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는 서로 다른 사업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계약해지와 고용불안의 사례들이 이어져 마치 '비정규직법 역효과의 백화점'을 보는 것 같았다.
법 시행 앞두고 공식처럼 자리잡은 '계약해지-외주화' 방식
가장 많은 사례는 회사가 직접 고용해 사용하던 비정규직을 아예 외주의 용역업체로 넘기는 방식이었다. 기업들은 차별시정과 2년 고용시 무기계약근로자로 전환토록 한 비정규직법을 피해가기 위해 최근 곳곳에서 개별 노동자와의 계약해지 후 기존의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업무 자체를 외주화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날 증언대회에 나온 뉴코아 과천 킴스클럽의 류정숙 씨는 "총 7년을 킴스클럽에서 일했는데 쉬고 돌아온 지 3개 월 만에 도급제로 전환할 거라며 그때까지 일용직으로 일하라고 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뉴코아는 창원, 평택 등에 이어 강남점과 야탑점 소속 비정규직 계산원을 9일부로 전원 계약해지 후 용역업체 소속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를 위해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사직서를 강요하고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나중에 고용을 책임 못 진다"고 몰아붙이기도 한다는 것.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노동자에 대한 강제적 계약해지는 위법이다.
뉴코아 킴스클럽의 정희자 씨는 "백지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법안 통과 이후 언제든 계약해지가 가능하도록 근로계약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0개월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비정규직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3·6·9(개월) 계약이 횡행하더니 최근에는 1개월 계약 사례가 많고 더 나아가 0개월 계약까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에버(구 까르푸)에서도 '18개월 이상 근무한 계약직 조합원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할 수 없다'는 단체협약 조항에도 불구하고 2년 가까이 일한 계약직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4월 17일 계약해지된 호혜경 씨는 "기독교 기업임을 자랑하는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한다길래 보통 기업과는 다르겠거니 하며 고용승계 약속만 믿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대우 더 좋게 해 줄테니 자회사로 소속을 옮겨라"
외주화 가운데서도 "대우를 더 좋게 해 주고 고용도 안정시켜 줄 테니 자회사로 옮기라"고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철도공사 소속이던 새마을호 승무원이 대표적인 예다. 이 자리에 나온 새마을호 승무원 이은진 씨는 "철도공사에 직접고용된 노동자였던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공사가 지난해 말 자회사인 KTX관광레저로 이적시켰다"고 말했다.
물론 철도공사는 비슷한 대우와 고용안정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은진 씨는 "자회사로 승무원들을 이적시키려는 것은 비정규직 법안의 차별시정 조항을 피해가기 위한 수법"이라고 말했다.
"이제 정규직 전환 희망마저 가질 수 없나"
지난달 19일 발표된 비정규직법안의 시행령으로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원천적으로 빼앗긴' 사람들도 있다. 2년 고용 후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법의 '보호 취지'에서 예외조항으로 명시된 사람들이다.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장현배 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은 이날 증언대회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라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연구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70%에 달하는 정부 출연기관도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부 산하의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최근 5년 간 신규 채용한 연구인력 가운데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6315명 가운데 67.7%인 4276명이었다. 박사 학위 소지자 가운데서도 50%가 비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장현배 국장은 "박사학위 소지자의 경우에도 고용과 노동조건에 있어 안정성이 높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지금까지는 몇 년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에 발표된 시행령으로 그런 희망마저 가질 수 없게 됐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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