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에 조합원 찬반투표도 없이 총파업을 결정한 것을 두고 재계와 보수언론에서 문제제기하고 나섬에 따라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을 앞두고 있는 금속노조의 앞길에 걸림돌로 작용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뜩이나 완성차 등 대기업이 산별 중앙교섭에 불참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금속노조의 정치파업이 대기업에 명분을 주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금속노조가 중심을 잃고 휘청일 수 있다는 걱정마저 나온다.
예정된 '불법 정치파업' 공방…벌써부터 시작된 언론·재계·정부의 '공격'
금속노조는 지난 8일 중앙위에서 산별교섭과 연계하지 않고 조합원 찬반투표 없이 예정대로 오는 25일부터 한미 FTA 저지 총파업을 벌이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지난 4월 대의원대회에서 산별교섭과 총파업을 연계시키기로 결정한 전술이 뒤집어진 것이다.
금속노조의 이같은 결정에 당장 재계와 언론은 이번 파업이 '불법 정치파업'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 없이 총파업 결정을 한 것이 금속노조의 규약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정희 금속노조 교육선전실장은 "현행 노동법상으로는 설사 찬반투표를 하더라도 정치파업이니 불법으로 규정될 것이지만 내부 규약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오는 25일 호남권을 시작으로 26일 영남권, 27일 수도권 지역에서 각각 2시간 씩 파업을 벌인다. 이어 28일에는 4시간, 29일에는 6시간 동안 전 조합원이 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한미 FTA 총파업, 가뜩이나 어려운 산별교섭에 악재될 것"
노동조합의 정치파업의 불법 규정에 대한 논란은 있다. 임단협 사안만을 가지고 파업 등 쟁의행위가 가능토록 한 현행 노동법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해석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한미 FTA는 노동자들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이번 금속노조의 FTA 총파업에 대한 일각의 '공격'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의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 금속노조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점이다. 올해 15만이라는 대규모 조직으로 다시 출범한 금속노조의 역사적인 첫 산별교섭이 다소 '엉뚱하게' 한미 FTA 총파업으로 좌초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산별노조로 가면 '노조가 날마다 불법파업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산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켜 왔는데 이번 금속노조의 결정은 아직 산별이 채 정착되기도 전에 그런 주장을 확인시켜 준 꼴"이라고 우려했다. 가뜩이나 중앙교섭에 대한 의지가 없는 대기업에게 오히려 공격의 명분을 준 셈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금속노조가 과연 산별교섭에 대한 중장기적 고민 속에 내린 판단인지 의심스럽다"는 비판도 나왔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11일 <프레시안>과 전화통화에서 "오랫동안 준비한 산별교섭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일 뿐 아니라 현대차와 같은 기업들이 산별교섭에 응하고 싶어도 재계의 분위기에 부딪혀 나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금속노조가 FTA 총파업을 벌이지 않는다고 해서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중앙교섭에 응할 가능성 역시 거의 없다. (☞관련기사 보기 : 금속노사, 첫 산별교섭…"勞 15만 vs 社 2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만든 산별노조인데…"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은 산별노조의 정치파업 자체에 대한 막무가내의 '반대 및 거부감'이 아니라 올해가 새롭게 탄생한 거대 산별노조의 첫 해인만큼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는 지적이다. FTA 저지와 산별의 조기 정착,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할지라도 "과연 우선순위를 어디에 뒀어야 했느냐"는 안타까움인 것이다.
배규식 본부장은 "자칫하면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일어났던 현대차 성과급 노사갈등 사태가 그대로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회사의 노조 길들이기로 시작한 일이 노사 모두 각각의 논리에 밀려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있고 온갖 여론의 폭탄공세를 맞은 노조 역시 상처만 입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조합원과 괴리된 집행부'가 산별노조의 첫 이미지 돼서야…"
또 찬반투표 없이 진행되는 금속노조의 첫 번째 단체행동이 조합원과 집행부 사이의 불신과 괴리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다.
