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가의 문제를 송곳으로 헤집는 것처럼 날카롭게 비판하되 시종일관 웃음을 떠나지 않게 하는 정치풍자영화 <맨 오브 더 이어>가 일부 영화팬들에게 조용한 화제를 모을 참이다. 미국 정치코미디의 대가 배리 레빈슨 감독이 만든 이 최신 영화는 그러나, 정작 미국이나 한국이나 주류 영화권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 DVD로 나온 <맨 오브 더 이어>의 내용을 소개한다. 극중 주인공 톰 돕스가 마치 한국 정치인들에게 많은 할 말을 남긴 듯한 영화라는 평이다. |
선거에서 당선돼 정권인수 중인 차기 대통령 톰 돕스(로빈 윌리엄스)는 유명한 주말 버라이어티 토크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나가 여성 진행자 두명과 시시덕 거린다. 톰 돕스 역시 대통령 당선 직전 유명 TV토크쇼 사회자였다. "여성팬들은 잘생긴 영화배우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소리를 지르죠. 록가수에게는 팬티를 벗어서 던집니다." 그러자 한 여성MC가 대답한다. "저도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팬티를 벗어 던진 적이 있어요." "왜요?" "그거라도 입고 다니라고 말이죠." 방청석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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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더 이어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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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레빈슨의 정치 코미디 <맨 오브 더 이어>는 유명 토크쇼 사회자가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뼈대인 만큼 자칫 그저그런 황당한 코미디로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그건 오산 중의 큰 오산이 된다. 신승(辛勝)을 거두지만 우여곡절 끝에 '위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 위대한 선택은?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속 톰 돕스는 단순한 TV쇼 사회자가 아니다. 수십년동안 미국사회와 정치를 풍자하며 살아 온 만큼 그의 정치사회의식은 여느 대선 후보보다 더 훨씬 더 구체적이고 날카롭다. 국방문제, 의료보험문제, 교육문제, 환경문제, 특히 미디어 문제에 대해 그는 신랄함을 넘어서서 미국사회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낼만한 인물로 비쳐진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마이클 무어가 극영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튼 이 코미디언이 당선이 되긴 되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참여한 선거의 투표방식이, 지금 미국사회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논란 가운데 하나인, '터치 스크린' 방식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실리콘 밸리의 한 벤처회사에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엔지니언 엘레노어(로라 리니)는 컴퓨터 시스템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 사실을 알리려 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미 대통령 선거 결과는 톰 돕스가 당선됐다고 발표된 상태. 엘레노어는,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톰 돕스 본인에게 "당신은 사실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것. 엘레노어에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톰 돕스는 그야말로 가슴을 짠하게 만드는, 감동스러운 '위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 톰 돕스는 선거과정에서도 미국의 양당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선다. 그는 특히 수억 달러의 로비자금을 통해 TV나 각종 미디어 광고를 함으로써, 당선된 후에는 후원집단의 이해관계에 얽매이게 되는 양당 후보의 '자본주의적 한계'를 비판하며 '나 홀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길거리 유세만으로 선거를 치른다. 소속 정당도 없고, 돈도 없이 치러내는 이 선거에서 그는 대통령이 되기 보다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를 원할 뿐이다. 코미디언이지만 워낙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성정 탓에 많은 팬들, 유권자들로부터 그는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 낸다. 영화 속에는 그래서, 따뜻하게 가슴을 적시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자신의 한계를 명백히 잘 알고 있는 톰 돕스의 자기성찰적 모습에서는 이 시대 미국 정치인들, 우리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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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더 이어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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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매니저 잭(크리스토퍼 워켄)의 병실에서 개표과정을 보다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뉴스를 접한 톰 돕스는 다소 어이없어 한다. 병실로 들이닥친 대통령 당선자 경호팀의 팀장과의 대화는 우습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좀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라는 톰 돕스 질문에 경호팀장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톰 돕스는 그런 그에게 "정직해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자 경호팀장은 슬쩍 웃으며 "어릴 때부터 각하의 팬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무언의 대화와 미소 속에 자신의 '인간적' 위치를 다시 한번 깨닫는 정치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절차적이고 합헌적 대통령으로 대우하려는 상대방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에게서는 이런 미덕이 사라진지 오래이기 때문일까. <굿모닝 베트남>과 <왝 더 독>같은 정치 코미디를 만들어 온 배리 레빈슨의 연출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극장개봉은 하지 못한 채 DVD로 곧장 직행했다. 일반관객 뿐만 아니라 오로지 파당적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국내 정치인들에게 정말로 귀감이 될 만한 작품이다. 세상이 영화처럼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화보다 못한 세상, 영화로 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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