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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을 위한 언론의 '친절한 물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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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을 위한 언론의 '친절한 물타기'

<기고> '재벌'과 '언론'의 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의혹"이 언론에 이슈화된 지 보름 정도가 지난 지금,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김승연 회장이 "남자로서 사과를 받게 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고 말았다. 무척 후회스럽다"고 발언한 뉴스가 전해지며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소위 '일탈적 행동'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수세적인 입장에 있던 김 회장 측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사건의 성격을 설정하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원만한 봉합을 꾀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 <문화>의 '친절한 물타기'
  
  일부 언론 역시 이 사건이 반기업정서와 연관되는 것을 경계하며 폭행 사건 자체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대체로 <중앙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그 같은 입장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이 사건은 대기업 회장이 일으켜 화제지만, 본질은 폭행이다. 경찰이 제대로 처리했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경찰 때문에 사건은 외려 꼬이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감과 반기업인 정서만 확산시키는 꼴이 됐다"라며 사건에 대한 과잉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김 회장보다 오히려 경찰이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꼴이다.
  
  지난 1일 <중앙일보> 김종혁 기자의 칼럼 역시 비슷한 시각을 보여줬다. "기자 생활 20년 동안 '저 놈 죽여라'하는 식으로 여론이 비등하고 그에 따라 수사가 춤췄던 사건을 많이 목격했다. 그런 사건일수록 나중에는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다(…)경찰 수사는 원칙과 기본을 지켜야 한다. 한 가지 더 있다. 누구든 이번 사건을 '그것 봐, 있는 X들 다 그래'하는 식으로 몰아가지 말길 바란다. 그런 식의 일반화는 옳지 않다"고 했다.
  
  지난 2일 전국경제인연합 조석래 회장이 이윤호 상근 부회장 취임식에서 기자들에게 "김 회장 개인의 일로 재계 전체를 매도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이 부회장 역시 "개인이 한 일을 우리보고 책임지라고 하면 곤혹스럽다"며 비슷한 발언을 하자 이런 입장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매경> 기자도 개탄한 전경련 부회장 발언 '착실히' 인용한 <문화>
  
  지난 4일 <문화일보>의 '취재 수첩'은 "걱정스러운 것은 진실여부를 떠나 김 회장 가족 문제로 불거진 이번 사건에 대한 여론의 화살이 한화그룹을 향하더니 급기야 대기업 그룹 전체로 옮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라며 전날 취재했던 전경련 간부의 말을 인용해 "각종 설에 의존하고, 예단하고,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행태는 자칫 우리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겨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 같이 있던 <매일경제>의 기자에게는 사실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긴 말이었다. <문화일보>에 소개되지 않았던 이윤호 부회장의 "아들이 맞고 와서 아버지가 때린 정도의 사건이다. 대기업 오너니까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는 발언이 4일자 <매일경제> '기자 24시'에 보도됐다.
  
  이 기자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딱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들을 만하다"고 평하며 "개혁이 가장 필요한 조직 중 한 곳으로 지목되고 있는 전경련 상층부의 생각이 이 정도"라고 개탄했다. 덧붙여 "김 회장 폭행사건을 개인적인 일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기업정서가 심한 한국에서 재벌총수의 일탈행위는 반기업정서 특히 재벌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더욱 재벌총수의 보복폭행 사건을 언론이 왜 크게 보도하느냐는 식의 전경련 회장 발언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라며 섣부른 사건의 봉합을 경계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치외법권' 문제다
  
  이런 입장 차이는 원인과 결과, 행위와 구조에 대한 '시각차'에서 유래한다.
  
  앞서 언급한 <중앙일보>와 <문화일보>의 기사는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의혹을 반기업정서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한 개인의 일탈이 근거 없이 반기업정서를 유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식이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사법적 처벌을 내리면 그 자체로 매듭을 지울 수 있는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대다수의 언론은 대체로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원인에 주목한다. 한 개인이 사설 경호조직을 동원해 사적 보복을 가했다는 의혹을 발생시킬 수 있던 것은 재벌이라는 배경 없이는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치외법권으로 무소불위의 특권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재벌이었기에 이번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보복 폭행' 이상의 사건이 된다. 경찰 수사가 종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난 5일 <SBS 뉴스 비평>에서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이 지적한 것처럼, 이 사건은 사적 보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대기업과 공권력의 관계, 한국 재벌 경영의 특징들을 건드리고 있다.
  
  '여론 재판' 호도하는 언론이 의심되는 이유
  
  사건이 이슈화되고 보름 남짓 동안 우리에게 전해진 수많은 의혹이 단순히 '각종 설'로만 치부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실체가 뚜렷하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최초 3월 8일에 일어난 사건이 50여일 남짓 지난 4월 24일에야 비로소 이슈화됐다는 것 자체가 벌써부터 수상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경찰의 늑장 수사 자체도 의혹이지만, 매일같이 사건사고를 보고받는다는 언론 역시 몰랐다는 것도 의문스런 부분이다. 경찰, 피해 당사자, 언론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되는 것이다.
  
  뒤늦게 밝혀진 사건의 내막 자체는 충격적이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대규모의 경호집단이 사적 보복을 감행하고, 이 와중에 납치까지 자행됐단다. 총기까지 언급되고 있다. 더욱이 경찰 조사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사건의 의혹을 풀 수 있는 중요 인물조차 재빨리 잠적하는 민첩성을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뒤늦게 언론이 모든 의혹에 대해 취재하며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각종 설에 의존하고, 예단하고, 여론재판으로 몰아가는 행태'가 아닌 것이며, 이는 결코 '김 회장 가족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보복 폭행'에 가리워진 '구조적 원인'
  
  가장 우려되는 것은 최근의 봉합국면이다. 이슈화된 지 보름 남짓 지나며 이 사건은 이제 '보복 폭행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은 '보복 폭행 수사는 어디로'란 카테고리로, <네이버>에서는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논란'이란 카테고리로 관련 뉴스를 정리하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 역시 이를 '보복 폭행 의혹'으로 이름 붙였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는 결코 단순한 '보복 폭행'의 문제가 아니다. '보복 폭행'의 여부는 물론 중요한 문제이지만 '보복 폭행'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구조적 원인이 먼저 명명돼야 한다. '보복 폭행'이란 이름 붙이기가 일반화되면서 은근슬쩍 구조의 문제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사건의 향방은 한국 언론의 '바로미터'가 될 것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공적 취재원'의 빈번한 등장 역시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보복 폭행의 주체로 의심받고 있는 김승연 회장 측의 정보원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보도자료를 통해(한화그룹 홍보팀), 혹은 자신의 공적 지위를 통해(전경련 회장단), 그리고 변호인단을 통해 이 사건이 재벌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며 그릇된 부정(父情)으로 인한 한 순간의 우발적 실수였다는 식으로 사건의 성격 자체를 전환시키고 있다. "남자로서 사과를 받게 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고 말았다"는 넌센스적 발언도 뉴스가 된다. 이른바 '언론플레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 역시 손쉽게 기사거리를 얻어낼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되받아 뉴스로 생산하며 (비)의도적으로 이들의 언론플레이에 가담하고 있다. 구조적 맥락에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팩트 중개인의 역할로 제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에서도 확인됐듯, 자본의 압력에 점차 취약해지고 있는 한국 언론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 사건이 향후 어떻게 봉합될지는 한국의 재벌 문제, 더욱이 한국 언론의 성격 문제까지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섣부른 봉합과 '보복 폭행 의혹'의 물타기를 경계해야 함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발적인 한밤의 '느와르'로 치부하기엔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너무나 뿌리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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