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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켜켜이 쌓인 죽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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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켜켜이 쌓인 죽음의 그림자

[인권오름] "'쪽방촌'의 문제는 화재 위험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 소위 '쪽방촌'이라 불리는 곳에 작은 빈소가 차려졌다. 맞은 편 건물 담장은 불에 그슬린 자국이 확연했고, 모인 사람은 적었다. 이틀 전인 지난달 23일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쪽방촌 주민 이 모 씨의 길거리 추모식 풍경이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동 614번지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 3층이다. 이곳에서 하루 방값 7000원을 내고 살았던 주민이 11명. 당시 화재로 한 명이 죽고, 다섯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명은 다른 쪽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물론 옮긴 쪽방 역시 원래 살던 곳과 다를 게 없다. 1평이 채 안 돼 다리를 뻗을 수 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 빛과 바람이 차단된 음침한 실내 공기, 옆방에 환자가 있으면 바로 주위에 전염되는 열악한 위생…. 그리고 부엌이 없어서 방에서 취사를 해야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화재는 실내에서 밥을 짓다 일어났다. 화재 위험 역시 여전한 셈이다.

서울시 중구청에 따르면 이 지역 쪽방촌에는 700가구 750여 명이 살고 있다. 중구청은 화재 피해자들에게 최장 2개월까지 월 26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화재를 계기로 일부 언론이 쪽방촌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대개 화재 위험에 취약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나마도 하루뿐이었다. 그리고 쪽방촌은 다시 잊혀졌다.

그런데 화재 이틀 뒤인 지난 27일, 쪽방촌에서는 또 한 명이 조용히 숨을 거뒀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 왔던 38살 청년이었다. 이번에는 구청도,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쪽방촌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빈민 주거 환경을 바꾸기 위해 애써 온 이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조용한 죽음은 주민 넷 가운데 셋이 장애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쪽방촌에서 이미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쪽방촌 주민들은 '이웃의 죽음'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26만 원의 지원금, 언론의 반짝 보도로 해결될 수 없다.

'노숙인복지와 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이동현 상임활동가도 이런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난달 화재 사고로 쪽방촌 문제가 잠시 이슈화됐다. 그러나 화재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25일 추모식을 준비하기도 했던 이 씨가 '쪽방 화재, 문제의 본질'이라는 제목의 글을 <인권오름>에 기고했다. 다음은 이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남대문경찰서 뒤, 힐튼호텔을 올려다보며 언덕길을 따라가면 오래된 4~5층 건물들이 보인다. 속칭 남대문 쪽방촌이다.

쪽방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으레 오래된 건물들일 뿐인 그곳은, 사실 도시빈민들의 한숨과 안도가 어우러지는 '집'이고 '동네'다.

쪽방 화재가 태운 것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은 사실이다. 불행이란 놈은 늘 패거리 지어 다니며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을 먹이 삼는다. 그날의 화재로 주민 한 분이 사망하셨다.

사업에 실패하여 아무도 모르게 쪽방으로 스며들어 온 그는 불에 그을린 주검이 돼서야 삶을 유언하게 된 것이다. 화상을 입은 두 분 역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탈출에 성공한 이들 역시 변변치는 않지만 유일한 재산이었던 살림살이들을 다 잃은 채 인근 쪽방으로 임시 이주한 상태다.

구청에서는 긴급복지지원법을 통해 최장 2개월까지 월 26만 원 가량 지원금을 제공할 예정이며 적십자사에서는 몇 가지 생활 집기들을 제공했다.

그러나 가방을 떼어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이곳 주민 권 모 씨는 생계 수단인 가방들을 다 잃었으며, 다른 이들 역시 생활에 필요한 냉장고, 텔레비전 등과 같은 생활 집기들이 다 타버리고 말았다.

목돈을 들일 수 없는 쪽방 사람들은 버려진 것들을 고쳐 쓰거나 이웃에게 싼 값에 사는 방식으로 살림살이들을 마련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재 손실액이 얼마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잿더미 속에는 그들의 시간과 노력이 그대로 녹아 있다.

