 두 가지 고통이 아니에요. 이러다 내가 얼마 못 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무더운 낮 시간, 습기 찬 듯 눅눅한 한 평 남짓한 박정진 씨의 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2년 전부터 동자동 쪽방에 살고 있는 박정진 씨는 우울증으로 20년 넘게 고통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위장병과 관절병으로 앓고 있으며,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숙생활을 힘들게 이어가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가 되어 한달에 37만 원 가량 보조를 받게 되었고 쪽방을 얻어서 생활하게 되었다.
  
  가난,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어쩌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 빠졌을까 궁금해 조심스럽게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니, 박정진 씨에게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어릴 적부터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던 그는 바보 같다는 주변의 편견과 괴롭힘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결국 서울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집이 가난해서 많이 배우지 못한 그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면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실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거든요.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중학교까지 나왔다고 둘러대고 전자회사에 겨우 들어갔지요. 배운 게 없으니 내가 아는 게 뭐 있겠어요. 영어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일을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한달 일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안양에서 박스공장 일을 하게 됐지요."
  
  1984년 취직한 박스공장은 장시간 일하면서도 낮은 임금밖에 받을 수 없는 곳이었지만 박정진 씨는 열심히 일하며 착실히 저축도 했다고 한다.
  
  "하여튼 열심히 일했었어요. 시간 되면 딱 가서 일하고, 아프면 약 끊어다 먹어가면서도 일은 빠지지 않았지요. 내가 배운 건 없었어도 작업일지도 꼬박꼬박 쓰고 해서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상까지 탔는데... 87년에 그만 잘리고 말았어요."
  
  다니던 회사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후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일자리가 생기면 잠깐씩 취직하고, 막노동 일이 있으면 하루씩 일하면서 월세방을 전전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1997년에 안양에서 노가다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IMF 터지니까 임금도 깎이고 그나마 있던 일도 없어져서 생활이 안됐어요. 방세도 못 내고 밥도 굶게 됐고…. 그때 티비를 보니까 용산에 가면 하루 한 끼 밥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하루 한 끼라도 먹자 해서 서울로 올라왔지요. 노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아픔을 말하다
  
  가난하게 생활하면서 박정진 씨는 우울증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못했고, 그나마도 병원과 무료진료소를 번갈아 다니며 그때그때 다른 약을 먹어야 했다. 약을 아끼느라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못하고 잠을 못 잘 정도로 괴로울 때에만 복용할 수 있었고, 우울증은 점점 심해져 이제 약 없이는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위장병도 얻어 아침마다 약으로 쓰린 속을 달래야 한다.
  
  "약을 안 먹으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에요. 골 아프고 정신이 희미해지고…. 잠이라도 들면 괜찮은데 약 없이는 잠도 못자요. 어떤 때에는 차라리 고통 없이 죽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안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 심정 절대 몰라요."
  
  건강에 대해서 물어보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지난 20년간의 고된 노동으로 인해 무릎은 관절병을 얻었고 팔다리가 수시로 아파서 일조차 못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박정진 씨에게 다니는 은평병원에서 치료받기를 권유해 보았다.
  
  "아직 그런 얘기는 못해봤어요. 워낙에 먹고 있는 약이 많아서요. 아직까지는 견딜 수 있으니까 안 가고 있는 거지요."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야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아파온다. 정부가 '비용의식이 없는' 수급권자들은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 간다며 각종 정책을 세우는 동안, 정말로 아픈 사람들은 자신이 아픈 것이 미안해서 아프다고 얘기조차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권리로서의 건강은 멀리 있다.
  
  병원에서 차별을 받거나 진료거부를 당한 아픔이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은평병원이랑 동부시립병원은 친절해요. 근데, 원래 병원이란 게 그렇잖아요…. 돈 갖고 가면 좋아하고, 의료급여환자, 산재환자 이런 사람이 가면 싫어하고…. 제가 예전에도 병원 많이 다녔거든요. 만약 기분이 상하더라도 돈이 없으니까, 수급권자니까, 1종이니까 생각하고 이해를 해야지 어떡해요. 근데 여기 병원에서는 그렇게까지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금 다니는 병원은 친절하다는 얘기 속에 이전에 겪었던 많은 아픔이 섞여 나온다. 왜 은평병원, 동부시립병원에만 가시냐고. 다른 병원을 못가고 그 병원만 가셔야 하는 것도 차별이라고,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왜 꼭 그렇게 바뀌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의료급여제도가 있어 박정진 씨는 꾸준히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37만 원으로 생활하는 그는 의료급여제도가 없으면 병원을 마음 놓고 다니지 못한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지요. 없는 서민들, 우리같이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위해서 해주니까 고맙게 생각해요. 수급권자가 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의료급여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고맙다'고 하신다. 의료급여제도가 박정진 씨의 걱정을 많이 덜어주고 있구나 다행스러우면서 한편 씁쓸하다. 누구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을 증명해야 할 의료급여제도를 수급권자들이 '고마워'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불건강을 드러내는 것 아닐까.
  
  요즘 박정진 씨에게는 큰 걱정이 하나 생겼다. 급여제도가 바뀌어서 7월부터는 병원을 갈 때마다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열 번 이상 병원을 가야 하는 박정진 씨는 병원비 걱정에 벌써부터 두렵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은 병원을 많이 가기 때문에요, 부담이 될 것 같아요. 몸이 아파도 병원을 못 가는 경우도 많이 생길 테고, 가더라도 맘이 편하지 않을 것도 같아요. 글쎄요. 그걸 그렇게 꼭 돈을 내라고…. 왜 꼭 그렇게 바뀌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부에서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그런 것까지 할까... 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요. 매일같이 병마와 싸우는 사람은 진료가 꼭 필요한데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놓으면 살아갈 수가 없지요. 우리같이 없는 사람만 죽어나는거지. 몸 아픈 사람은 첫째가 병원을 찾아가야 될 거 아니에요."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남들만큼 건강하게 일을 하면 좋겠어요"
  
  박정진 씨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라가 도와주니 너무 고맙고, 병원 가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아프게 된 데에는 편견, 열악한 노동조건, 부당한 해고 등의 사회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불건강으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은 그를 가난과 불건강의 악순환으로 밀어 넣었다. 건강권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들이 있었다면 박정진 씨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몸이 안 아프고 건강하면 이런 것 하고 싶어요. 무료 급식소 같은 데 가서 봉사도 하고 싶고, 몸이 아픈 분들 있으면 찾아가서 위로도 해주고 싶고, 노숙하는 분들 찾아가서 봉사도 하고 싶고…. 수급을 안 타더라도 몸만 건강해서, 남들만큼 건강하게 일을 하면 좋겠어요."
  
  대화의 끝자락에 가늘게 한숨이 섞여 나온다. 일도 하고 봉사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특별하지 않은 바램이 박정진 씨에게는 너무나 힘들다. 건강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자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의무가 될 때, 박정진 씨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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