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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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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당뇨 혈당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하여 큰 맘먹고 (큰 돈이 들기 때문이다) 시작한 개인 트레이닝은 생각보다 혹독한 시간일 때가 많다. 물경 19살 차이가 나는 내 여자 트레이너는 만날 때마다 기분을 묻곤 한다. "오늘은 어떠세요? 별로라구요? 그럼 오늘 운동 세게 하시죠." 처음엔 그게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운동을 세게 시킨다. 신기한 건, 우울하고 짜증나던 일상이 그녀와 운동을 하는 1시간 동안은 싹 잊혀진다는 것이다. 평소 별로 말이 없는 그녀는 슬쩍 무게를 한 단계 더 올린 운동기구를 나로 하여금 밀어 올리고, 잡아 당기고, 버티게 하면서 괴롭히는데 보통 15회에서 20회를 하면서 낑낑대는 내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자, 하나 더. 하나만 더해보세요. 어서 힘내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여기서 포기하면 안되요." 웃긴 얘기같지만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그녀가 내게 그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 속으로 왈칵 눈물이 났었다. "포기하지 마세요." 그것 참, 실로 오랜만에 듣는, 진부하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아마도 내게 있어 그런 얘기는 줄곧 영화가 해왔던 몫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과, 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남들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과, 또 그러다 보면 욕망하고 소비하는 생활보다는 참고 줄이는 삶이 보다 가치있다는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그러지 못했다. 영화를 봐도 그저 심드렁했으며 거기서 거기, 늘 비슷한 얘기들을 해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더 이상, 나의 가슴을 떨리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화 자체만으로도 그래 보인다. 요즘 한국영화계에는 강박증과 노이로제, 심각한 외상증후군이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공에 대한 강박증, 관객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상업적 노이로제, 오로지 대박의 꿈만 꾸다가 그것이 실패한 뒤에 나타나는 심각한 외상의 후유증 등등. 얼마 전 만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차승재 이사장 역시 지금 한국영화계는 2000년 이후 최대의 위기국면이며 때문에 앞으로 2,3년간 한국영화계는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최고의 독서량을 자랑하듯 예전부터도 말발이 센 것으로 유명하지만 대학원에서 비교적 머리 굵은 학생들을 가르친 후부터는 더욱 더 화려한 수사학를 펼치고 있는 그는, 우리 영화계가 지난 몇 년간 너도 나도 우회상장에만 매달려 머니게임의 숙주 역할만 한 꼴이라는 말도 했다. 그건 거꾸로 우리가 영화를 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의미를 되찾지 않는 한, 곧 돈을 한번에 왕창 벌겠다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한국영화의 재생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웨더 맨 ⓒ프레시안무비
국내에서 개봉되지 못한 채 DVD로 직행한 고어 버빈스키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웨더 맨>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카고의 겨울 날씨마냥 한치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투명한 삶에서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싶어하는 한 남자의 고독한 일상을 그린다. 사람들은 그렇게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웨더 맨>처럼, 위로받고 싶어하는 남자의 얘기를 그린 영화를 보면서 우리 스스로도 위로를 받고싶은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몸을 낮추고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만 한다. 우리영화가 어깨에서 힘을 빼야 하는 이유, 평균제작비를 50억원에서 30억으로 몸을 낮춰야 하는 이유는 거기서 나온다. 영화는 어쩌면 운동처럼 정직한 것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71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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