파업 참가 예상 규모와 관련해 금속노조는 11~12만 명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민주노총이 벌인 FTA 저지 총파업에 금속노조가 자체 집계로 최대 11만 명이 참가한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도 같은 사안을 놓고 진행되는 파업인만큼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 금속노조의 관측이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파업 찬반투표를 통해 조합원의 관심과 지지를 모아낼 '통로'가 있었다면,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김승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속노조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안건에 대해 표결까지 해서 58% 찬성률이 나오는 것은 '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내용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지난 4월 대의원대회에서 금속노조는 5시간 가까이 총파업 안건을 가지고 논의를 벌인 결과 재석 대의원 460명 중 271명이 찬성했다.
더욱이 찬반투표 없는 파업으로 결정이 나면서 현장에서는 "어쩌란 말이냐"는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현장대장정 과정에서도 '무리한 정치파업'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이 생생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산별노조의 첫 걸음이 또 정치파업이 될 경우 아직 산별노조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채 체감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에게 이번 총파업은 "다른 게 하나도 없구나"는 실망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산별노조가 첫 걸음에서부터 각종 공세에 시달리다보면 현장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첫인상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금속노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걱정이다.
금속노조 결정의 배경에는 노선투쟁이?
이번 총파업이 가져올 이같은 '역풍'에 대해 금속노조도 "모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정희 교육선전실장은 '이번 총파업이 산별교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집행부가 조금 더 전술적 차원의 유연성을 발휘해 줄 것을 호소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금속노조는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노동운동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내부의 노선투쟁"의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배규식 본부장은 "왜 파업하느냐고 하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번 파업 결정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현 집행부는 FTA 저지 총파업에 대해 당초 부정적 의견이었다. "민주노총 차원의 총력투쟁에 결합하는 형식으로 하는 것이 맞지 금속노조가 먼저 앞서가는 것은 과도한 결정일 수 있다"는 의견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지난 4월 대의원대회에서 "정갑득 위원장이 (FTA 저지 총파업 안건에 대해) 5시간을 버텼다"는 말도 나온다.
집행부는 대대 결정 이후 이번 파업에 산별교섭을 연결시키는 등의 변화를 두려고 했으나 이 안건도 결국 중앙위에서 12명이 반대, 19명이 기권해 부결된 것이다. 결국 집행부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세력의 갈등, 즉 '노동조합 내부의 권력다툼'이 무리한 결정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FTA 총파업 후 금속노조는 어디로?
과연 FTA 총파업 이후 금속노조는 어디로 갈까? 금속노조는 이번 FTA 총파업과 별도로 임단협을 염두에 두고 7월5일 쟁의조정 신청, 7월10~14일 파업 찬반투표, 7월 말 파업 돌입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산별교섭에 나오지 않는 사업장에 대한 표적투쟁 등 산별교섭 타결을 위한 각종 방법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FTA 총파업은 산별교섭에 실질적인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FTA'라는 뇌관을 금속노조가 앞장서서 건드릴 경우에 재계 뿐 아니라 정부의 '총공격'도 함께 받게 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아직 2년 여의 임기를 남겨 놓고 있는 정갑득 위원장의 구속 등 신변상의 위기까지 올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만큼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정 위원장의 인신구속은 아직 첫 걸음마도 떼지 못한 산별노조의 구심점의 부재로 이어질 것이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위기가 될 수 있다.
김승호 연구위원은 "금속노조가 집행부에 대한 각종 탄압 이후에 조직 내부의 힘을 모아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과정에 비춰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금속노조의 출범은 기업별 노사관계에 갇혀 있던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금속노조의 실험의 성패가 노동운동의 방향까지 결정하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가 자신들의 파업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이같은 비판을 가려들어야 하는 것은 금속노조의 어깨에 짊어지워진 이같은 무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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