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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국민 앞에서 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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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국민 앞에서 토론해봅시다"

민주노총 '현장대장정' 한달, "고민도 대안도 모두 현장에 있더라"

9일 한반도 남단의 경상남도 거제에서 만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말뿐인 파업은 절대 안 한다"는 생각이 더욱 단단해진 듯 했다. 취임 직후부터 "준비되지 않은 파업을 남발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지난 3월부터 현장을 돌면서 "위에서 매번 지침만 내리면 그만이냐"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생생히 접한 탓이었다.

이석행 위원장은 이날 대우조선노조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6월로 예정된 금속노조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총파업에 대해서도, 대우조선에 대한 정부의 일괄매각을 반대하는 대우조선노조의 총파업 계획에 대해서도 "총연맹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할 뿐 '총파업'이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만큼 현장 잘 아는 사람 없다 자신했는데…"
▲ 현장대장정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프레시안

"민주노총이 변했다"고들 얘기한다. 그런데 이석행 위원장은 "앞으로 더 많이 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래로부터 민주노총의 힘을 복원시켜가겠다며 시작한 현장대장정이 한 달을 넘겼다. 그간 인천, 구미, 포항, 대구, 창원 등 전국 각지를 쉴 틈 없이 누볐다. 이석행 위원장은 "나만큼 현장을 잘 아는 총연맹 위원장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말로만 알았던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총연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올해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투쟁에서 법정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개별 노동자에 대한 해고로 이어지는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집중해야겠다는 고민도 현장에서 나왔다.

이석행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받는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정년 단축, 인원수 감축 등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호소를 많이 받았다"며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노동자들의 시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현장대장정의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민주노총은 평가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는 노동운동이 단순한 찬반의 흑백을 벗어나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번 현장대장정이 또 한 번의 민주노총의 질적 변화를 불러올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내일 천지개벽이 되더라도 중심이 없으면 소용 없구나"

현장에서 직접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불만 및 총연맹에 대한 비판은 아무래도 "준비되지 않은 파업의 남발"에 있었다. 밖에서도 민주노총의 잦은 총파업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대구의 한 중소사업장에서 만난 조합원은 "세밀하지 못한 파업지침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대공장은 파업을 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임금손실분을 보전하지만 중소업체들은 그대로 수십만 원 씩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것.

민주노총의 핵심 동력인 금속노조가 오는 6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금속노조에 대한 '의리'로 '못할 총파업'을 선언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것은 바로 이같은 깨달음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내일 천지개벽이 되더라도 중심이 없으면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언제는 민주노총이 '대화 없이 파업만 한다'더니 무엇이 무서워 대화 피하나?"
▲ ⓒ프레시안

이석행 위원장은 이날 재계를 향해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당당하게 한국 경제의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설득해보자"는 것이었다. 삼성 등 5대 재벌 총수에 대한 이 위원장의 대화제의에 재계는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 관련기사 보기 : 삼성 "경총과 얘기하라"…민노총 대화 거부)

이 위원장은 "평소에 민주노총보고 '대화는 안 하고 투쟁만 한다'고 비판하던 재벌들이 막상 내가 만나자니까 못 만나겠다는 것은 우습지 않냐"며 "오히려 쌍수 들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은 나를 설득하고 나는 이건희 회장을 설득하고,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얘기해보고 싶다"며 "필요하다면 특사라도 직접 각 재벌 회장실로 보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위원장의 재벌 총수와의 면담 계획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다. "자본가들을 만나서 뭘 하겠다는 거냐"는 시선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또 난리가 나겠지만 재벌과도 만날 수 있다는 내 의지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임기 동안 현장대장정 계속할 것"

현장대장정은 이제 갓 한 달을 넘겼다. 8월까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고작해야 30분 안팎의 이동거리에서 틈틈이 쉴 시간조차 넉넉지 않다.

일주일 씩 수행을 하는 사무총국 간부들은 "힘들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그는 "이번 현장대장정이 끝이 아니다. 준비해서 내년에 다시 하고 임기 동안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깨달음이 주는 '마력'이 그에게 빡빡한 일정을 이어갈 힘을 주고 있는 듯 했다.

그의 '실험'은 아직은 '파격' 수준에 불과하다. 그가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이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 마련으로 이어져야지만 민주노총이 진정 아래로부터 힘을 가질 수 있다. 또 그래야만 노동운동이 상당부분 잃었던 신뢰를 되찾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불러올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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