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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는 세상'

[일과 희망⑪]청년실업, 문제는 과도한 교육이다

탁구장을 오가던 아이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학교-학원-집-학원숙제-잠,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이 축 늘어진 어깨에 괴나리 봇짐 싸들고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집에서는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거의 없이 지낸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어느 새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지만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이내 자기 책상으로 가 시험 준비를 하느라 이 과목 저 과목을 펴들고 교과서와 자습서에 매달린다.

초등학생인 아이도 삶은 유사하다. '아이 뭐 이렇게 바뻐. 하고 싶은 것도 하나도 못하고 또 자야 될 시간이야.' 입이 한 자나 나온 상태로 내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잠자리로 들어간다.

나는 저 맘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중학교 당시 일기장을 펴 본다. 학교가 끝나고 탁구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가까운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다. 당시에는 이에리사가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에서 우승하여 탁구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랑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거의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도 이해 못하지만-아니 오히려 헷갈리게 만들겠지-이 땅의 대부분 학부모들도 측은하게 쳐다볼 것이다. '저런 철없는 아빠가 있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특별한 사람만 가던 대학이 특별한 사람만 안 가는 시절로
▲ '특별한 사람'만 대학을 가던 시절에서 '아주 특별한 이유'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프레시안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 고등학교 졸업자 중 80% 이상이 대학에 가는 세상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인 1970년대에는 고등학교 졸업자 중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30%를 밑도는 수준이었고, 이러한 비율은 1980년대에도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대학진학률은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전문대학을 포함한 대학의 수도 1970년 136개에서 2004년 329개로 늘어났고 대학 졸업생 수는 1980년 10만 정도에서 2004년에는 50만에 육박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만 대학을 가던 시절에서 '아주 특별한 이유'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너도 나도' 대학을 가는 세상이니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 그러니 고교평준화를 우회할 수 있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만 한다. 그러자면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최소한 '2년 정도는 앞서는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 영어나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은 소위 '명문학원'에 들어가야만 하고, 그러자면 온갖 사교육시장이 제공하는 유혹을 뿌리치지 말아야 한다. 사교육시장에 가구지출의 평균 10%를 지출하고 있다고 며칠 전 신문은 전하고 있지만 이 정도 하려면 그 이상의 지출이 요구될 것이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아이들 사교육에 교육열 높은 우리 부모들 허리가 부러지는 세상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산업사회화 과정에서에서 고등교육이 한 역할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등교육을 마친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사각모를 쓴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혜택(흔히 대학 프리미엄이라 한다)이 상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고졸 대비 대졸 근로자의 임금은 2.3배나 되었고, 대학을 갓 졸업한 근로자의 임금은 고졸 대비 1.7배나 되었다. 1년 학교에서 더 공부할 때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어느 정도 높아지는지 나타내는 교육투자 수익률은 1983년 13%를 넘는 수준으로 고졸 대비 4년제 대학 졸업자가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52% 임금을 더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이런 고졸과 대졸 근로자 간 임금격차는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0년대 초기에는 1.5배가 되었으며, 청년층 역시 1.2배를 밑돌고, 교육투자 수익률 역시 연간 9~10%까지 하락했다. 그만큼 고등교육의 프리미엄이 줄어들었다.

대학의 '프리미엄'은 사라졌다

교육시장과 노동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다 준 사건은 1997년 말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였다. 줄 이은 도산과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은 실업자로 넘쳐 났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 근로자를 위한 일자리는 충분치 못했다. 일부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며 상황을 보았지만 경기는 그리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고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다시 일자리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졸자들이 좋아하는 재벌 등 대기업, 공공부문, 은행권에서 채용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연말연시 대규모 공채를 통해 좋은 인력을 미리 확보하고 각 회사에 부합하는 인력으로 만들어가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력이 필요할 때 수시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 부문에서 채용하는 인력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졸자 증가와 함께 구조적 청년층 실업 문제로 나타났으며 매년 2, 3월에 언론매체에 톱으로 떠오르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졸업 후 일자리를 걱정하게 되었고, 재학 중 적어도 1년 동안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고, 심지어 대학에 와서도 취업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그들을 받아들이는 대학과 그들을 고용하려는 기업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대학은 자기 학교에 재학하는 '대학생들의 기초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놓고 있으며, 기업은 '대학 졸업한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은 없다'고 푸념한다. 젊은이들 모두가 어린 아이 때부터 그리 열심히 살아 왔는데, 대학에서나 사회에서는 그들의 노력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지나친 고학력화가 가져온 하향취업 도미노
▲ '누구나 다 대학에 가는 시절'의 지나친 고학력화는 오히려 하향취업의 도미노 현상을 불러왔다. ⓒ프레시안

어디에서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너무 과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고등교육 진학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한 국가의 인적자본의 평균 수준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측면은 이들이 충분히 활용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통계연보에 나타난 신규학졸자 취업률 추이를 보면, 1982년에 대졸자는 72%나 되었으나 2004년에는 56%로 하락하였으며, 전문대졸은 1991년 85%나 되었으나 2004년에는 79%로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나친 고학력화가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구조와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산업 전반적 숙련구조, 예를 들어 40%의 대졸 이상 학력과 60%의 고졸 이하 학력을 가진 근로자로 구성되는 숙련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지나치게 많은 대졸자가 노동시장에 나오면 대졸자는 하향취업을 할 수 밖에 없고 이에 밀린 고졸 이하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게 된다.

대졸자의 하향취업 경향은 상대적으로 저숙련 저기술을 요구하는 직종(저숙련 직종이라 하자)에 종사하는 취업자의 비중을 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1983년 대졸자 중 14%, 전문대졸 중 30%만이 저숙련 직종에 종사하였는데 2003년에는 각각 38%와 60%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졸 역시 53%에서 66%로 저숙련 직종에 종사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지나친 고학력화가 가져온 하향취업의 도미노현상이다.

대학을 가야만 하는가를 경제학적 시각에서 분석한 연구를 보면, 대학 후 평생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기대임금(2003년 기준, 사회적 정년은 55세라 가정)은 고졸자와 비교할 때 대졸자는 9072만 원, 전문대졸자는 5914만 원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대학 교육비(연 1500만 원)와 이를 위한 사교육비(고등학교 때 월 60만 원, 중학교 때는 이의 절반)를 모두 합한 금액은 전문대가 6700만 원, 대학이 9348만 원으로,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으로 나타나 계산상으로는 대학에 갈 이유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 이유 이외에도 대학에 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노동시장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하고, 결혼시장에서는 '더 좋은 짝'을 만나야만 한다. 이러한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보다 '높은 순위'에 자신을 갖다 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베이비붐 세대가 겪었던 경쟁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을 우리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속사정이다.

명백한 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높은 비용의 '칼날 위의 균형'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가진 능력만큼 인정받는 사회라고 하자. 모두가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 최선을 다해 자기 순위를 지켜, 대학도 가고 일자리도 얻는 사회를 상정해 보자(물론 능력이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어 순위가 다소 뒤바뀔 수는 있다). 그런데 중간에 한 사람이 자기 순위를 벗어나 상위 순위를 원한다고 하자. 이 사람은 사교육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보다 높은 순위에 있던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밀려날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람들도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사교육에 일정한 금전적 비용과 시간적 비용, 그리고 젊음을 지출해야 한다. 모두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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