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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웃어야 그 사회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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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웃어야 그 사회가 웃는다"

[프레시안-여성재단 공동캠페인]"여성가장에게 희망을"

며칠 전에 딸애가 다니는 입시미술학원에 학원비를 내러 갔었다. 마침 학원수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이른바 면담 차원에서 교실에 들러 선생님과 잠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이 밤 10시까지 작업을 하고나면 얼마나 배가 고플까. 게다가 성장기가 아닌가. 자리를 뜨면서 이왕 온 김에 저녁 새참이라도 사들여 보내고자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스물아홉의 예술가 선생은 애들처럼 씩 웃으며 '뭐든지 다 잘 먹어요. 없어서 못 먹죠, 뭐' 하는데 쿡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딸애가 '선생님이 오늘 치킨 쏘셨는데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먹는 동안 한 마디도 안했다'고 했던 말과 '선생님도 아직 이십대라 그런지 우리 못지않게 군것질을 좋아하신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였다.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이 머리 속에 그려지자 뭘 사든 평화롭게 먹도록 넉넉히 사야겠다는 마음에 아이들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년처럼 장난기 가득하던 교사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것이 아닌가.

"글쎄요. 이번 달에는 몇 명이나 등록을 할지…. 지난 달까지는 그래도 11명이었는데…."

나는 얼핏 학생이 떨어지면 학원에서는 담임에게 스트레스를 줄 터이니 교사 입장에서는 심각할 수밖에 없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 2006년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으로서 부산여성회 한부모가족자립센터가 <한부모가족이 함께나누는 "행복지수 높이기"> 사업을 수행하였다.ⓒ한국여성재단

"요즘 이혼한 가정이 많아지다 보니 아버지가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는 애들이 늘어나요. 재능 있는 애들이 그런 식으로 자기 꿈을 포기하는 것을 볼 때 정말 가슴 아프지요."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나에게 이혼상담을 온 한부모 여성들, 나는 그들에게 자식에게도 죄책감을 갖지 말고 당당하고 떳떳하라고 말해 왔었다. 그런데 돈이 없어 자식의 재능을, 푸른 꿈을 접게 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만해도 모아놓은 돈은 없어도 그럭저럭 자식 먹여 살리고 가르칠 만하니까 정신적인 모성애에만 초점을 둔 것이었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재빨리 머리 속으로 어림계산을 해봤다. 월 60만 원씩 입시까지 7개월, 420만 원에다 물감과 재료비 월 5만 원씩 7개월 하면 소소한 잡비까지 쳐서 500만 원, 그 정도면 그 푸른 꿈이 짓밟히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그런 학생이 있다면 제가 후원자를 한번 물색해 볼까요?"

그래도 여성재단에 한발 담그고 있는 덕에 머리가 돌아갔다.

"아이들이 원치 않아요. 동정이나 구걸은 자존심 상한다는 거죠. 학교에서 생활보호 대상자로 분류되는 것에도 얼마나 상처를 받게요."

"대학 들어가서 아르바이트해서 갚으면 되잖아요. 구걸이 아니라 대출이지요."

마치 500만 원을 손에 들고 있기라도 한 것 마냥 안타까운 마음에 공연히 설득하려는 내게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사춘기의 예민한 때라 애들은 길게 못 보잖아요. 우선은 당장의 감정이고 기분 문제지요. 지난달에도 정말 아까운 녀석 하나가 학원비 못 내서 그만뒀는데 '나중에 돈 벌어서 제 능력으로 취미생활 하려구요'하고는 떠나버렸어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으로 삶을 일그러뜨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죠."

학원 앞의 편의점을 한참 지나 겨우 발견한 빵집에서 큰 덩어리 빵을 여러 개 사서 화실에 들여보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돈이 없어 자식의 재능을 썩히는 그 어미의 심정이 오죽할까. 무책임한 애비를 탓해야 하나, 이혼한 자신을 한탄해야 하나, 여자에게 돈 벌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해야 하나. 재능 있는 아이들을 키워주지 않는 무관심한 국가에 항의해야 하나.
▲ 2006년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으로서 이대성산종합사회복지관이 <여성한부모 동아리의 지역사회 참여증진을 통한 행복한 가족만들기> 사업을 수행하였다.ⓒ한국여성재단

이혼이든 사별이든, 남편이 있어도 경제력이 없든, 여하튼 우리사회에는 실질적인 여성가장이 적지 않다. 이들의 큰 고민거리가 오르는 집세와 자식 교육비다. 집세는 점점 도심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해결한다지만 커가는 자식들은 성장을 미룰 수 없으니 교육비가 제일 큰 고민이다. 자식들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여성가장들에게는 오아시스가 따로 없다. 자식이 저 하고픈 것을 하며 행복해 할 때 모성 또한 행복하다. 자식이 행복하고 어머니가 즐거울 때 가정이 건강해지고 사회가 안정된다.

최근 국가 차원에서 다출산을 권장하지만 분유 값과 기저귀 지원만으로는 어림없다. 낳은 사람이, 특히 낳은 여자가 최종책임을 져야 하는 '양육과 교육의 개인주의'가 상식처럼 되어 있는 한, 출산율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를 안 낳는 출산기피가 아니라 아이를 못 낳는 출산공포 때문이다.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여성재단이 여성희망캠페인과 여성가장 캐쉬SOS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편모에 대한 편견은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부정적 에너지일 뿐이다. 그 여성을, 그 가정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내일은 다시 학원을 찾아가겠다. 꿈을 접었다는 그 학생의 어머니를 반드시 알아내 캐쉬SOS를 소개하고 자식의 꿈과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길이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줄 것이다.

한 여성이 웃을 때 그 자식들이 웃고 그 자식들의 웃음은 곧 웃는 사회를 만든다. 여성 가장을 향한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충분하다. 행복의 길을 뻔히 알면서 가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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