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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좌파 독립운동가 2명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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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좌파 독립운동가 2명 진실규명

'신간회 평북철산지회'와 '여수수산학교 독립운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는 15일 열린 전원위원회를 통해 '정상윤의 신간회 평북철산지회 결성 활동'과 '박창래 여수수산학교 학생독립운동'의 진상을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정상윤(1905년 생)과 박창래(1914년 생)의 유족들은 "좌익 활동으로 인해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진실규명 신청을 했었는데, 진실화해위가 비로소 이 두 인물의 항일독립운동을 인정한 것이다.
  
  "좌익이라고 독립운동 안 한 것 아닌데"
  
  정상윤의 신간회 평북철산회 결성 활동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문헌자료 조사와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을 통한 조사 결과, 신간회 철산지회 사건을 다룬 당시 신문 등을 통해 명치대학교 3학년 생이던 정상윤이 1928년 8월 19일 신간회 철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했으며 회원들과 함께 집행부를 구성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상윤은 또 같은 해 8월 '일제의 착취와 억압에 항거해 민족의 대동단결을 천명하고 자주독립의 숨은 의지를 불어넣자'는 내용으로 된 '신간회 철산지부 설립취지서' 200여 매를 배포하려다 체포돼 1930년 경성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약 1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른 사실도 확인됐다.
  
  이밖에 1976년 발행된 '철산군지'에는 정상윤이 출옥 후 반제동맹사건에 연루됐으나 무혐의로 석방된 것으로 나와 있고 ,평북 철산에서 문맹퇴치와 민족사상 고취를 위해 야학 등 청년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창래는 여수공립 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학생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 활동을 하다 회원 21명과 함께 퇴학 처분과 함께 일제에 검거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었다. 진실화해위는 이와 같은 사실을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문과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박창래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독서회' 조직을 통해 반일적 사상을 갖고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로 인정되며, 이러한 사실은 예비조사에서 행했던 문헌조사, 전문가 면담조사에서뿐만 아니라 참고인들의 일관된 진술에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또 "해방 후 박창래의 사회주의 경력과 관련해서는 사회주의 계열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됐던 '독서회'의 성격을 고려해 본다면 해방 전 박창래가 독서회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그가 사회주의 사상과 연계됐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창래는 여순사건 당시 화양면 인민위원장으로 선출됐고, 여순사건 발생 후 진압군에 의해 체포돼 '만성리 형제묘'에서 군경에게 회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는 크게 '항일독립운동', '6.25 전후 민간인 학살', '6.25 이후 인권침해' 등 크게 3가지 시기로 나눠 진실규명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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