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영화들이 관객들로부터 제대로 주목도 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는 시대다. 단관개봉은 고사하고 개봉이 됐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간판을 내리고 있다. 이들 영화가운데는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더 나아가서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만큼 시대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주옥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관객들이 버린 영화, 하지만 다시 복원시켜야 할 영화들을 차례로 점검한다. - 편집자 |
급격한 도시화와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당시 도시로 유입된 여성들이 젊은 여성들이 매매춘 산업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담는 일명 '호스티스물'은, 특유의 신파의 정서를 바탕으로 젊은 여성 관객들에게 "남자 잘못 만나면 신세 망친다"는 아주 보수적이고 고답적인 교훈과 경고를 주는 영화들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장르의 영화들은, 역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며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던 근대 사회가 여성의 '사회적 생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음을 그대로 폭로해주기도 한다. '단 한 번 삐끗'이 한 여성의 삶에 가져오는 파장이란 실로 엄청나다.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그녀들의 진심을 희롱하며 상처를 준다. 하지만 과연 이런 전형적인 신파 호스티스물의 줄거리를 가진 영화가 어떻게 코미디 뮤지컬로 성공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을,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은 너무나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덕분에 관객은 눈물이 쏟아져야 할 시점에서 웃음이 터지는 걸 참을 수 없고,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웃음 속에 눈물이 배어버리는 아주 '난감한' 경험을 영화 내내 겪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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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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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되기까지, 마츠코의 일생은 험난 그 자체다. 노래 잘 하고 인기 많은 발랄한 선생님이었던 마츠코의 인생은 제자의 도둑질을 해결해 보려다 해고당하고 가출한 순간부터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면서 동거남에게 상습적 폭력을 당하고 결국 그의 자살의 목격자가 되고, 열등감 해소용 불륜녀가 되었다가 창녀도 되었다가, 살인범이 되어 감옥엘 다녀오고, 미용사가 되어 새로운 사랑을 만나면서 좀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더니 야쿠자 남자로부터 노상 얻어맞다가 그에게 결국 거부당하고는, 오갈 데 없는 중년 여성이 되어 결국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건 채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그녀의 넘치고 넘치는 사랑을 마르질 못해서, 아이돌 가수를 향해 열정적으로 짝사랑을 한다. 마츠코는 평생을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았고, 그 사랑은 여지없이 배신으로 마무리되었다. 인생의 목적이 단 하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고, 욕망 역시 단 하나, 누군가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는 것이었던 마츠코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그녀가 가졌던 직업과 신분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이 단 한번도 보답받지 못했다는 것. 그럼에도 마츠코의 인생은 행복했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고싶다는 건 그녀의 욕망이었지만, 그녀의 삶의 추동력, 삶의 목적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향해 충실히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나가시마 테츠야 감독은 이러한 마츠코의 삶이 보여주는 행복과 불행을 정확히 집어낸다. 그렇기에 마츠코를 향한 감독의 시선은 시종일관 따사롭고 유머감각이 넘치며, 가장 초라한 곳에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건져올린다. 그는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 절망을 감싸는 웃음의 진정한 힘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매우 능숙하게 표현해낸다. 영화의 코믹 터치는 주로 앞부분에 몰려있는데, 이는 물론 관객들을 영화에 빠르게 몰입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마츠코가 가지고 있던 낙관적인 성품은 물론 20대 초반의 마츠코가 가지고 있던 생기와 발랄함을 생생히 전달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관객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 것이 바로 마츠코의 독특한 표정이다. 애초에 마츠코의 조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마츠코라는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가장 처음 제시되는 것이 이 표정을 짓고 있는 마츠코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진이야말로 마츠코라는 인물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 – 애정결핍과 슬픔, 그리고 모든 고난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성격 – 을 반영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츠코의 인생의 각 단계마다 연출의 코믹터치는 줄어드는데, 마츠코 역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 역시 정교한 계산 하에 점차 과장된 코믹 연기에서 섬세한 표정 연기로 넘어간다. 마츠코가 선생님이던 때의 나카타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과장되게 사용한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주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연기 표현은 점차 정극 연기로 진행되고, 감옥에서 출소하는 류를 마중나간 장면에 이르면 신체 연기를 극도로 절제하고 얼굴에서도 거의 표정을 지운 채 눈으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연기를 보여주게 된다. 이 영화에서 나카타니 미키가 보여주는 연기는 여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펙트럼의 연기로, 관객 입장에서는 그저 감탄과 찬사를 바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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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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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진부하지 않은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가? 이는 영화뿐 아니라 '서사'를 다루는 모든 예술가들의 숙원이다. 이미 오래 전에 소설의 죽음이 선언되고, 피터 그리너웨이가 영화의 죽음을 선언하고, 많은 이들이 연극에서 관심을 돌려버린 것은 이야기가 가능한 모든 형태의 줄거리가 이미 다 나와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서사의 죽음을 선언한 순간, 혹은 그 이후에도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꾼을 통해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한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유행이 지나버린 호스티스물이 이렇게 새로운 영화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창작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다. 그러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해낸 진정한 성취는, 장르를 막론하고 서사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성의 대명사격으로 여겨졌던 전형적인 특징의 캐릭터를 무려 '신'의 성품으로까지 끌어올려 재해석해내고 이를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이로써 고난과 상처로 인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을 제시해준다는 점에 있다. 슬픔과 절망에 지지 않고 이를 어떻게든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던 마츠코의 삶을, 그리고 그녀가 가진 에너지를, 누가 감히 '혐오스럽다'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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