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미 양국이여! '문명국가'부터 되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미 양국이여! '문명국가'부터 되라"

[일과 희망⑨]두 나라의 국제노동기준 존중 수준은?

지난 25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됐다. 노동 분야의 협정문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여기에서 그럴 여유는 없다. 그런데 저절로 눈길이 가는 대목이 보인다.

협정문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노동 분야에 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약속을 하고 있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의 회원으로서의 의무와 1998년에 ILO에서 채택된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선언과 그 후속조치'를 준수할 것이라는 점,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이 자국법에 의해 인정되고 보호되도록 보장한다는 점,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에 합치하는 노동기준을 자국법에 규정하도록 노력한다는 것 등이 주목된다.

여기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이란 결사의 권리,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등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고려하면 한미FTA 협정문에서는 한국과 미국 양국에 대해 ILO가 핵심협약이라고 천명한 내용을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으로서 수용하고 상응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의 흥미를 끄는 대목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FTA 협정문에서 ILO의 국제노동기준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 ILO의 국제노동기준은 노동에 관한 보편적인 국제규범으로서의 지위를 명실상부하게 가지고 있다. ILO는 UN 창설보다 앞선 1919년에 설립된, 노동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로서 현재 180개국이 회원국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기구다. 전세계 노동권의 확립을 위한 공헌으로 1969년 노벨평화상도 수상한 바 있다.

이런 권위와 중요성을 우리나라와 미국은 FTA협정문에서 재확인하고 있는 것, 그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 한미 양국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와 미국이 ILO가 형성한 국제노동기준을 그동안 과연 얼마나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고 존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국제노동기준은 '단순한 근로조건 기준' 넘어 '국제 인권기준'이다
▲ 한미 양국은 최근 FTA를 통해 국제노동기준의 존중 의사를 밝히고 있다. 양국 모두 국제노동기준의 수용 현황이나 그 의지가 최하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부산에서 열린 제14차 ILO 아태총회에 참석 중인 각국 노동계 대표들이 "한국 정부가 노동자와 노조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모습.ⓒ연합뉴스

국제노동기준은 단순한 근로조건에 관한 기준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국제 인권기준이다. 세계인권선언에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양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떤 한 분야의 권리를 배제하고서는 인권 전체가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민적·정치적 권리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노동기준이 유지될 수 없으며, 단결권이나 노동기준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무의미하다. 1929년 채택된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29호 협약이 당시 식민지 지배 하에 있던 영토에서 식민지해방운동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것도 국제노동기준의 실천적 중요성과 의미를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노동기준의 국내 수용도는 곧 그 나라의 인권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국제노동기준의 확보는 인권이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차원에서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제노동기준의 국내 수용도를 살펴보자.

한미 양국의 ILO 협약 비준 실태, 양과 질 모두 최하위다

먼저 비준협약 수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총 187개의 ILO 협약 중 현재 22개 협약을 비준하고 있고 미국은 14개의 협약만을 비준하고 있다. 참고로 EU 국가는 평균 90개 정도의 협약을 비준하고 있고, OECD국가는 평균 72개 정도를 비준하고 있다. 국제노동기준을 수용하고자 하는 의욕 면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은 평균 18개 정도의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ASEAN국가와 비슷하고, 25개의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중국에는 못 미친다.

한미 양국이 비준한 협약의 질적 측면은 더욱 문제가 있다. 한미FTA 협정문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1998년 기본원칙선언에서 ILO는 187개에 이르는 국제노동협약 중 네 가지 분야의 8개 협약을 핵심협약으로 선언하고, 이들 협약의 비준과 준수를 문명국가의 최소한의 요구조건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협약군은 결사의 자유 보장, 강제노동의 금지, 아동노동의 금지, 기회균등의 보장에 관한 협약들이다.

그 중에서도 결사의 자유 보장에 관한 ILO 핵심협약은 87호 협약과 98호 협약이다. 87호 협약은 ILO 회원국 180개국 중 147개 국가가 비준하고 있고 98호 협약은 156개국이 비준하고 있다. 두 협약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회원국은 18개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OECD 국가로 그 범위를 좁히면 30개국 중 두 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단 두 곳이다. 그 두 나라는 한국과 미국이다.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ILO 핵심협약의 비준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가장 기본적인 강제노동금지협약인 29호 협약은 171개 국가가 비준해 가장 많은 회원국이 비준한 협약이다. 단 9개국만이 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포함되는 국가는? 역시 한국과 미국이다.

핵심협약 8개를 대상으로 하면, 한국은 그 중 4개만을 비준하고 있고 미국은 단 2개만을 비준하고 있다. OECD 30개 국가 중에서 핵심협약을 가장 적게 비준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고, 다음이 한국이다. OECD 다른 나라의 비준상황을 보면, 캐나다 3개, 일본, 멕시코, 뉴질랜드 각 2개, 호주 1개의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있지 않고 나머지 23개국은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고 있다. ILO 전체로 보면 8개 협약을 모두 비준하고 있는 나라는 126개국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와 미국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국제노동기준을 수용하지 않거나 또는 수용할 의욕이 많지 않은 대표적인 두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입기간 짧아서? No!…한미FTA 핑계 말고 숙제는 하자"
▲ ILO의 핵심협약만이라도 지켜라! 노동계는 각종 현안에서 ILO의 기준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서 국제노동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은 매우 낮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ILO 아태총회 기간 사회적 약자의 차별 철폐와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사회노동단체들의 모습.ⓒ연합뉴스

우리나라는 1991년에 ILO에 가입해 가입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협약을 비준할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ILO가 핵심적인 협약으로서 중시하고 있는 협약 중 강제노동금지와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협약을 전혀 비준하고 있지 않은 점, 비준하고 있는 22개의 협약 중에도 협약의 내용이 선언적이고 비준국에 대해 구체적인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 선언적 내지는 촉진적 성격의 협약(promotional Conventions)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 비준하는 데 제도적·실제적 장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준하지 않고 있는 협약이 다수 있는 점,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용에 있어서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 있는 협약도 있는 점 등 국제노동기준의 실시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은 단지 가입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ILO 협약을 다수 비준하고 있다고 해서 인권을 준수하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대부분이 80개 이상의 협약을 비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주의와 국제노동기준이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22개의 협약만을 비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비준현황은 결국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보장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비준 지체현상은 국회의 무관심, 행정부의 의지부족, 국제노동기준을 적극적으로 국내법의 해석원칙으로 수용하지 않는 사법부의 태도 등 관련 기관들의 소극적인 자세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국민 일반에게도 국제노동기준 내지 ILO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에 해당하는 강제노동금지, 단결권의 보장에 관한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굳이 한미FTA협정의 핑계를 댈 필요도 없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더 이상 국제노동기준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진아가 되지 않도록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ILO 29호 협약, 105호 협약과 함께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협약, 98호 협약을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저촉되는 복수노조금지를 비롯한 국내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