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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테러전문 배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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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테러전문 배우가 아니다"

[할리우드 통신] 美 월스트리트저널, 할리우드에서 중동권배우들의 딜레마 조명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주지사와 그 일행은 평양으로 향하는 군용기 안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일반 항공기처럼 군용기 역시 승객들을 위해 영화를 상영한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리처드슨 일행이 본 영화 자체였다. 제목은 <에너미 라인스 2 ; 악의 축>. 오웬 윌슨이 발칸 내전지역 한가운데에서 낙오되는 미군 조종사로 등장했던 2001년작 <에너미 라인스>의 속편이다. 지난해 제작돼 미국내에서 비디오로만 출시된 이 영화는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북한내 미사일 기지를 폭파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악당은 뭐니뭐니해도 북한 군인과 중동출신 또는 이슬람권 테러리스트들이다. 특히 9.11테러 이후 중동 및 이슬람권 테러리스트들을 다룬 영화와 TV드라마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복잡한 국제정세를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으로 묘사하고 이슬람권 사람들을 스테레오타이프화(정형화)하는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폭증하고 있는 추세다.
에너미 라인스 2 ; 악의 축 ⓒ프레시안무비
그렇다면, 이런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테러리스트 역할을 하는 이슬람권 배우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일까. 할리우드에서 이슬람 배우들이 겪는 딜레마는 무엇일까. 할리우드에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월스트리스저널은 11일 "테러리스트를 연기하고 싶은가 – (이슬람권)배우들이 직면한 딜레마'란 장문의 기사에서 "테러 관련 영화, 드라마가 늘면서 이슬람권 연기자에 대한 수요가 과거 어느때보다 늘어난 반면 고정화된 캐릭터가 대부분이란 것이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영국국적의 배우 제이미 하딩은 수단인 어머니,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국적의 20대 배우다. 그의 최근작은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호평받았던 영국감독 폴 그린그래스의 <유나이티드 93>.하딩은 중동출신도, 아랍계도 아니지만 단지 남들보다 아랍인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이 영화에서 테러범들 중 한명을 맡았다. 하딩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테러리스트로 출연한다고들 하니까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냐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회상했다. 할리우드에서 한번 테러리스트를 연기하면, 영원히 테러리스트 전문배우로 낙인 찍힐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오! 예루살렘 ⓒ프레시안무비
그는 요즘 또다른 영국영화 <오! 예루살렘>의 다음달 미국 개봉을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2차세계대전 직후 이스라엘 건국과정 속에서 유대인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아랍인으로 등장한다. 하딩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미국 관객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국적의 이란계 배우인 마즈 조브라니는 지난 2002년 척 노리스 주연의 <대통령의 사람;모래 위의 선>이란 작품에 출연했을 때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미국에 대한 테러음모를 꾸미는 아프가니스탄출신의 물리학자였다. 감독은 터번을 쓰라고 요구했지만, 조브라니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주인공이 비록 테러리스트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교육받은 학자이기때문에, 이슬람 보수주의 상징처럼 돼있는 터번을 착용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감독은 " 잔말말고 터번을 써라. 그래야 미국관객들은 누가 악당인지 쉽게 알아볼 수있다"는 말 한마디로 조브라니의 주장을 일축했다. 조브라니는 바로 이 것이 할리우드에 일반화된 중동계 또는 아랍계 사람들에게 대한 인식이라며 씁쓸해했다. 그런가하면 2003년 <모래와 안개의 집>에서 열연을 펼쳐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이란계 여성배우 쇼레 아그다슐루는 TV 드라마 <24> 제작진으로부터 테러리스트가 되는 가정주부 역할을 제안받고 당혹스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영화계와 방송계가 중동,이슬람권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 최근 들어서는 비로소 테러리즘 문제의 복잡다난한 면을 그리는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배우들의 선택폭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석유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음모를 그린 <시리아나>, 로스앤젤레스의 인종갈등을 다룬 < 크래쉬>, 소련점령 말기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마크 포스터 감독의 <카이트 러너(The Kite Runner. 가을개봉예정)> 등이 대표적인 작품. TV 시리즈 <24>와 지난해 미국서 방영된 <9> 등의 드라마도 테러리스트에 대한 기존 묘사틀을 다소 깨뜨린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이다.실제로, 아그다슐루는 <24> 제작진 측으로부터 가정주부 테러리스트 역을 제안받은 직후 거절했다가, 시나리오를 읽어본후 주부이자 테러리스트인 이 여성의 고민과 갈등 등 내면을 상당히 꼼꼼하게 다룬 점에 이끌려 결국 출연을 승락했었다고.
크래쉬 ⓒ프레시안무비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수십년동안 할리우드 영화에서 택시운전사나 잡화점 주인 역할이나 하면서 좌절했던 중동출신 배우들이 테러리즘 시대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아이러니한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크래쉬>에서 아메리칸드림의 쓰디쓴 좌절을 맞보는 이란계 이민자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사운 토우브는 "최근 미국 영화계에서 중동권 배우들의 상황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다"며 "과거 흑인, 라틴계 배우들이 영화계의 편견과 무지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가 결국에는 극복해냈듯이 이제는 중동권 배우들의 차례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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