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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 "우리가 노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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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 "우리가 노예인가?"

[인권오름] GM대우, 3년만의 흑자. 그 이면에는 …

다음 퀴즈를 풀어보자. 다음 중 1980년대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말해주는 단락은 어느 것일까?

① "우리들은 조립1공장 왼편 개천가에 자리 잡은 천막 속에서 일하고 있는데 겨울에는 아무리 추워도 자재보급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찬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일하다보니 장갑을 두 겹씩 끼고, 양말도 두세 겹씩 신어도 손발이 얼고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난 적도 있습니다.

30여명이 교대로 일하고 있는데 고작 대여섯 대의 선풍기 난로와 애들 키만한 석유난로가 두 대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석유는 수시로 떨어지기 일쑤고 그 때마다 관리자들에게 애걸복걸해야 합니다. 한밤중에 석유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날 밤은 그냥 얼어 죽었다 생각하고 일해야 합니다."

② "냉·난방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얇은 가운 하나 가지고 사시사철 지내야만 합니다. 여름에는 선풍기 몇 대 달아주는데, 청바지 입고 앉아 있으면 바지가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홀딱 다 젖습니다.

겨울에는 스팀을 넣어주는 게 아니고 아침에 잠깐 오후에 잠깐 하루 두세번 문안인사 올리는 격입니다. 어쩌다 추위를 견디다 못해 가운 위에 스웨터라도 입었다 하면 관리자들이 와서 생난리를 칩니다."


정답은 ②번. ②번은 1984년 노동조합을 설립했던 구로공단 협진양행 노동자가 어느 잡지에서 인터뷰했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①번은? 놀라지 마시라! 세계 최대의 자동차 업체라는 GM 대우 자동차의 부평공장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말하는 현재 그들의 노동현실이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분출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은 향상되었지만, 1997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면서 현실은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GM 대우 자동차 비정규직의 실태는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비정규직'이란 이름의 노예

1970~80년대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자는 현대판 노예인가?"라며 스스로 의문을 던졌다. 그들이 목숨 걸고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던 이유도 무엇보다 "인격적으로 평등한 대우, 사람 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GM 대우 비정규직을 비롯한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를 향해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노예인가?"
▲ 쉴 새 없이 대형 트럭이 드나들고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GM대우 부평공장 안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열흘 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2003년 800여 명이었던 GM 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몇 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07년 현재 1700여 명에 이른다.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까지 합하면 대략 2300여 명 정도가 된다.

이들은 몇 년씩 회사에 몸 바쳐 일해 왔지만 매년 재계약일이 다가오면 혹여 잘못 보여 재계약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다.

하청업체 사업주들은 마치 인신매매 하듯이 노동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하청업체 사업주에게 권리금을 받고 노동자들을 '팔아 넘긴다'.

현재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GM 대우 I/P 공정의 경우, 노동자들은 1년 사이에 네 명의 새로운 하청업체 사업주를 '맞이'했다. 바뀐 사업주들은 지불한 권리금만큼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고, 수당, 상여금 등을 축소시키며 그나마 얼마 안되는 임금마저 더 줄여버린다.

아예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다가 인수한 지 석 달만에 타산이 안 맞는다며 공장을 버리고 떠난 사업주도 있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GM 대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이 오를 때 같이 오르며 각종 수당과 상여금, 성과금 등을 합해봤자 정규직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1차 하청이 그 정도니 2차 이하로 내려가면 비교할 수조차 없다.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린당하는 인권

임금만 문제 되는 게 아니다. GM 대우 부평공장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당하고 있다.

젊은 관리자들이 나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막말 하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과 일상적인 인권침해 사례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S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들은 주로 40~50대 여성인데 남성 관리자들이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툭 치거나 작업공정을 성 행위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고 생리휴가를 신청한 여성노동자에게 "아직도 생리해? 폐경기 지난 거 아냐?" 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GM 대우차는 경쟁 업체인 현대-기아차 보다 작업 공정 속도가 빠르다. 얼마나 빠른지 근무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어떤 작업장엔 아예 화장실조차 없어 남성들은 기계 옆 하수구에 '볼일'을 보는데 여성들은 그마저 할 수 없어 무조건 참아야 한다.

J업체 관리자는 아침 조회시간에 화장실에 자주 가는 노동자를 지목하며 "근무시간에 화장실 자주 가는데, 요강 가져다 줄 테니 앞으로는 거기다 볼일 보라"며 공개 망신을 주기까지 했다.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처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재처리하면 원청업체와 도급계약할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다친 노동자들을 죄인 취급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하거나 그게 싫으면 그만 두라고 협박했다.

이런 사례 중 하나로, 작업하다가 장비에 옷이 걸려 장비와 함께 2미터 아래로 떨어져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노동자에게 업체 관리자는 주말에 쉬고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하게 했다. 자재 모서리 부분에 옆구리를 찍혀 갈비뼈가 부러진 다른 노동자에게 의사는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나 업체는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저항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 회사 측으로부터 폭행 후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안면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GM 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노조

이런 야만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GM 대우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항을 시작했다. 투쟁의 불꽃은 창원에서부터 솟아올랐다.

불똥이 부평공장으로 튈 것을 걱정한 원청 GM 대우 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발탁 채용'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회사 측은 '발탁 채용'을 통해 1차 하청업체에서 1년 이상 근무한 35세 이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뽑겠다고 했지만, 30명을 뽑겠다고 공지해놓고는 1명 정도 채용하고 끝내는 등 그마저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회사 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마구 유린하고 있다.

회사 관리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요주의 인물을 찍어 놓고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마음에 안든다며 불러다가 폭행까지 했다.

이런 폭행사건이 일어나면 적반하장 격으로 이를 빌미로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조건 해고시켜 버린다. 세계적 기업 GM이 부도기업 대우자동차를 인수한지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이면에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무참히 착취당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예노동'이 있었다.

부평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1월 말, 폭행당한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 철회, 외주화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진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잔업 거부와 함께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그 결과 일부 해고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용불안과 인권침해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권과 미래를 위해 또다시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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