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때린다고 노사관계 좋아지나"

최영기 노동연구원장 "재계도 산별시대 인정해야"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이 10일 "경영계는 그 동안 사회적 차원의 노사관계 관리를 거의 방치했다"며 재계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최영기 원장은 이날 오후 노사정위원회 주최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노사관계 패러다임 전환 대토론회'에서 "그동안 경영계가 제시해 왔던 선진화전략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법과 원칙의 확립'에 한정돼 실익은 적고 노사불신만 키워 노사관계를 경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재계는 늘 노동계의 과도한 투쟁이 노사불신의 원인인 것처럼 주장해 왔지만 사실상은 경영계의 '고집'이 노사관계를 경직시켰다는 것이다.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해서는 경영계가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재계가 노동계 향해 대대적 대화공세 펼쳐야"

최 원장은 최근 급속히 이뤄지고 있는 노동조합의 산별노조 전환에 대해 재계가 '뾰로통'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재계는 산별노조나 산별교섭의 선악,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노조의 산별화 경향이나 산별 교섭활동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무시' 전략보다는 '체계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최 원장은 "경영계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비판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며 "지역·업종 차원의 인적자원 개발, 숙련 향상, 고용서비스 확충 등을 위한 노·사·정 협의회와 노사공동사업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원장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과거 기업성장기의 군살과 비효율을 제거해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하고 기업의 수익성을 높였지만 고용불안이 일반화됨에 따라 근로자들은 단기적인 임금극대화와 고용보호에 더욱 집착하게 됐다"며 외환위기 이후 노사관계 변화의 명암을 조명했다.

그는 특히 "일자리의 질적 저하와 하향이동으로 저숙련·저생산성·저임금의 함정에 갇힌 영세하도급 근로자·비정규직·자영자 층이 넓게 분포하게 됐고 이로 인해 최근 노사분규는 중소기업과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부문에서 주로 발생하고 투쟁 양상도 극단화됐다"고 설명했다. "고용의 양적 감소와 질적 하락은 소득감소와 소득불안정으로 나타나 소비위축을 야기하고 IMF 체제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최 원장은 "지속적인 성장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혁신의 계곡'을 넘어야 하는데 작업장 혁신은 '조용한 노사관계'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적극적인 노사파트너십'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특히 "양대 노총, 특히 민주노총을 상대로 한 재계차원의 대화채널은 그동안 거의 가동되지 않아 왔으며 주로 경제 5단체 명의의 비판성명 발표에 치중해 왔다"며 "재계가 양대 노총을 비롯해 각급 노동단체를 상대로 대대적인 대화공세를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5대 재벌 총수를 향해 "만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현대를 제외한 삼성 등 4대 재벌그룹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관련기사 보기 : "이건희 회장, 국민 앞에서 토론해봅시다", 삼성 "경총과 얘기하라"…민노총 대화 거부)

최 원장은 "재계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노조 비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근로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갖고 일반 근로자를 상대로 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계에도 "새로운 아젠다와 연대전략 가져라"

노동계를 향해서 최 원장은 "리더십 혁신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정파간, 정규-비정규직간, 중앙-현장간의 다양한 내부갈등으로 조직적 결속력이 약화됐고 특히 양대 노총의 대립과 조직 경쟁을 조직노동에 큰 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최 원장은 또 현재의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단기주의에 매몰돼 폭넓은 노동자연대에 소흘하다"며 "대기업 노조의 잇따른 부정·비리 사건도 이들의 과도한 권력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교섭 중심의 노동조합기능이 조합원들의 능력개발과 근로생활의 질적 개선 그리고 은퇴조합원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며 "새로운 아젠다와 연대전략을 가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