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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실질적 대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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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실질적 대안인가"

[일과 희망④]멀고 험한 길이어도 이젠 가야 한다

한미 FTA 찬반 논쟁으로 전국이 뒤끓는 사이에 노동문제의 최대 이슈인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노사정간의 공방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듯하다.

폭풍 전 고요 속에 잠자는 뜨거운 감자들

그러나 이것은 폭풍 전의 고요일 뿐 폭발성 있는 현안들이 여럿 대기하고 있다. 이미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령의 내용을 가지고 노사정 간에 공방이 있었고, 이제 곧 발표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도 뜨거운 감자다. 특수고용직 보호법안은 지난해에 있었던 노정간 격돌을 다시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 비정규직 관련법의 시행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특수고용직 보호법안 등을 둘러싼 노사정 갈등이 폭발 직전에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즉 철폐'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

가장 큰 관심사는 민간 부문 사용자들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인데 벌써 그 향배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 법을 악용하거나 회피해서 비정규직을 계속 양산하는 것이다. 은행 등 일각에서 계약직의 상용직화를 시행했을 뿐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기간제 노동자를 2년마다 해고하면서 돌려쓰거나 그것도 번거로우면 아예 업무를 도급이나 용역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경총은 친절하게도 그 구체적 방법을 회원사들에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는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고통법'이 되는 것이다. "이제 법에도 기댈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투쟁뿐"이라는 어느 비정규 노동자의 절규와 같은 선언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끄는 노동운동의 대안도 총체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동운동의 핵심 요구는 정규직화다. 이것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소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체 비정규 노동자를 포괄하는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특히 노동계가 말하는 정규직이 단지 상용으로 고용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이름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실질적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것은 단지 사용자들의 탐욕이나 노동운동의 역량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기존 노동시장 체제에 내재된 문제점 때문이다.

비정규직, 갑자기 '발견'된 것 아니다
▲ 기존 노동시장의 체제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일이다. ⓒ 프레시안

민주화와 뒤이은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생겨난 우리나라 노동시장 체제의 핵심 변화는 기업내부 노동시장의 형성이었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비로소 기업 내에서 어느 정도의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을 보장받았다. 불완전하나마 비로소 산업시민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시장 체제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기업내부노동시장은 노동자층의 일부만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본래 기업내부노동시장은 기업이라는 울타리를 전제로 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체에 형성된다. 또 기업내부노동시장은 외부노동시장을 만들어내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이라는 2중 노동시장이 형성되며 중소영세업체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이 외부노동시장을 구성하게 된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전체 임금노동자 중 통계청 정의에 따른 임시 및 일용 노동자의 비율은 항상 40%를 넘었다. 비정규 노동자는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발견'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 노동체제의 주요 구성요소였다.

둘째로 기업내부노동시장이 충분히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 핵심 구성요소인 임금체계를 보면 연공적 성격이 강했지만 일본의 연공임금과도 달라서 임금과 숙련의 병행 상승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기업내 평등을 지향한 단일호봉제가 확산되면서 단순 직무에서는 임금과 숙련도 간의 괴리가 커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연공적 임금체계에 걸맞는 적절한 숙련형성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사용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노동조합 역시 소극적이었다. 경위야 어떻든 기업내부노동시장이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은 그것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규직화' 넘어 노동시장 자체에 대한 대안 내와야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2중 노동시장 체제는 한 동안 큰 문제없이 굴러갔는데 그것은 고도성장 때문이었다. 고도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내부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은 그리 큰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또한 인력난을 배경으로 외부노동시장에 속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도 지속적으로 좋아져 내부노동시장과의 격차는 어느 정도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상황은 급변했다. 사용자들은 기업내부노동시장의 전면적 재편에 나섰다. 특히 상대적으로 단순한 직무를 중심으로 고용의 외부화를 적극 추진하여 정규직 고용은 늘지 않고 비정규직이 양산되었다. 경제의 2중 구조가 심화되면서 내부노동시장과 외부시장간 격차도 확대되어 왔다. 점차 기업내부노동시장은 바다 위의 섬처럼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산업구조가 서비스업 위주로 재편되는 거시적 변화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의 '물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허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기업내부노동시장을 전제로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운좋은 일부 노동자에게나 관철될 수 있는 요구가 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2중 노동시장을 온존시키거나 심지어 더 확대할 수도 있다. 이젠 노동시장 체제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면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2중 노동시장을 지양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서는 사회적 차원의 노동시장 기준이 만들어지고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가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일을 어떤 숙련도로 하는가를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되는 사회적 기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대부분의 노동운동이 목표로 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멀고 오랜 길, 연대임금정책·임금체계 개편으로 시작하자
▲ 노동시장 체제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연대임금정책이나 임금체계 개편과 같은 중간 과제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구조 자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노동계가 인정해야 할 때다. ⓒ프레시안

문제는 이것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목표라는 것이다. 그래서 탁상공론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목표를 지향하는 중간 과제들이 있을 수 있다. 두 가지만 들어보자.

하나는 기업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 간의 격차를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것이다. 연대임금정책이 그 주된 방안이 될 것이다. 비정규직 관련법에 있는 차별금지 조항을 활용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를 줄일 수도 있다. 이 조항에 구멍이 많긴 하지만 활용할 여지도 적지 않다.

다른 하나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의 임금체계를 바꾸어 가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임금결정 기준에서 직무가치나 숙련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임금억제에 악용될 우려도 있고 직장 내 불평등과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공정성이 높아진다.

비정규직이 임금노동자의 반을 넘는 상황에서 연공적 임금체계는 더 이상 사회적 정당성을 가지기도 어렵게 되었다. 임금체계 개편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목표의 실현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도 가질 것이다. 사용자가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얻는 이점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정규직'이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고용이 안정적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근로조건이 비정규직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정규직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겪는 고용불안의 고통을 생각하면 이런 정규직화도 환영되어 마땅하다. 또 이것은 노동시장 구조가 정상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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