화재는 쪽방 문제의 한 단면

쪽방 지역의 화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대문 쪽방만 하더라도 2000년과 2002년에 화재가 발생했으며, 지난 3월에는 부산 쪽방촌 화재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쪽방 화재는 건물의 구조상 한번 발생하면 인명을 살상하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짓밟는다는 점에서 위협적이기 때문에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소방 당국은 더 이상 소방법상의 근거 없음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며, '화재 예방 캠페인'과 같은 늑장을 부려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시야는 '쪽방'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어우러지는 '쪽방촌(동네)'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화재가 발생한 쪽방촌 건물 ⓒwww.kehcnews.co.kr

'쪽방'은 원래 주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말로 '쪽을 내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만큼 공간 자체가 한 평 내외로 지나치게 협소한 데다, 주방설비가 없는 관계로 그 안에 휴대용 버너, 냉장고 등을 들여 주방설비를 갖춰야 한다.

또한 가능한 공간을 밀집시켜야 하기 때문에 복도도 계단도 좁고 가파르며, 통풍과 채광도 열악하다. 아직도 적지 않은 곳이 재래식 화장실이기 때문에 여름이면 악취와 위생 문제가 심각하고, 온수 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이 많아 겨울이면 씻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이렇듯 쪽방 구조의 문제는 '화재에 취약함'만으로 환원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에 적절한가'하는 주거권의 관점에서 제기되고 모색되어야 한다.

쪽방 사람들

얼마 전 모 방송 피디가 이런 말을 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사람 죽는 것에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다"고.

그러나 어디 쪽방 사람들이 강심장이고 정서가 메말라서 그렇겠는가? 대신 쪽방 사람들에게 죽음이 그만큼 일상적이란 것의 반증이 아닐까?

쪽방 사람들 넷 중 셋은 장애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게다가 건강보험료를 제때 내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비율이 35%(기초생활수급자 제외)를 넘고 있다. 이렇듯 쪽방의 위생문제와 주민들의 건강상태, 치료에서의 배제 문제가 주민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사건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민들은 또한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정책적으로 월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30퍼센트를 넘으면 주거 빈곤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쪽방 주민들의 경우 주거비 부담 비율이 5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임대료는 저축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하고, 보다 안정적인 주거지로의 이주 가능성을 봉쇄한다. 사실, 주민들의 70퍼센트 이상이 쪽방을 벗어나고자 하고 있으나 현재의 조건을 볼 때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쪽방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이 없다면, 주민들은 몇 푼 되지 않는 수입을 쪽방 주인과 임대업자에게 퍼주고, 나머지로 근근이 질병을 달래며 생활을 이어가는 삶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쪽방은 주거자원?

쪽방은 최근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이자 노숙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한 안전망'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민들 중 노숙 경험을 한 이들이 40퍼센트를 상회하고, 나머지 역시 주거 하향 경험을 거쳐 쪽방으로 유입된 이들임을 볼 때 이는 타당한 평가다.

하지만 쪽방이 진정한 주거자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쪽방, 쪽방촌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지원방안이 시급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쪽방상담소를 위탁운영하며 목욕, 세탁, 상담과 같은 연성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역할을 한정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자체는 오히려 '철거'를 통해 쪽방을 해소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쪽방을 주거자원으로 인식하고 주거환경에 대한 제도적 기준을 설정하여 집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실시하라는 요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으며,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거나 죽어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토요일 밤, 화재 현장에 설치된 분향소를 정리하러 가던 차에 동네 구멍가게에 들렀다. 주민들이 굳이 '슈퍼'라고 부르는 이곳은 동네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역시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주민 몇몇이 라면이나 술, 빵 따위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틈에서 또 다른 죽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금요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38살 청년의 죽음. 동네 사람 몇몇이 기억하고, 그들만의 한숨으로 추모하는 죽음이다.

화재 사건으로 쪽방 문제가 세인의 주목을 끌든 말든, 담배갑 같은 쪽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거 빈곤을 무방비로 겪어내고 있다.

참여정부의 주택정책, 주거복지정책이 치적으로 선전되지만, 쪽방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 이상 죽어나가지 않도록, 쪽방이 주거빈곤층에게 살 만한 주거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부의 쪽방 대책을 촉구한다.

이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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