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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방송 더 내주지 못해 아쉽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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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방송 더 내주지 못해 아쉽다고요?"

[한미FTA 뜯어보기 487 : 기고]"'칭찬' 바라는 뻔뻔한 정부 대신 사과합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방송 개방을 막아 내지 못해 너무나 미안합니다.'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삶, 우리의 언론과 직결된 시청각·미디어 시장을 다국적 자본에 내주게 돼서 참으로 죄송합니다.'

나는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해줄 것이라고는, 그래서 우리를 위무해 줄 것이라고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외부 충격으로 국내 서비스 산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재벌 연구소·고급 관료의 발상에 꽁꽁 묶인 그에게 인·민의 공통된 이익, 즉 공익의 가치를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시장 논리, 경쟁 법칙, 자본 권력에 투항한 노무현 정권에게 사회적 이익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은 방송을 더 내어 놓지 못해 불만이었다. 몽땅 다 내어줬으면 시원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여간 섭섭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은퇴해 귀향한 후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릴 때,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할지 참 궁금하다. '야, 우리 방송의 공익적·문화적 서비스 수준이 정말 끝내주게 발전했군!'이라며 즐거워 할까? 아니면 '아니, 이거 점점 볼 게 없어지니 정말 미치겠군. 이 저질 텔레비전!'이라며 화를 벌컥 내고 있을까? 상상만 해도 재미나다. 그때 그는 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따지고 있을까?

'참 잘했어요' 말 좀 해달라고?
▲ 지난달 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로비에서 '방송은 죽었다!' 장례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는 전규찬 소장 ⓒ문화연대

그렇다면 방송을 제국의 손에, 초국적 복합 미디어 기업의 손에 내놓게 된 데 대해 방송위원회가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는가? 궁금하면 타결 직후 방송위원회가 서둘러 내놓는 이야기들에 귀기울여 보라. 방송위는 미국 측이 협상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요구를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외국방송 재송신채널의 우리말 더빙 및 국내방송 허용이 자칫 '딜 브레이커'가 될 수 있었다며 협상과정의 내막을 소개했다.(관련기사 보기)

"우리 측은 방송의 공공성·공익성과 우리나라 방송산업에 영향 등을 감안,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업계의 애로사항과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반영한 개방안을 협상과정에서 관철했다"는 게 방송위원회의 결론이다. 짝짝짝! 정말 능동적인 포스(force)가 느껴진다. 우리 방송위가 이렇게 힘차고 주체적이었던가?

정치권, 정치권력과의 온갖 야합으로 탄생한 방송위원들, 강동순 방송위원 파문 등 그 허접함과 부실함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방송위가 이렇게 능력있는 조직이었다는 말인가?(관련기사 보기)

그래서 방송위는 이곳저곳에서 이렇게 읍소한다. '엄청난 미국의 개방 요구에 맞서, 정부부처의 비협조적 적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고의 협상전략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얻어 냈잖아요.' '그러니 제발 좀 선방했다고 칭찬해주고, 수고했다고 어깨 좀 톡톡 두드려주세요!'

차라리 우리가 '죄송하다' 하겠다

그렇다. 더 못 내줘서 안달인 대통령에게, 그리고 '선방'했으니 욕하지 말라는 방송위에게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기대하지 못한다. 차라리 막아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은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시청각·미디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며 1년 이상 투쟁해 온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프로듀서연합회, 기자협회, 기술인연합회가 할 말이다. 책임은 파업과 단식을 불사한 그들에게 있다. 이들과 함께 집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벌이며, 농성과 피케팅을 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에게 막아내지 못한 책임이 있다.

방송위 로비에서, 외교통상부 뒷문에서, 청와대 앞에서, 신라호텔과 하얏트 호텔 앞에서 전경에 둘려싸여 나름대로는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이렇게 뚫린 것에 대해 문화연대, 언론연대, 여성민우회 등 참여 단체들이 사죄해야 한다. 방송과 시청각·미디어가 자본의 게임, 신자유주의의 규칙, 독점과 경쟁의 코드에 의해 지배되도록 한 데 대해 심각한 책임감을 느끼며 유감과 통한을 삼켜야 하는 윤리적 의무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 더 내주지 못해 안달인 대통령, 선방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방송위처럼 우리는 뻔뻔하지 못하다.

시청각·미디어 공대위는 방송 개방 저지에 실패한 사실에 대해 통렬한 책임감을 느끼며, 그 실패를 부끄러워 한다.

미국 방송은 천천히 한국을 신자유주의로 변모시킬 것
▲ ⓒ문화연대

우리는 머리가 좋지도, 약삭빠르지도 않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친절하게 자문해주지 않으며, 현물시장에 능통한 업자들의 도움도 구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소박한 가슴으로, 상식적 머리로 판단할 줄 알았다. 열린 시선으로 세계를 조망하고 공개된 방식으로 토론을 벌이면서, 우리는 지금 정도의 개방으로도 우리의 방송, 문화, 언론은 이미 치명적 상처를 입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폐해는 멀지 않아 더욱 곪아가 우리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었다.

방송위와 미국 무역 대표부(USTR)가 말하듯 "외국 기업에 모든 국내법인 등록 PP에 대한 투자를 전면 허용"이라고 하는 사실이 단순히 케이블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광고의 문제, 시청자의 문제, 지상파의 문제로 넘쳐흐를 쓰나미의 시작임을 안다.

타임워너 회장의 방한 당시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관련기사 보기) 그 악취와 소음은 시속 300㎞의 KTX처럼 강타하지 않는다. 한미 FTA는 몇 십 년에 걸쳐 천천히 한국 방송과 한국 문화, 한국 언론의 지형을 신자유주의 야수의 세계로 변모시켜 놓을 것이다. FTA 타결 당일 기자회견을 열던 방송위의 그 잽싼 Q&A 서비스가 이 엄연한 진실을 가릴 것 같은가?

우리에겐 2차전이 남아 있다

야만의 시대를 막아내고자 했다. 자본에 의한 문화 말살, 선전에 의한 언론 통제의 상황을 저지하려 했다. 그 1차전에서 졌다. '선방'은 없었고, 그래서 부끄럽다. 그러나 아직 2차전이 남아 있다. 방송과 언론, 문화의 타락을 가져올 한미 FTA 무효화 및 비준저지라는 카드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게임이다. 더욱 노골적인 정부의 선전·홍보 술책, 반대 여론을 원천 봉쇄하는 반민주적 조처, 학자들의 침묵과 정치인들의 무능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그렇다. 한미 FTA와 그 추진 세력을 찬미찬양하기 바쁜, 합당한 토론의 기회를 포기해버린, 그러다가 '한미 FTA'를 애당초 사회적 의제에서 탈락시켜 버린 기회주의적 방송사 보도국 기자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선전과 침묵·왜곡의 폭력이 언제까지 언론과 여론, 진실의 역능을 제압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반민주·반사회·반자유의 삼각동맹체제에 의해 완전 압살되고 말 것 같은가? 4월의 혁명, 5월의 투쟁, 6월의 항쟁은 '야만의 시대'에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부끄러움 많은 우리는 이렇게 꾸벅 사과하고 다시 결의를 다져 집회의 거리, 표현의 광장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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