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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1500원 올리는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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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바보야, 문제는 1500원 올리는게 아냐"

<KBS 수신료 논란의 핵심은?①>수신료 거부감의 근원

KBS(한국방송공사)가 올해 수신료를 인상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KBS는 지난 13일 경영회의에서 수신료를 월 1500원 인상하기로 확정한 데 이어 오는 27일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을 공식 안건으로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이같은 인상안이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가 싫은' 보수언론 및 보수세력은 인상 반대 여론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당장 돈을 더 내야 하는 시청자들도 떨떠름한 반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신료 인상 문제는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찬반 논란에 휩싸여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신료 문제를 '올리느냐 마느냐'의 협소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는 수신료 제도 자체의 문제점은 물론, KBS의 공영성 및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불고 있는 방송시장의 환경 변화 등 많은 문제점들이 중첩돼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의식으로 <프레시안>은 KBS 수신료 인상으로 촉발된 여러 문제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편집자>

충청북도 영동군 민주지산 자락의 한 산골마을 김순희 할머니네 댁. 이 집에는 위성방송 서비스인 '스카이 라이프'가 설치돼 있다. 스카이 라이프를 달지 않고서는 TV를 볼 수 없기 때문. 원래 스카이 라이프를 달기 전에는 지역유선방송을 통해 TV를 봤었다. 그런데 워낙 외딴 곳이어서 강풍에 선이 끊어지는 등 선로 유지관리가 쉽지 않았고, 위성방송 서비스가 시작되며 스카이 라이프를 설치한 것. 이 동네 20여 가구 대부분이 스카이 라이프를 달았다.

이 집의 한 달 스카이 라이프 요금은 8000원 선. 볼 수 있는 채널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시청하고 있다. 사실 보는 채널은 KBS, MBC, SBS 등 지상파 채널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 스카이 라이프를 단 것.

이 집은 스카이 라이프 요금 외에도 매달 전기요금과 함께 꼬박꼬박 TV수신료 2500원을 내고 있다. 단 한 달도 TV 수신료를 거른 적이 없고, 전기요금과 합산 청구되기 때문에 거를 수도 없다. 스카이 라이프 요금과 합하면 TV를 보는 데만 한 달에 1만 원이 넘게 든다.
▲ 난시청 지역에 널리 보급된 '스카이 라이프' 수신 안테나. ⓒ프레시안

그런데 요즘 KBS가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아가 치밀었다. TV를 볼 수 있게 해주지도 않으면서 수신료는 다 걷어가고, 이제 TV는 스카이 라이프로 보는데도 수신료를 더 받겠다니.

김 할머니의 딸은 "산골이라 휴대전화가 잘 안 돼 통신사에 연락을 했더니 기술자가 와서 중계기를 설치해 주고 갔다"며 "KBS는 수신료 받으면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 KBS 안 봐도 좋으니 그냥 문 닫아라"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요금에 붙어 나와 안 내면 전기 끊길까봐 내는 것이지, 수신료를 안 낼 수 있으면 안 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KBS에겐 2500원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이미 1만 원

앞서 살펴본 김 할머니의 불만은 비단 시골의 난시청 지역뿐만이 아니다. 방송위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지역유선방송 가입가구가 1200만, 위성방송 가입이 190만이다. 우리나라 총 가구수가 1800만 가구임을 감안할 때 거의 모든 가구가 유선이나 위성방송으로 TV를 시청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날로그 방식의 지상파의 수명이 다 됐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물론 다양한 케이블 채널을 보기 위해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에 가입한 이들도 있겠지만,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의 시청률은 지상파가 세배 가량 높다는 점을 볼 때 난시청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에 가입한 이들도 상당수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꾸준히 유선방송 시청료가 인상됨에 따라 시청자들의 부담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여기에 KBS가 수신료마저 올리겠다고 하니 시청자들의 불만은 KBS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지역유선방송의 경우 한 지역에 한 사업자가 지배적 위치에서 독과점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요금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시청자들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돈 1500원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다

