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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텍 사건과 <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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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텍 사건과 <엘리펀트>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지난 열흘간 국내 언론을 가장 뜨겁게 달군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조승희 사건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17일 새벽 2시쯤 CNN이 브레이킹 뉴스로 버지니아텍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도를 낸 것으로 시작해 그 범인인 한국계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은 발칵 뒤집혔다. 국내 언론들은 마치 한국사람 모두가 죄인인 양 사과의 속죄의 기사를 실었다. 유명시인의 참회시가 동원되고 영향력있는 종교인들의 기도문까지 실렸다. 심지어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 미순양 사건까지 거론되면서 우리가 그때 너무 지나쳤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 아수라장의 와중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한 보수 일간지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칼럼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문화일보의 오애리 국제부장이 쓴 '누구의 책임인가'는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기도가 열린 것을 비롯해 이번 주말에도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참가자들이 '미국' 또는 '국익'을 걱정하는 동시에 '인간'을 위해 촛불을 켤 것으로 믿는다. 개인적으로도 촛불 하나를 켜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고립됐었을, 마음 속으로 지옥의 가장 어두운 구석만을 헤매고 돌아다녔을 한 한국청년을 위해.」
엘리펀트 ⓒ프레시안무비

엉뚱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오 부장이 이 글을 쓰면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보다는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인 <볼링 포 콜럼바인>은 총기구입이 자유화돼있는 것을 넘어 총기구입을 '부추기는' 미국의 사회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이다. 반면에 극영화인 <엘리펀트>는 표면적으로는 남들과 전혀 다를 것 없어 보이던 평범한 두 소년이 알고 보니 그 내면은 갈갈이 찢겨져 있었음을 파고들었던 작품이다. 버지니아주 경찰과 FBI는 조승희의 범행동기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발표했지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마이클 무어 식의 사회구조적 보고서보다는 구스 반 산트의 심리분석 보고서를 더 많이 참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점은 우리의 언론들에게 더 많이 적용되는 얘기다. 사건이 터지고 열흘간 아노미의 현상이 지배했을 때 대다수의 국내 언론들이 사건의 본질과 그 핵심을 추적하지 못한 것은 <엘리펀트>같은 영화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문화적 식견의 부족 탓이 아니었을까. <엘리펀트>는 2003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할 만큼 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막상 2004년 8월 국내에 개봉됐을 때는 예술영화관에서 단관개봉되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비운을 맛봐야만 했다. 세상에 대해 정확한 시선을 담아낸 작품일수록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홀대받는 사회, 그리고 그런 영화문화.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한 버지니아텍과 같은 사건이 언젠가 우리사회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방정맞은 생각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엘리펀트 ⓒ프레시안무비

영화는 이제 단순히 현실을 겉모습을 모사하는 차원을 넘어 현실세상의 내면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좋은 영화라면 응당 그렇다. 영화산업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가고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돈과 관련된 얘기만이 아니다. 진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이 끝없이 창고 속에 쌓여만 가고 있다는 얘기다. 곧 오락성만이 넘쳐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면서 정신적으로 더 황폐해지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뭔가 의미있는 생각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철저하게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75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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