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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통한의 그 날이 어제 같은데…"

고 허세욱 씨 49재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습니다"

거리의 벚꽃이 보이세요.
참으로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병실에서 몇 주 보내시면서
살아온 시간 중 가장 호강하셨지요.

휴가 치고 참으로 기가 막힌 휴가였어요.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세상 걱정에 마음 놓고 쉬지 못했을 겁니다. (…)



주어진 하루 시간 안에서
당신은 온 몸으로 소외를 말했고
미친 바람 앞에서
어둠을 밝히는 이웃의 촛불이었습니다.

불꽃이 온 몸으로 전달될 때
화마의 두려움보다는
한미 FTA라는 거대한 불이
비어있는 이웃집을 삼키고 있다는
아픔이 더 컸을 겁니다.

세상에 대해 늘 따뜻했던 당신 마음이
당신을 너무 일찍 떠나게 했다는
죄스러운 생각에
동시대를 사는 소시민인 저는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님은 갔지만 정신은 세상을 밝히는 기름이 되어
아직 햇볕이 닿지 않는 이 땅의 골목골목에
한 줄기 빛이 되어 남을 겁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이 정해질 때까지 내세에 머무른다는 49일. 살아 있을 때의 어떤 집착도 버리고 이승을 비로소 완전히 떠나야 하는 날이 49재 날이라고 한다.

고(故) 허세욱 씨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외치며 분신했던 날로부터 어느덧 2달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허 씨가 막고 싶어했던 한미 FTA 협상은 분신 바로 이튿날 끝내 타결됐고, 한글로 된 협정문도 최근 공개됐다. 공개된 협정문은 정부의 '장밋빛 선전'과 달리 온갖 독소조항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협상 시한 연기를 거듭하며 타결된 협상에 대해 미국은 노동과 환경 기준을 얘기하며 재협상을 언급하고 있다. 또 정부는 한미 FTA에 이어 한-EU FTA협상도 추진 중이다.

온몸에 불이 붙은 순간에도 "망국적 한미FTA 폐기하라, 굴욕졸속 반민중적 협상을 중단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고 외쳤던, '자신의 몸을 휘감는 화마의 두려움보다 한미 FTA라는 거대한 불이 이웃집을 삼킬까 더 걱정했던' 허세욱 씨는 이제 정말 이승을 뒤로 하고 떠나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허세욱 씨를 이대로 보낼 수 없기에…6월 말 다시 한 번 일어나자"
▲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지난 4월 1일 한미 FTA 협상장 부근에서 분신한 뒤 사망한 고(故) 허세욱 씨의 49재가 열렸다. ⓒ프레시안

허세욱 씨의 49재를 맞이해 2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치러진 '한미 FTA 전면 무효화 총궐기 선포대회'에서는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서라도 막고자 했던 한미 FTA를 끝내 막지 못했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미안함이었다.

이 자리에서 위의 추모시가 낭독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고개를 떨구었고, 연사들도 "49일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똑같이 '한미 FTA를 막아내자'는 말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더욱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새삼스럽게 추모사를 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며 "벌써 49일이나 지났나 싶기도 하고 49일 동안 무엇을 했나 싶어서 그렇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참석자들은 "열사를 이대로 보낼 수 없기에 다시 한 번 한미 FTA를 무효화하기 위한 총궐기를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눈물과 통한의 그 날이 어제와도 같은데 어느덧 49재가 찾아 왔다"며 "평생 가난한 민중으로 살다 가셨던 열사가 버려야 할 이승에서의 '집착'이 무엇이 있겠는가. 집착이 남는 것은 열사가 아닌, (한미 FTA 무효화를 통해) 열사가 해탈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우리들"이라고 밝혔다.

범국본은 오는 29일 대규모 범국민 총궐기를 준비하고 있다. 한미 FTA 협정문에 대한 양국 정상의 서명이 이뤄질 즈음에 맞춰 협정 무효화 투쟁에 다시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범국본은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저지 투쟁, 광우병 감시단 활동 등과 함께 국회와의 연계를 통한 비준 저지 투쟁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정광훈 범국본 공동대표는 이날 무대 위에 올라 "허세욱 씨는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6월은 항쟁의 계절이니 6월에 한미 FTA를 폐기시키지 못하면 큰 재앙이 몰려 올 것'이라고 지령을 내렸다"며 6월 총궐기에 함께해 줄 것을 참석자들에게 호소했다.

"공개된 협정문, 황금돼지는커녕 독약 묻은 향료만 가득"
▲ "허세욱 씨를 이대로 보낼 수 없기에…. 6월 말 한미 FTA 무효화를 위해 다시 한 번 일어나자."ⓒ프레시안

이날 대회에서는 협정문 공개 이후 속속 드러나고 있는 독소조항들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범국본은 "공개된 협정문은 허세욱 열사가 왜 그토록 이 협정을 막으려 피눈물을 흘렸는지 다시금 말해줬다"며 각 분야별로 정부의 거짓말이 모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범국본은 "공개된 협정문은 노무현 대통령과 통상·재경 관료들이 이 땅 민중의 생존을 미국의 초국적 자본에게 팔아먹은 최악의 망국 협정이 바로 한미 FTA임을 다시금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협상 타결 직후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협정문에는 황금돼지가 가득해야 했지만 정작 50여 일 만에 공개된 협정문을 벗겨보니 황금돼지는커녕 독약이 묻은 향료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언급되고 있는 재협상 논의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허영구 부위원장은 "미국이 노동과 환경 기준을 들먹이며 마치 양국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증진시키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재협상을 한다는 듯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명백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허 부위원장은 "한미 양국은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 가운데 기초적인 협약조차 비준하지 않는 최고의 노동 후진국"이라며 노동 기준을 높이겠다는 미국의 명분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협정인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해버렸다. 허 부위원장은 "결국 재협상 운운하는 미국과 말을 바꾸며 이에 응해줄 태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정부는 '노동·환경 기준'을 빌미로 재벌을 위한 재협상을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각당 대선 후보 모두 모여 한미 FTA 토론회하자"

한편 이날 대회에서 심상정 의원이 각 정당의 대선 후보를 향해 "한미 FTA 합동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이 최근 서로 정책 검증을 하겠다고 난리지만 왜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당대표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에게 "한미 FTA에 대한 대통령 후보 합동 토론회를 벌일 것을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자신이 있는 후보라면 당연히 이 제안을 수락하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참석자들은 "공개된 협정문은 허세욱 열사가 왜 그토록 이 협정을 막으려 피눈물을 흘렸는지 다시금 말해줬다"며 협정문 공개 이후 각 분야별로 정부의 거짓말이 모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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