KBS는 최근 수신료를 2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수신료 인상 찬성이 57.2%로 반대(42.8%) 여론보다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의 신뢰성을 떠나서 많은 언론학자들과 시민단체들에서는 공영방송의 유지 강화를 위해 시청률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KBS가 공영성 강화나 시청자의 시청권 확보를 위한 노력 및 수신료 제도 개선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인상계획에 대한 여론의 반응도 '일부 보수 언론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의 주최로 열린 '바람직한 수신료 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남표 박사(언론학. 홍익대 강사)는 "2004년 KBS가 실시한 수신료 관련 설문조사 결과 72.7%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큰 환경의 변화 없이 2007년에는 찬성이 더 높게 나왔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며 "수신료 인상에 대한 뉴스 댓글을 보더라도 국민들 다수가 수신료 인상을 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KBS의 수신료 인상 의지가 확고한 가운데 시민사회에서도 KBS 수신료 제도에 대한 토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프레시안

그는 시청자들이 '수신료 인상'에 거부감을 느끼는 원인을 KBS가 꼼꼼히 따져보고 이에 대한 개선책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적한 '이중 부담'의 문제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박사는 "시청자들은 지상파 방송을 케이블망 등을 통해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수신료가 '이중 부담'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런 지적은 정당하다"며 "KBS가 디지털 전환을 통해 난시청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오랫동안 이중 비용을 부담한 데서 비롯된 시청자들의 불만을 당장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따라서 수신환경 개선의 분명한 로드맵을 공영방송과 방송위원회가 함께 시청자들에게 약속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BS의 수신료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도 언론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KBS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단전 협박 수신료 징수',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인 이유

수신료 징수에 어려움을 겪던 KBS는 지난 94년부터 한전을 통해 수신료를 징수하고 있다. 전기요금과 합산돼 청구되는 징수방식에 의해 징수율이 70%대에서 90%대로 뛰어 수신료 재원 추가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기분 나쁜 일'일 수밖에 없다. '단전'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수신료를 안 낼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징수 방식은 법리적으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부 법학자들은 "한전이 징수의 편의만을 위해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통합고지하고, 수신료 체납이 있을 경우 그 납부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단전조치를 취하는 것은 행정법상의 부당결부금지원칙(不當結付禁止原則)에 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전기요금과는 상관이 없는 수신료를 전기사용을 담보로 수신료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법원 판결에서도 확인이 된다. 지난 3월 서울고등법원은 신모 씨 등 10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방송수신료통합징수권환 부존재확인' 청구소송에서 "한전이 KBS의 수신료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수신료 체납을 이유로 전기공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한전의 징수업무는 수신료 납부 통지일 뿐, 수신료 체납 등의 경우 강제징수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전기요금 분리 납부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수신료 납부거부 시 단전조치가 될 수 있다'는 원고 측의 항변에 대해 재판부는 "방송법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일정 절차를 거쳐 수신료를 면제하거나 전기요금과 분리 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이와 같은 판단의 근거는 사실 수신료를 내지 않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수신료는 법적으로 'KBS 시청 여부'와 상관없이 TV 수상기에 대해 부과되는 '특별 부담금'의 성격이다. 명칭이 '시청료'가 아니라 '수신료'인 이유다. 따라서 가정에 1대 이상의 TV를 갖고 있는 세대는 모두 수신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수신료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한전이나 KBS에 '수상기 등록 말소' 신청을 하면 된다.

또 난시청 지역의 경우도 수신료 납부 의무가 면제돼 있다. 다만 산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적 제약에 의한 난시청 지역일 경우에만 수신료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

