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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대우 부평공장, 1970년대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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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GM대우 부평공장, 1970년대보다 못하다"

이곳의 하청 노동자들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GM대우 공장 앞. 쉴 새 없이 대형 트럭들이 공장 문을 드나들었다. 공장 문 뒤로는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가 영하의 공기를 가르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1700여 명의 대량 정리해고와 이에 반발하는 노조의 거센 투쟁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던 GM대우였다. 지난해 GM대우는 당시 해고된 정리해고자들을 복직시켜 '노사상생의 꽃을 피웠다'고 곳곳의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노사상생의 꽃'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는 저 공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꿈같은 말이었다. 부평 공장의 하청 노동자들은 1년 사이 소속 회사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월급이 점점 줄어들어도, 인사배치가 부당하다고 항의했다가 폭력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도 찾아가 하소연할 노조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근 2주일 째 잔업거부와 농성 등을 벌이며 소속 업체와 원청인 GM대우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1년 사이 세 번이나 '어느 날 갑자기' 사장이 바뀌고…
▲ 쉴 새 없이 대형 트럭이 드나들고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GM대우 부평공장 안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열흘 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지난달 24일부터 공장 한 쪽의 복지회관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5명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DYT라는 2차 하청업체 소속으로, 'IP패드'라고 불리는 운전석 전면의 플라스틱판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소속 회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세 번이나 바뀌었다. 사전에 통보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밀린 임금도 다 주지 않고 회사가 밤 사이 철수하는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출근해보면 사장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신성산업개발에서 화인테크로, 다시 DYT라는 업체로 소속 회사가 바뀔 때마다 이들은 점점 낮아지는 월급과 열악해지는 근로조건에 맞서 매번 싸워야 했다.

DYT의 한 노동자는 "업체가 새로 들어올 때마다 전 회사에서 받던 것보다 더 낮은 임금을 들이밀며 일할 사람은 남고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빛 좋은 '모듈화'로 공장 밖으로 쫓겨날 위기에 놓이고…

이 업체의 하청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은 말하자면 끝이 없다"고 했다. 이들이 일하는 IP패드 작업장은 제대로 된 건물도 아닌 천막이다.

"자재가 수시로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장갑을 두 겹, 양말도 세 겹을 껴 신어도 손발이 얼고 손끝이 갈라져 피가 납니다. 30여 명이 교대로 일하는데 난방 시설이라고는 고작 여섯 대의 선풍기 난로와 아이 키 만한 석유난로 두 대뿐입니다. 그나마도 석유는 수시로 떨어지는데, 한밤중에 석유가 떨어지면 그날 밤은 꼼짝없이 얼어 죽는 거죠."

이들이 열흘 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그저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모듈화'라는 회사의 경영계획으로 작업장 자체가 공장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GM대우는 현재 공장 내에서 도급 업체와 계약을 통해 부품을 만들던 생산 시스템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부품 생산을 모두 외주화해 조립만 자체 공장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DYT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IP패드 작업장이 외주화된다는 소문을 듣고 업체와 원청에 모두 확인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작업장이 공장 밖으로 나가게 되면 모든 조건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다.

관리자의 폭행에 항의하자 오히려 해고통보

또 다른 하청업체인 스피드파워월드의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 업체에서는 지난 2달 사이 두 사람의 하청 노동자가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두 사람 모두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이 업체의 노동자로 조립부에서 근무해 온 김모 씨는 지난해 11월 회사로부터 "차체부로 작업장을 옮기라"는 인사이동 통보를 받았다. 허리 디스크 환자인 김 씨는 "차체부는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나는 허리가 좋지 않으니 고려해 달라"며 의사의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회사는 "안 된다"며 "아프면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4일 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

이날도 김 씨는 자신의 작업장인 조립부로 일하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 관리자인 문모 씨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김 씨는 "문 씨가 갑자기 욕을 하면서 달려들더니 나를 사무실로 끌고가 바닥에 밀쳤다"고 주장했다.

문 씨의 손에 밀려 넘어지면서 허리를 심하게 부딪쳐 병원에 입원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치료비가 아니라 해고 통보였다.

이 회사에서는 지난달 8일 조장의 업무지시에 즉각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하청 노동자가 폭행을 당해 안면골절로 인해 수술까지 받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사람도 병원의 입원실 침대 위에서 회사의 해고통보서를 받아야 했다.

금속노조, 하청 노동자들의 희망 될 수 있을까?
▲ 금속노조 임원선거 후보들이 2일 부평의 GM대우 공장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프레시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근로조건이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라지만, GM대우 부평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부평공장 하청 노동자에게 이처럼 기막힌 일은 '일상'"이라며 "1970년대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 GM대우 부평공장은 정규직 노조만 있을 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는 없다. 하지만 최근 출범한 금속 산별노조는 부평 공장의 하청 노동자들과 같이 노조가 없어 하소연할 곳도 없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 품어 안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런 금속노조가 현재 임원선거를 치르고 있다. 14만 산별노조로 거듭나기 위한 새 집행부를 뽑는 임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GM대우 소속 및 이 공장 출신은 4명이나 된다. 이들을 포함해 금속노조 선거에 출마한 여러 후보들이 GM대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 2일 부평 공장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만난 고남권 부위원장 후보는 "GM대우 부평공장 노동자로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해 참담함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역시 GM대우 부평공장 정규직으로 금속노조 부위원장 후보로 나온 김일섭 씨도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겠노라며 전국을 돌며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GM대우 정규직 노조가 이 문제에 나서면 좀 더 해결이 쉬워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고남권 후보는 "의지의 문제"라고 답했다.

금속노조 후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 없이는 금속노조 임원 선거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중심인 금속노조가 '참담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을 '의지를 갖고' 바꿔낼 수 있을까. 오는 13일부터 투표가 시작되는 금속노조 선거의 결과에는 그런 의지가 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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