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군부독재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던 자리.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18일, 바로 그 자리 광주 문화의 전당(구 전남도청) 앞의 '민주의 종' 광장에 또 다른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수 많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타결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천영세, 최순영(이상 민주노동당), 최인기(민주당), 천정배, 김태홍(이상 민생정치모임) 등 국회의원들과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FTA 저지 광주전남운동본부는 18일 오후 '5.18 정신계승 및 한미 FTA 저지 비상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날 한 목소리로 "오늘의 5월정신은 한미FTA 저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광주를 잊자?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그 해 광주로부터 27년이 흘렀다. 젊은이들 가운데는 '5.18 광주민중항쟁'과 '5.16 군사쿠데타'를 혼동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우선 "아직 광주를 잊을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에 민통련 부의장 출신인 지선 스님(전 백양사 주지)은 "어떤 사람은 광주를 잊자고 하더라. 그만 덮어두자고도 한다"며 "하지만 광주를 잊는 것은 그 때 외쳤던 것들이 다 이뤄진 후에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직 광주를 자연스럽게 지울 때가 아닌 것은 여전히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비상 시국대회 참석자들이 5.18 정신계승이 한미 FTA 저지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FTA가 지금보다 더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날 권영길 의원은 "5.18 정신이라고 하면 인권, 민주, 평화, 통일 등 많은 것을 얘기하지만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노동자, 농민이 잘 사는 것'"이라며 "노동자, 농민의 삶을 지금보다 더 어렵게 만들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지금의 5월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심상정 의원도 "27년 전 민주주의를 위해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노동자, 농민들이 피를 흘려 대한민국의 물줄기를 바꾼 것이 5월 정신"이라며 "5월 정신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 투쟁이며 그런 면에서 오늘 5월의 대항쟁은 한미 FTA 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의원은 "한미 FTA 저지를 통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 "비준 저지 위해 국민들이 좀 도와주시라"
비상 시국대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모두 비준 저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회찬 의원은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제가 당선되면 반드시 농업을 폐업시키고 한미 FTA를 체결하겠다'라고 했다면 과연 대통령이 됐겠냐"며 "절대 아니다. 이 말은 아무도 노 대통령에게 그런 막강한 권한을 준 적이 없다는 의미"라고 현 정부를 비판했다.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반드시 국회의 비준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은 "어떤 사람들은 '국회에서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불과 50여 명에 불과하니 이제는 오히려 후속 대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힘모아 나가면 비준 저지는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태홍 의원도 "지난해 4월 경부터 <프레시안>을 보면서 한미 FTA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힌 뒤 "이제는 단식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비준을 반드시 막아내서 국권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 여러분이 좀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최인기 의원은 "국회 내에서 비준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으려면 국민들이 뒤에서 함께 공감해주고 도와줘야 한다"며 "국민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시민들 "도와달라? 뭐 땀시…"
이같은 국회의원들의 발언에 대해 "이미 많이 도와드렸으니 이제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농민 정찬석 씨는 "이제는 'FTA 반대한다'는 말 백 마디 보다 실제로 비준을 막아내는 한 번의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비준을 막아내지 못하면 '반대한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정 씨는 "어떤 의원들은 (지역에 와서) FTA 피해 보상 및 대책 마련에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비준 자체를 막아야지 보상 얘기는 백날 해봐야 뒷북치는 꼴밖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국대회 사회를 보던 허달용 씨도 "의원들이 '도와주라'고 하면 광주 사투리로 '뭐 땀시'라고 대답한다"며 "국민들이 한미 FTA를 막겠다고 얼마나 열심히 싸웠냐. (허세욱 씨가) 분신까지 하시면서 이미 많이 도와드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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