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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수록 개인 빚만 쌓이는 회사, 믿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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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할수록 개인 빚만 쌓이는 회사, 믿기세요?"

음료회사의 과당경쟁으로 수 천 만원씩 빚지는 사람들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주식회사 해태음료에서 11년을 일했다는 김철수 씨의 얘기를 듣던 기자는 몇 번을 되물었다. "3년을 일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의 빚을 지게 되고,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빚도 늘어나 많게는 몇 억씩 빚을 지기도 한다"는 김 씨의 얘기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의 '황당한' 증언은 해태음료의 일만은 아니었다. 롯데칠성에서 사이다 등 음료를 판매하는 노동자인 김정일 씨도 "한 달에 1000만 원씩 빚이 쌓인다"며 "빚지지 않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얘기한 빚의 액수는 차이가 있었지만 "일을 할수록 개인의 빚이 더 늘어간다"는 점은 똑같았다. 이들은 롯데칠성, 해태음료, 동아오츠카 등 음료 3사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데, 오히려 빚을 내 회사에 돈을 갖다줘야 한다니,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무리한 매출액 지시→가상판매→덤핑판매로 이어지는 '빚의 악순환'
▲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데, 오히려 빚을 내 회사에 돈을 갖다줘야 하는 회사.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프레시안

김철수 씨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회사마다 직원들에게 매출액 목표치를 정해줍니다. 그런데 그 목표치라는 것이 터무니없이 높아요. 도저히 팔 수 없는 액수인 거죠. 매출을 못 채우면 안 되니까 소위 '가상판매'라는 걸 모두 합니다. 실제로는 못 팔았는데 판 것처럼 전산처리를 하는 거죠."

'실제로는 못 판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돈을 받을 곳도 없다. 이 가상판매에서부터 빚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50만 원 어치를 가판으로 하면 회사에 납입할 돈을 받기 위해 그만큼의 음료를 값을 확 깎아서 팔아치웁니다. 30만 원만 받고 50만 원 어치를 주는 거죠. 나머지 20만 원은 제 돈으로 채울 수밖에 없어요."

회사의 부당영업행위 강요와 가판으로 시작된 늪이 '덤핑판매'로 이어지고 그 차액은 고스란히 음료판매직들의 개인 부담으로 돌아간다. 결국 이들은 은행에 집을 담보로 빚을 내거나 카드 돌려막기 등을 하며 일을 하고 있다.

개인 돈으로 안 채우고 버티면 어떨까?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김 씨는 더 믿기 힘든 얘기를 이어갔다.

"미수금과 덤핑판매에 따른 차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영업사원들에게 공급횡령이나 업무상배임 명목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을 걸어요. 또 입사할 때 세웠던 신용보증인에게 그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대부분 보증인으로 친인척을 세우거든요. 그러니 돈을 다 갚기 전에는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거죠."

김 씨는 "나도 가장 많을 때 1억2000만 원까지 빚이 있었다. 지금도 5000만 원을 빚지고 있다"며 한숨을 뱉었다. 회사에 판매대금을 다 갚고 나면 남은 건 은행빚과 훌쩍 늘어난 나이뿐이다. 은행빚을 지고서라도 돈을 다 갚고 회사문을 나서기에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힘든 나이가 되는 것. 작은 구멍가게라도 차리려고 해도 이미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 때문에 그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 롯데칠성 성기승 홍보팀장은 "가판이나 덤핑판매를 하는 사람은 전체 영업직 2000여 명 가운데 30여 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는 성실히 영업활동을 하지 않아서 목표액을 못 채운 사람들의 문제로 회사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회사에서는 가판과 덤핑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월 목표액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가'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지역시장 규모의 차이에 따라 달라 평균적인 목표액은 말하기 힘들지만 회사가 무리한 목표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조는 "3사를 통틀어 조합원만 700여 명에 달하며 실제 가입은 못했어도 이런 문제로 노조를 지지하는 직원들은 더 많다"며 "회사가 가판과 덤핑을 금지하고 있다지만 이 역시 음료판매직들은 다 아는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롯데칠성의 정규직 판매노동자 김정일 씨는 "지점별로 본사에서 내려오는 매출액 목표가 월 10억~20억 사이인데 영업직원은 10~20명 수준"이라며 "내 경우에는 월 매출액 할당량이 1억인데 '성실이 일하지 않아서'라는 회사 주장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김정일 씨는 "판사들도 우리보고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롯데칠성이 영업사원이 갚지 못한 판매대금을 '횡령'이라며 고소한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도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이들은 지난 3월 롯데칠성, 해태음료, 동아오츠카의 음료판매직들이 함께 모여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아래 노조를 만들었다. 이들은 "노조의 창립총회 날에도 회사들의 부당노동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말했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현행법에서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노조는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는 직원들이 탄 차를 회사 관리자들이 고속도로에서 따라붙어 방해하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총회 전날 지점별로 수백 만 원의 회식비를 지급해 직원들을 강제로 회식에 참석하게 하고, 총회 날은 긴급 야유회나 체육대회까지 벌였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설립필증을 받은 후에도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이어졌다. 지점을 통폐합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직원들에게 먼 곳으로 전보 발령을 내리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 가운데 20여 명이 해고통보를 받았고 "장거리 발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추가로 30여 명의 조합원에 대해 징계가 예정돼 있다.
▲ 결국 이들은 지난 3월 롯데칠성, 해태음료, 동아오츠카의 음료판매직들이 함께 모여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아래 노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조에 대한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프레시안

회사의 노조에 대한 인식은 11일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날 서울 을지로 롯데백화점 앞에서 "노조와 교섭에 성실히 나서라"며 음료3사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대표단이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했지만 롯데그룹은 항의서한을 받아줄 수 없다며 경비 직원들을 동원해 대표단을 막아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정일 씨는 "가판과 덤핑판매로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자고 노조를 만든 것이 그렇게 두렵냐"며 "롯데칠성을 비롯한 회사들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불매운동까지 벌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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