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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를 살리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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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를 살리려느냐"

[국가보안법, 나 잡아봐라!④] 어느 유치장 이야기

서울에 있는 ㅅ경찰서 유치장. 주말이라 유치장으로 경찰서 주변에 있는 교회 사람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빵과 우유같은 것을 나누어 주고 있다. 유치장 한 곳에서 가만히 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에게로 A가 다가와 묻는다.

A: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어요?
나: 국가보안법요.
A: (놀라는 듯) 요즘도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나: (시큰둥하게) 그러게요….
A: 아니 문민정부에는 민주주의의 장애요소라고 국가보안법 없앤다고 하더니…? 뭐 하시던 분이세요?
나: 저요. 공연연출가요. 공연이 올라가지도 않은 작품을,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작품을 가지고 이적표현물이라는군요. 참.
A: (어이가 없다는 투로) 아니 그럼 선생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이적표현물이 된 건가요? …(화가 나는 것 같다) 뭐 이런 일이…. (위로조로 바뀌면서) 공안검사들 자기 밥줄 끊길까봐 실적 올리려고 그러는 걸 겁니다. 곧 나가시겠네요. (힘을 주는 듯한 어조로) 이나라는 종교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건강하세요.
나:

A는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또 찬송가를 더 크게 부르더니 나에게 손을 흔들고 나간다.

13년전 내가 겪었던 실화다. 그런데 그때 '곧 나갈 거라는' 공안검사의 실적올리기는 계속됐다. 그해만도 수백 명이 국가보안법으로 곤욕을 치렀고 이놈의 나라는 전쟁을 하니마니 하면서 온통 공포분위기가 조성됐다. 물론 나는 1년여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감옥에 몰아넣었던, 민주주의의 화신을 자처했던 문민정부는 결국 IMF를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도대체 누가? 그들의 목적은 뭘까?
▲ 국가보안법 혐의가 적용된 이시우 작가의 비무장지대 사진 중 하나. ⓒ이시우 홈페이지(www.siwoo.pe.kr)

이시우 씨 구속을 보면서 13년 전의 악몽 같은 현실이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 미친 국가보안법이 되살아난다면, 그래서 다시 이 나라의 자주와 통일을 그리고 진보를 외치는 자들이 빨갱이가 되고 또다시 전쟁의 공포에 휘말리는 것 아닌가? 또 IMF 몇 십 개가 터지는 것과 진배없다는 FTA까지 겹쳐서 온 국민이 고통 속에 살아가는 악몽이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죽어가는 이 미친 국가보안법을 기를 쓰고 살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안검사들이 자기 밥벌이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럼 그동안은 왜 조용히 있었나? 그동안은 설쳐봐야 별 이득 될 것이 없어 조용하다 이제 살길이 보여서인가? 아주 서글픈 상상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에 있는 ㅅ경찰서 유치장. 주말이라 유치장에 경찰서 주변에 있는 교회 사람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고 빵과 우유같은 것을 나누어 주고 있다. 유치장 한 곳에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A가 다가와 묻는다.

A: 참 이런 데 계실 분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어요?
나: 저. 국가보안법입니다.
A: (놀라는 듯) 요즘도 국가보안법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나: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러게요…
A: 아니 참여정부에는 민주주의의 장애라고 국가보안법을 없앤다고 하더니…? 뭐하시던 분이세요?
나: 저요. 공연연출가입니다. 제가 창작해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노래를 가지고 이적표현물이라는 군요. 참. (노래를 들려준다)
A: (어이가 없다는 투로)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나: 이북의 당간부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랍니다.
A: (화가 난 것 같다) 뭐 이런 일이…. 억울하시겠습니다
나: (오히려 위로하듯) 공안검사들 자기 밥줄 끊길까봐 실적 올리려고 그러는 걸 겁니다.
A: (호기심에 찬 듯) 공안검사가요? 요즘 공안검사가 인기가 있나요? 공안검사가 출세하는 건 옛날이야기죠.
나: 그럼 곧 출세길이 열리나 보죠.
A: (뭔가 생각하는 듯) 아. 곧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것 같으니까… 미리 알아서 긴다….

나: 그래도 6·15공동선언이라는 것이 있는데 쉽게 바뀌겠습니까. 얼마전 경의선도 개통되고 그랬는데….
A: (말을 끊으며 답답하다는 듯) 아. 그거 뒤집기는 예사 아니겠어요. 역대 정권이 언제 통일 안 하겠다고 한 적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계속 국가보안법을 자기들 정권유지를 위해 써 왔지 않습니까? (이제는 나에게 딱 붙어 앉았다. 재미있나보다)

나: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게 6·15공동선언은 조금 다르다는 건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이 이북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북은 이미 40년 전에 영토를 이북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반해 남쪽은 수복해야 할 영토로 보고 있으니 이북이 계속 '반국가단체'가 되는 겁니다. 이건 유엔(UN)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6·15공동선언이 적의 개념을 우리 민족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죠. 사실 6·15선언 이후로 연북하고 연남하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안 먹힌 겁니다.
A: 연출가라고 하시더니 아시는 것이 많군요. 그럼 국가보안법이 왜 아직 살아 있는 겁니까?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나: 이유가 있겠지요. 그건 분단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민족의 분열을 원하는 세력이란 반공법을 만든 무리들, 얼마전까지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말했던 무리들 말입니다. 민족과 나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이들이죠. 그리고 그런 무리들이 있어야 이 나라에서 전쟁무기를 팔아먹으면서 계속 이 나라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미국이 있을 수 있지요.
A: (좀 물러나며) 흠,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데…. 미국으로 비약하는 것은 조금….
나: 반미 이야기가 걸리시나요. 하긴 이런 반미 이야기가 예전에는 국가보안법의 아주 가장 좋은 먹이감이었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미군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아니라 분쟁과 전쟁이 있고 미군이 있는 곳에는 국가보안법 같은 법들이 그들을 지켜주면서 사람들의 평화를 짓부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것이 분단된 이 나라의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 진실을 예술가 열정을 담아 대중에게 드러내게 하는 것이 저희들의 몫이고요. 지금 구속되어 있는 이시우 사진작가도 평화를 위하여 남쪽 미군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입니다. 저 또한…
A: (깊게 쳐다보며) 힘내세요. 건강하세요.
나: (미소 지으며 목례한다)

A는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나가면서 나에게 힘차게 손을 흔든다.

*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잇는 사진가 이시우 씨는 1일 현재 43일째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옥중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이날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살아남은 국가보안법, 아직 서초동에 있다'는 제목으로 이시우 작가의 석방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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