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한국영화가 이번 주에 동시에 개봉한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황정민을 내세운 <검은 집>이 스릴러의 형태를 띈 전형적인 상업영화라면, 하버드대학 영화 교수이자 영화감독인 김진아 감독이 연출하여 드디어(!) 극장 개봉을 하게 된 <두 번째 사랑>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장르영화의 문법 안에서 또렷한 주제를 펼쳐내는 중급 배급의 영화다. 그런가 하면 전수일 감독의 10년만의 영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온전히 충무로 바깥에서 만들어진 완전한 독립영화이자 작가영화로 완성된지 2년이 지나서야 겨우 단관에서나마 개봉기회를 잡았다. 이 세 편의 영화는 현재 한국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양태를 모두 보여준다. 중급 규모로 배급되는 영화층이 탄탄하고 독립영화들이 단관에서나마 안정적으로 배급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쨌든 세 영화 모두 각자가 목표로 한 관객들과 소통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미션>과 <킬링필드>, <시티 오브 조이>의 감독 롤랑 조페가 만든 공포영화라니 호기심과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안겨줄 만하다. <4.4.4.>는 <쏘우> 시리즈의 전세계적인 성공 이후 붐을 탄 소위 '고문영화'에 속하는 영화다. 롤랑 조페와 호러영화라는 기묘한 만남이 과연 어느 정도나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첫사랑과 관련된 영화가 두 편이 개봉하는데, 하나는 베를린영화제 테디베어상 수상에 빛나는 <스파이더 릴리>이고, 다른 한 편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초속 5 센티미터>다. 첫사랑이었지만 어릴 적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두 여자가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을 회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은 <스파이더 릴리>가 두 레즈비언의 여성적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어릴 적 첫사랑을 나눴던 두 소년 소녀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다시 스치는 과정을 아름다운 그림 속에 담아낸 <초속 5센티미터>는 기억 속에 봉인된 예쁜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 되새기는 영화다. 하지만 <뜨거운 녀석들> 역시 만만치 않은 영화다. 영국식 유머로 버무려진 액션 패러디 코미디 장르인 이 영화는 이미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그 분야에서 발군의 재능을 보여줬던 감독과 배우가 다시 뭉친 영화다.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과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혹자들은 에드거 라이트 감독을 가리켜 '영국의 타란티노'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챙겨봐야 할 영화가 한두 개가 아니다.
. | 검은 집 감독 신태라 주연 황정민, 유선, 강신일 |
보험사 특수조사원인 전준오(황정민)는 보험가입자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 집의 7살난 아들이 목을 맨 채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것이 보험금을 노린 아이의 의붓아버지 박충배(강신일)의 살인임을 알아챈 준오는 보험금 지급을 막으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아이의 생모이자 충배의 아내인 신이화(유선)의 목숨마저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는 신이화에게 보험 해지를 권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준오와 그의 여자친구 미나(김서형)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고, 준오는 '싸이코패스'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기시 유스케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 | 두 번째 사랑 감독 김진아 주연 하정우, 베라 파미가 |
뉴욕에서 불법체류자로 막노동을 하면서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데려올 꿈을 꾸고 있는 지하. 정자를 팔러 갔던 정자기증소에서, 성공한 재미교포와 결혼했으나 불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던 백인 여성 소피로부터 임신을 시켜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 지하와 소피는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점차 서로에게 빠져든다.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나 <그 집 앞> 등을 연출했지만 국내 개봉을 결국 할 수 없었던 김진아 감독이 보다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문법으로 풀어낸 격렬한 멜러 드라마. <용서받지 못한 자>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하정우와 <디파티드>에 출연했던 베라 파미가의 열연이 특히 돋보인다.
.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감독 전수일 주연 김선재, 안길강 |
빚독촉에 시달리던 영화감독 김(안길강)은 일상을 벗어나고자 떠난지 25년만에 무작정 고향인 속초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 영화(김선재)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끌리던 김은 그녀를 도와주겠다며 동행을 청한다. 영화의 제목인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멀리 있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해질녘 어스름한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내 안의 우는 바람>과 설경구 주연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를 연출한 전수일 감독이 10년만에 만든 세번째 영화로, 이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상실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이른바 '기억 3부작'의 마지막 작품.
. | 뜨거운 녀석들 감독 에드거 라이트 주연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
너무 뛰어난 런던 경찰 니콜라스(사이먼 페그)는 미운 털이 박히는 바람에 범죄율 0%를 자랑하는 시골마을로 좌천을 당한 뒤 순진한 시골 순경 대니(닉 프로스트)와 파트너가 된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이 니콜라스의 눈에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데... 이 마을에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 니콜라스는 대니와 함께 사건 조사에 나선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감독과 배우들이 다시 뭉쳐 만든 액션 코미디로, 무수한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이 영국식 유머 속에 패러디된다. '제임스 본드' 티모시 달튼이 쪼잔한 악당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반지의 제왕>의 피터잭슨 감독과 배우 케이트 블랜쳇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 | 초속 5센티미터 감독 신카이 마코토 주연 미즈하시 켄지, 콘도 요시미 |
63분의 중편 애니메이션인 <초속 5 센티미터>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어린 시절 친한 친구였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서로 이사를 하면서 편지왕래만을 통해 서로 애틋한 마음을 나누던 다카키와 아카리의 이야기를, 2부는 고등학생이 된 다카키를 짝사랑하는 카나에의 이야기를 다룬다. 3부는 성인이 되어 각자 여자친구와 약혼자를 둔 다카키와 아카리의 이야기. 어린 시절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과 이들의 인연을 서정적인 그림에 담았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 등으로 국내에도 상당한 팬을 거느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1인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 한다.
. | 스파이더 릴리 감독 주미령 주연 양승림, 양락시 |
어릴 적 여자 동급생인 첫사랑과 있을 때 아버지를 잃은 다케코. 죄책감 때문에 결국 첫사랑과 헤어지고서, 아버지의 팔에 있던 피안화의 문신을 자기 팔에 새긴다. 화상 채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소록은 어느 날 문신가게에 갔다가 벽에 자신의 첫사랑이 팔에 했던 문신인 황금빛 꽃 문양을 보고, 문신가게의 주인이 자신의 첫사랑 다케코임을 알게 된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드랙퀸 가무단>으로 데뷔해 주목을 받은 주미령 감독이 대만 내 동성애자 인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든 영화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가장 뛰어난 퀴어영화에 시상하는 테디베어상을 수상했다.
. | 4. 4. 4. 감독 롤랑 조페 주연 엘리샤 쿠스버트, 다니엘 길리스 |
유명 배우이자 모델인 제니퍼는 누군가에 납치를 당해 지하밀실에서 깨어난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데다 범인은 자신을 오래 전부터 감시해왔고 지금도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다. 과연 그녀는 왜 이곳에 끌려온 것인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폐쇄공간에 사람을 넣어두고 고문을 가하며 잔혹한 신체훼손을 시각화하는 <쏘우> 류의 영화다. <폰부스>의 각본을 썼던 래리 코헨이 시나리오를 담당했으며, <미션>, <킬링 필드> 등을 만들었던 롤랑 조페 감독이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던 영화. 주연을 맡은 엘리샤 쿠스버트는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하우스 오브 왁스> 등에 출연한 바 있으며, <엽기적인 그녀>의 미국 리메이크 버전에 캐스팅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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