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북창동 주점가에서 승객을 자주 태운다는 50대의 택시기사는 "김승연 회장이 잘못한 것 같지만, 북창동 애들 혼내 준 건 좀 후련하다"고 말했다.
북창동 주점 종업원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한 바는 없지만, 보수적인 50대 가장의 눈에 자신은 하루 5만 원도 벌기 힘든데 유흥주점에서 하룻밤에 수십~수백만 원의 술값을 날리고 곤드레만드레 집도 찾지 못하는 승객들을 태우다 보니 북창동 유흥주점가 자체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거기에서 '유흥'과 '낭비'를 부추기는 종업원들도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을 저렇게 탕진하면 나중에 뭐가 남겠느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만약 기사님 아들이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밤에 눈가를 열 바늘이나 꿰맨 채 집에 들어왔다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물었다.
'북창동 욕'을 쉴 새 없이 퍼붓던 택시기사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쉬 대답하지 못했다. 10여 초의 정적이 흐른 뒤 택시기사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글쎄요"라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또 가만있다가 "허~ 참"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모든 아버지들의 자식사랑의 심정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본질은 자식사랑도 아니고, 그런 심정도 아니다. 모든 사건을 그 동기로부터 정당화한다면 세상에 온당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29일 이번 사건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던 한화가 보도자료를 냈다. 김 회장의 각종 '선행'과 '의리'의 사례가 빼곡히 담긴 이 보도자료 마지막에는 '김승연 회장의 자식사랑'이라는 단락이 있다.
김승연 회장의 자식사랑 - 김승연 회장은 유별난 부정으로 유명하다. 특히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올해 설 직전인 2월 중순 김 회장은 그룹 인사팀에 지시해 그룹 내에서 부인과 자녀를 해외로 보낸 기러기 아빠들에게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특별휴가와 왕복 항공 경비를 지원한 바 있다. - 김 회장 자신이 아들 셋을 모두 유학 보냈는데,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들어 늘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자식들이 보고 싶어 매일 전화를 하기도 했다. 또한 IMF 시기 기업 경영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차를 타고가며, 자식들이 보고싶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큰 아들 동관 군은 하버드를 졸업하고 공군에 복부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예일대, 셋째 동선군은 승마로 유명한 미국 태프트 스쿨에 재학 중이다. 지난 아시안 게임 때 아들이 금메달을 땄을 때 아이처럼 좋아하기도 했다. - 김 회장은 단체전에 출전한 동선 군에게 "정 떨리면 본부석에 있는 나를 쳐다보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 이날 김 회장은 아들의 경기를 보기위해 부인과 함께 카타르로 갔다. 또 세 아들의 졸업식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참석했다. - 김승연 회장은 1981년 갑자기 29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이러한 김 회장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김회장의 보상 심리였다. - 김승연 회장의 부정은 이 시대 사라진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
이 보도자료를 접한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인과 자녀를 해외로 보낸 기러기 아빠들에게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특별휴가와 왕복 항공 경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부인과 자녀를 해외로 보낸 기러기 아빠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빠들이 더 많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들 셋을 모두 유학 보냈는데,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들어 늘 힘들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들 셋 유학은커녕 독립할 집 한 칸 얻어주지 못해 아들들과 매일 아침 면상하고 있는 아버지들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들이 승마로 금메달을 따면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많은 메달리스트의 부모들이 해외의 경기 현장까지 따라가기는커녕 집에 앉아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여 TV로 경기를 지켜보지 않던가.
이를 근거로 "김승연 회장의 부정(父情)은 이 시대 사라진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화"라면, 도대체 이 땅에서 그런 '부정'을 가질만한 아버지가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김 회장의 직접 폭행 가담 등의 혐의 사실 유무를 떠나, 김 회장은 "사내답게 사과를 받아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도 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내답게' 사과를 받으러 갔다가 더 맞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게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다.
보복 폭행을 당한 주점 종업원들은 여전히 또 다른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 주점 종업원들의 보복이 두려워 섣불리 나서기도 힘들다.
김 회장은 공권력을 무시하고 경호원 등을 동원해 사적 제재에 나섰다. 한화에는 전직 경찰청장이 고문으로 있다고 한다. 만약 김 회장에게 '돈과 빽'이 없었다면 이번 사건과 같은 '부정'이 존재했을까? 이번 사건으로 농담 삼아 "내가 맞고 오면 아버지는 어떡할거냐?"고 묻는 아들들이 많다고 한다.
김 회장의 평소 선행과 의리, 특히 '화끈한' 성격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김 회장의 그러한 성격과 부정(父情)의 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성격과 부정을 행사한 방법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아무리 사랑한들 자기 아들을 때린 사람을 찾아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앙갚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 정도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항이다.
하지만 그런 정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 회장과 한화 측은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과 사법 당국을 향해 김 회장의 '유별난 부정'을 원초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호소가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대부분의 평범한 아버지들에게 더 큰 착잡함과 좌절감을 키우고, 나아가 재벌에 대한 저항감을 갖게 만들었음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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