수신료 인상 전에 대국민 사과와 수신료 제도 개선책 제시부터

문제는 KBS가 이러한 수신료 납부 면제 방식에 대해 홍보를 게을리 해왔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울릉도. 울릉도 일부 지역은 난시청 지역이어서 유선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지상파를 시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선요금과 수신료를 동시에 부담하다 불만을 느낀 주민들이 2005년 말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이에 KBS는 울릉도 지역의 난시청 조사에 나섰고, 일부 지역이 난시청 지역으로 판명돼 지금까지 주민들이 낸 수신료를 환불해주는 한편, 난시청해소 사업의 일환으로 위성안테나 설치 등을 지원했다. 도시 지역의 경우 고층 건물의 음영에 의해 난시청 지역이 될 경우 건물주가 시청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렇게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 있지만 실제 시청자들은 거의 알지 못한 채 수신료와 유선방송 비용을 이중으로 부담해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부당한 수신료를 납부해온 것이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은 "전적으로 KBS의 책임"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 부장은 "KBS는 난시청 해소 노력을 거의 해오지 않았다"며 "시청자들이 유선방송 비용 부담을 해오는 것을 KBS가 수수방관해왔고, 유선방송 비용부담과 독과점 횡포에 대한 불만의 화살이 수신료 인상 발표와 함께 원인제공자인 KBS로 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 육성을 위해 지상파 방송을 이들에게 끼워 넣은 것은 사실 난시청 문제를 이들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의도도 숨어있다"고 말했다.

노영란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운영위원장도 "난시청 문제를 방치해온 KBS는 책임과 반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수신료 인상과 함께 구체적 수신료 제도 개선 약속을 통해 대국민 설득작업에 먼저 나서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1500원 올리고 또 26년 뭉갤텐가"…수신료 제도 개혁 함께 가야

'수신료 인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언론학자들이나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수신료 제도개혁'이 함께 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앞서 살펴 본 난시청 지역이나 전기요금 통합징수 방식 문제 외에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수신료 산정 방식의 문제가 제일 시급한 개선과제로 꼽히고 있다. 이번에 KBS의 수신료 인상은 1981년 2500원으로 결정된 이후 무려 26년만의 일. 수신료는 과거 KBS이사회가 결정했지만, 1995년 헌법재판소에서 "수신료는 입법자가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결정하며 국회의 승인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문제는 수신료 결정에 대한 책임자가 불명확해지다보니 수신료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신료의 금액책정방법을 방송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수신료를 감시하고 적정한 수신료 재원을 파악하도록 하는 '수신료 조사위원회' 같은 제3의 독립된 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68년 '공영방송재정국가조약'을 만들어 '방송재정수요조사위원회'를 통해 수신료를 정하고 있다. 영국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수신료 인상을 억제하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수신료를 조정하고 있다.

저소득 소외계층에 대한 수신료 면제범위도 외국에 비해 인색하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국민기초생활 보장 대상자, 국가유공자, 난시청지역 거주자 등에 대해서만 수신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반면 영국은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수신료를 면제해주고 있고, 프랑스에서도 고령의 저소득자에 대해 수신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고령의 저소득자에 대한 수신료 면제 혜택을 확대하고 자연지형에 의한 난시청 지역 수신료 감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밖에 '단전'을 담보로 한 수신료 징수방식의 문제,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1가구 당 TV 1대 분의 수신료만 받는 방식 등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번에 1500원 올리고 말 것이냐"며 "제도 개선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는 KBS 기본안은 근시안적으로 자사 이해관계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상요 KBS 정책기획센터 팀장. ⓒ프레시안

KBS "수신료 인상이 먼저"


KBS 측에서도 이같은 비판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있지만, '수신료 인상'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20일 토론회에 참석한 이상요 KBS 정책기획센터 팀장은 "난시청 문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 방송 전환은 물론 가칭 '디지털 코리아'를 만들어 난시청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현재의 수신료 결정 및 징수방식이 취약한 것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에 제도적 문제까지 포괄해 해결하자면 '수신료 인상'이 뒤로 밀린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즉 수신료 인상이 해결돼 재원이 확보되면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수신료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또 "난시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통신위성 지원을 하려 해도 정통부에서 방송위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고, 도시 지역 난시청의 경우 책임이 건물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주들의 인식 부족 때문에 교육 홍보 및 기술지원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KBS는 KBS가 해야 할 일은 물론이고,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하지 않아야 할 일도 할 의지가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울릉도 난시청'을 해결했던 KBS 포항방송국의 김중동 총무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한전이나 KBS에 난시청 신고를 하면 KBS에서 난시청 조사를 하고, 난시청 지역으로 판정되면 판정된 이후에 고지된 수신료를 모두 환불해주고, 원할 경우 KBS와 지자체가 4:6의 비율로 비용을 부담해 위성안테나를 설치해주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KBS가 시청자 서비스에 최선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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